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되돌아 간 좌우대결 통진당 정당해산 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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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마지막 변론기일에 ‘북한 연계’ 뚜렷한 근거 나온 것 없어… 황교안 법무 “최선” 통진당 “정부 무덤 판 것”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마지막 변론기일이 있었던 지난 11월 25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익숙한 장면이 펼쳐졌다. 이런 사건에서 으레 그랬듯이 진보와 보수 단체는 번갈아가며 헌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내용도 뻔했다. 한쪽은 반대, 한쪽은 찬성. 통합진보당 강제해산반대 범국민운동본부 측은 진보당 해산이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행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뒤이어 어버이연합,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들은 진보당 해산을 촉구했다. 통합진보당 당기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도 이뤄졌다.

하나도 새로울 게 없었지만 마치 세 과시가 헌재 판결에 영향을 미치기라도 할 듯 양측은 기세를 올렸다.

11월 25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왼쪽)와 변호인단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정당해산심판 마지막 변론에 참석해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김영민 기자

11월 25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왼쪽)와 변호인단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정당해산심판 마지막 변론에 참석해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김영민 기자

법리논쟁 뒤엔 레드 콤플렉스 숨어 있어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을 보노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50~60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인상이다.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은 겉으로는 법리논쟁을 띠고 있다. 싸움터도 헌법재판소다.

하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다.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에는 빨간 색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는 레드 콤플렉스가 숨어 있다. 양측 진영이 헌재 앞에서 번갈아가며 집회를 연 것 자체가 이를 잘 보여준다.

겉으로 보기에 통합진보당은 여러모로 궁지에 몰렸다. 이석기 의원 사건에서 내란음모 부분은 2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유죄는 2심도 인정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찬성하는 의견이 60%를 넘는다는 여론조사결과도 발표됐다.

정치적·정서적 싸움에선 통합진보당이 수세에 몰려 있는 것이다. 이날 최후변론에 나선 이정희 통진당 대표가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들고 나온 것도 이런 흐름을 바꿔보자는 의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 대표는 변론에 앞서 당원들을 인터뷰한 동영상을 틀었다. 농민·해고노동자·장애인·주부 등이 등장해 진보당 존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왜 당이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폭력혁명론을 근거로 진보당을 북의 조종에 따라 활동하는 위헌정당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냐”며 “정치적 의견의 차이를 적대행위로 몰아붙이는 행위 자체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후 6시가 훌쩍 넘어 최후변론이 모두 끝났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무거운 표정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짧은 말만 기자들에게 던지고 차를 타고 헌재를 나갔다. 변론을 방청한 보수단체 소속 이석인 목사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통합진보당은 회개하라!”고 외치려 했지만 헌재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만류로 구호를 외치진 못했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의 표정은 꽤 밝아 보였다. 한 진보당 당원은 정부 측의 논리에 새로운 게 없었다며 “우리가 북한과 연계됐다는 아무런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정부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라며 정당해산심판이 철회될 것이라 자신했다.

지난해 11월 5일 국무회의에서 법무부가 긴급 안건으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심판을 청구한 것 자체가 정부의 레드 콤플렉스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영국을 방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전자결재로 국무회의 결정을 승인했다.

애초 통합진보당은 정부가 정당해산청구 제도를 남용했다고 보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 정부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이 제도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도입됐다. 이승만 정부가 임의로 조봉암의 진보당을 해체하자, 제2공화국 정부가 정당 해산 권한을 정부에서 헌재로 넘긴 것이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정당해산 제도는 정부에 의한 야당 탄압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것인데 현 정부가 엉뚱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종북몰이를 통해 2013년 초반부터 끊임없이 논란이 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덮기 위해 내란음모 사건을 일으키고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되어야 한다는 정부 측의 논리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통합진보당의 강령 자체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 측은 진보당의 겉과 속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최후변론에서 정부 측 임성규 변호사는 독일 공산당 사건을 거론하며 “피청구인의 표면적 목적 안에 숨겨진 진실이 과연 무엇인지 파악하도록 노력해 주시기를” 헌법 재판관들에게 당부했다.

독일 공산당 사건은 1951년 독일 정부가 공산당(DKP)에 대한 해산을 청구해, 5년 뒤 해산 결정을 이끌어낸 사건이다. 10여년 뒤 공산당이 사실상 재건됐지만 또다시 해산심판 청구가 내려진 바는 없다. 심지어 1996년에는 독일연방 헌법재판소장이 40년 전의 정당해산 결정이 잘못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독일 공산당은 냉전 시기 다른 공산당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중심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목표를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있었다. 반면 통합진보당이 내거는 이념은 ‘진보적 민주주의’다. 정부 측은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보적 민주주의’란 표현 자체가 사회주의 지향을 포기하면서 나온 것이다. 민주노동당 시절 강령은 사회주의 지향이 명확했다. 당시 강령은 소련·북한식 사회주의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국가의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발전시킨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2011년 6월 통합진보당을 출범시키려던 현 진보당 당권파 세력은 사회주의 관련 조항을 삭제했다. 국민참여당 등 통합 대상들이 ‘사회주의’란 표현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당해산심판 초창기 정부는 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1945년 김일성 북한 주석이 시작한 표현을 따온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조봉암의 진보당 등 과거 정치세력들도 이 표현을 사용했으며, 무엇보다 김일성의 1945년 발언이 실재했는지 근거가 불명확했다. 이후 정부 측 변론에서 ‘진보적 민주주의’의 기원이 김일성이란 주장은 쏙 들어갔다.

정부 측, 민혁당 잔존세력 입증에 초점
정부 측 주장의 두 번째 요지는 통합진보당이 북한과 직접 연계된 세력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정부 측의 증인 이광백, 김영환 등이 주되게 주장한 것이다