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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와 피로도, 안타까운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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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인 ‘동네 촛불’ 꾸준히 이어져… 상권 회복 위해 현수막 치우자는 의견도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은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았다. 안산 화랑유원지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는 희생자들의 생일을 기리는 편지와 케이크, 꽃들이 놓여져 있었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지만, 조문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드문드문 이어졌다. 분향소 사무국 관계자는 춥지 않은 날은 여전히 꽤 많은 조문객이 분향소를 찾는다고 전했다. 

안산시내 가로수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내건 노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주민 이지영씨(가명·34)는 “초등학교 때부터 안산에서 살았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세월호는 아직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다. 마치 내가 그 아이들을 살려내지 못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 박송이 기자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 박송이 기자

세월호를 기억하는 소규모 동네 촛불모임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유가족들을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박한 문화공연을 하고, 주민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인문학협동조합이 주최한 <세월호 이후 우리는> 포럼에서는 같이 슬픔을 털어내고자 동네 촛불에 참여한 안산 주민들의 이야기(정원옥, ‘4·16 이후 안산지역의 직접행동과 애도의 정치’)가 나온다. “견디기 힘든 사람들이 준비모임 주체들이 되어서 한 달 하고, 내가 이거 끝까지 해볼 거야, 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냥 우리 요만큼만 더 가보자, 요만큼만 더 가보자 그렇게 한 게 지금까지 온 거예요.” 동네 촛불은 혼자서 고통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서로 슬픔을 나누고,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인 셈이다. 겨울이 되면서 횟수는 조금 줄었지만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역사회 한편에서는 세월호 슬픔에 너무 오래 매달려 있으면 안 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높다. 세월호 안산시민대책위의 장옥주 위원장은 “간혹 지역주민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제는 그만해야 하는 게 아니냐,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데 이게 일반 주민이나 시민사회보다 정치권 쪽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 안산시의회에는 세월호 특위가 만들어져 있지만 특위의 활동은 거의 없다. 소속 정당과 관계 없이 과반이 넘는 특위 소속 의원들이 이제 세월호 사건은 접고 가야 하지 않느냐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의회에서 세월호 조례를 만들었지만, 시민사회에서는 형식적인 조례에 불과하다며 시민사회를 포함하는 논의 테이블을 만들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치권이 지역 상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지역에서는 추모 분위기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며 추모 현수막도 이제 그만 치우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안산시 고잔동에 마련된 세월호 기억저장소에서 한 시민이 메시지를 적은 노란 종이를 원통형 보관함에 넣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안산시 고잔동에 마련된 세월호 기억저장소에서 한 시민이 메시지를 적은 노란 종이를 원통형 보관함에 넣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생계지원비 끊긴 유가족들 생활고 겪어
진상규명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안산에서마저 세월호 피로도를 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유가족들의 불안은 깊다. 여야 합의로 세월호 특별법안은 만들어졌지만 아직 국회에서 처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지원마저 끊기고 있다. 진상규명과 심리적 치유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잊혀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안이다. 희생자 유가족 중에는 사건 이후 특별법 제정을 위해 전국을 뛰어다니느라 직장을 그만둔 사람이 많다. 유가족들에 대한 생계지원비는 지난 10월 초 경기도 예비비 예산으로 지원한 것을 마지막으로 더는 지원되지 않고 있다. 고 정동수 학생의 아버지 정성욱씨는 “유가족 중에는 참사 이후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이 많다. 절반 정도는 일을 그만둔 것으로 알고 있고, 그 외에도 출근해서 정상적으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둔 사람은 고용보험에서 나오는 실업급여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직한 유가족 재취업에 대한 지원도 없다.

세월호 관련 의료비 지원도 12월을 끝으로 끊긴다. 안전행정부 중대본에서는 연말까지 세월호 관련 치료비를 유가족들에게 지원해줬다. 세월호와 관련된 질병이라는 의료진의 판단이 있다면 의료비를 지원해 왔다. 유병화 세월호 가족대책위 심리생계분과부위원장은 “유가족 대부분이 지난 8개월간 세월호 특별법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니고 국회 등에서 싸우느라 몸이 아파도 자각하지도 못하고 시간적 여유가 없어 병원을 찾지 못했다. 사실 이제야 긴장이 조금 풀어지니까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시는 분들이 늘고 있다. 당장 이상이 안 나타나더라도 추후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의료지원이 어렵다고 하니 유가족들 내에서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4월 16일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다. 특이 케이스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절대적인 경우에 세월호와 관련성이 있는 질병은 12월이면 어느 정도 확인이 됐다고 본다. 당초 안행부의 계획이 올 연말까지만 지원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재원과 법적 근거 없이 추가적인 지원은 어렵다”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에 의료지원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특별법이 1월 1일에 발효될 것이라고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원이 끊긴다는 사실에 유가족들의 불안은 크다.

지역사회 회복과 치유 고민할 때
유가족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시도도 아직 첫걸음을 내디딘 정도다. 유병화 부위원장은 지역사회에 온마음센터와 이웃 등 치유공간이 들어서고 있지만, 아직 유가족의 적극적인 참여는 저조하다고 말했다. 상담이나 치유에 거부반응을 나타내는 유가족들이 많다는 것이다. 지역 시민사회에서는 특별법 국면이 여야 합의로 정리된 만큼 앞으로는 유가족을 비롯한 지역사회의 트라우마 치유에 대한 고민도 더불어 해나갈 방침이다. 장옥주 위원장은 “사고 이후 지난 8개월간 치유나 회복보다는 진상규명과 유가족들 슬픔을 함께 나누는 활동을 진행해 왔다. 이제는 지역적 회복의 문제, 치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시민사회에서 논의를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세월호에 대해 이제 그만 이야기하자는 목소리들을 어떻게 설득해가며 지역사회의 회복과 치유를 만들어갈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외부에서 볼 때는 안산이 피해지역이기 때문에 세월호 문제에 사람들이 참여하고 많이 몰릴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도리어 좀 지쳐 있거나 무감각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를 극복하고 이후의 방향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가 지금 안산 시민사회의 최대 고민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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