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민주주의 미래 가늠할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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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타이완, 홍콩에서 민주주의와 자기결정권을 둘러싼 열기가 뜨거운 것과는 반대로, 동아시아의 주요국인 한국, 중국, 일본의 상황은 권위주의적 통치행태를 강화하고 있어 우려된다.

동아시아에서 오키나와는 동중국해에 흩어져 있는 작은 열도이지만, 오늘날 동아시아의 긴박한 정세를 생각해 보면, 민주주의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할 수 있다. 오키나와를 둘러싼 동아시아적 상황을 간략하게 진술해보고 이 상황에 대한 생각을 밝혀보자.

오키나와 현 지사 선거 및 중의원 선거에서 ‘올 오키나와’ 진영이 압승을 거뒀다. 아베 일본 총리의 기습적인 중의원 해산 이후 치러진 이번의 총선거는 표면적으로는 아베 정권을 지탱하는 자민당과 공명당의 압승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압승’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일본 중의원 선거가 치러진 12월 14일 투표소를 찾은 한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선거 결과 오키나와현 4개 선거구에서는 연립정권을 구성했던 자민·공명당 양당이 한 의석도 얻지 못하고 대패했다. | 블룸버그 연합뉴스

일본 중의원 선거가 치러진 12월 14일 투표소를 찾은 한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선거 결과 오키나와현 4개 선거구에서는 연립정권을 구성했던 자민·공명당 양당이 한 의석도 얻지 못하고 대패했다. | 블룸버그 연합뉴스

먼저 헌법 개정이나 외국인 차별 등의 문제에서 극우적 지향을 노골화한 ‘차세대당’이 이번 선거에서 사실상 소멸했다. 이것은 아베의 강경 극우 정책에 대한 일본 시민들의 반발감과 견제심리가 작동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자민당의 경우도 중의원 수가 이전에 비해 근소하기는 하지만 감소했다.

<도쿄신문>이 선거 후에 분석한 두 가지 쟁점, 즉 아베가 주창하고 있는 ‘헌법 9조 개정’과 ‘원전 재가동’ 정책에 대한 자민당·공명당·차세대당의 지지 의석수 분석을 보면, 이를 조금 자세히 알 수 있다. 가령 ‘헌법 9조’ 개헌에 대한 찬성 의석수는 선거 전 314석에서 선거 후 292석으로 감소했다. ‘원전 재가동’ 문제에 있어서도 선거 전 찬성 의석수는 345석에서 327석으로 감소했다. 이 감소 의석수의 많은 부분은 아베 정권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정책과 항의를 지속하고 있는 공산당의 약진으로 나타났다. 공산당은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22석을 확보함으로써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자민당의 완패로 끝난 오키나와 선거
가장 주목할 만한 이번 선거의 징후로는 오키나와 선거구에서의 자민당 소멸현상이다. 오키나와 현에는 총 4개의 선거구가 있다. 이번 선거는 지난번 지사 선거와 마찬가지로 후텐마 기지의 북부 헤노코로의 이설 반대가 가장 큰 오키나와의 쟁점이었다. 선거 전에도 자민당과 공명당이 고전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고전을 넘어 완전한 패배였다. 자민·공명 연립정당이 소멸한 대신 오키나와에서는 공산당, 사민당, 생활당, 무소속 후보가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지역구 선거에서의 자민당 후보의 전멸은 아베 정권의 여러 우경화 정책과 더해진 오키나와의 군사기지화에 대해 오키나와 현민들이 갖고 있는 심각한 비판의식과 주체화의 열망을 보여준다. 물론 오키나와 현에서 자민·공명 두 당이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다. 규슈 지역 비례대표 선거 결과 지역구에서 낙선한 후보들이 가까스로 생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환한 자민·공명 두 정당의 의원들이 일본 본도의 의견을 기계적으로 피력할지는 미지수이다. 오키나와의 민심을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에서 중의원 선거가 있기 직전 타이완 역시 총선거가 있었다. 이 총선거에서 집권 국민당은 대패했다. 국민당이 총선에서 대패한 가장 큰 원인을 현지 언론은 타이완과 중국 사이의 FTA 추진 등으로 타이완 시민들이 처하게 된 현실의 불안감에서 찾고 있기도 하다. 오늘의 중국과 타이완은 과거 대일 항쟁기의 국공합작과는 다른 형태지만, 중국과 타이완 사이의 양안관계를 경제적 단일시장을 만들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국공합작’으로 진행시켜 왔다. 그러나 그것만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올해 타이완의 청년들이 정부의 원자력발전 건설계획을 백지화하기 위해 입법부 청사를 포위하는 항의데모를 전개시켰던 데서 알 수 있듯, 국민당의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권위주의적 통치는 민심을 이반시켰다.

홍콩의 경우도 가파른 정세가 전개되었다. 지난 두 달간 홍콩에서는 ‘우산혁명’으로 명명된 학생들과 시민들의 도심점거 시위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원인은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 중국 정부가 친정부 인사를 임명하는 방식의 조처를 취할 것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이번 홍콩 시민들의 ‘피플파워’가 있기 이전에도 홍콩은 중국 본국의 ‘국민교육’ 강제시행에 항의하는 시위를 거국적으로 전개시켰던 기억을 갖고 있다. 중국 반환 이후 홍콩의 민주주의 요구는 오키나와와 꼭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홍콩의 주체성에 대한 자각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아베 총리의 거침없는 일본 우경화
오키나와, 타이완, 홍콩에서 민주주의와 자기결정권을 둘러싼 열기가 뜨거운 것과는 반대로, 동아시아의 주요국인 한국, 중국, 일본의 상황은 권위주의적 통치행태를 강화하고 있어 우려된다. 한국의 경우 박근혜 정권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루는 언론 자유, 정당활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우경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결정했다.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경색국면으로 가고 있다는 해석을 분명히 한 사건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거침없어 보인다.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이라는 아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군대 보유 금지와 전쟁의 영구적 포기를 명시하고 있는 ‘헌법 9조’ 개헌에 나서기 위한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후쿠시마 핵 재난이 일어난 지 불과 3년이 지난 셈인데도, 아베 정권은 원자력발전소 재가동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에서 명료하게 드러나는 아베의 목표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가자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아베가 생각하는 ‘보통국가’인 셈이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가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면 주변국은 긴장하고, 고조되는 긴장의 결과는 무력적 대비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동중국해 오키나와 인근에서의 중국과 일본의 무력충돌이 가상의 시나리오로 자주 상정된다. 이 시나리오를 내세우는 것은 대체로 일본인데, 이런 시나리오가 한·일관계로 확장되면 가령 독도를 둘러싼 무력분쟁을 상정하는 것 역시 합리적일 수 있게 된다.

중국과 미국이 경제적으로는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군사적인 차원에서는 동아시아에서 대립각을 높여가는 것 역시 좋은 신호는 아니다. 아마도 그 분쟁의 핵심 장소는 오키나와가 될 확률이 높고, 한반도 역시 그 영향권에 들 수밖에 없음은 현재의 교착된 대북문제를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현재의 동아시아에서 분쟁과 대결의식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처가 필요하다. 첫째는 적대적인 상황에 있는 남북관계의 개선이다. ‘통일대박’의 구두선을 넘어설 남북 간의 실질적인 대화와 협력 조처가 모색되어야 한다. 둘째는 오키나와의 비군사화를 통한 미·중, 중·일 간의 적대감 혹은 긴장감의 해소다. 물론 두 과제 모두 단기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력이 아닌 민주주의로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실천이다. 이 믿음과 실천의 핵심에 작은 열도 오키나와와 거대한 동아시아의 운명이 연루되어 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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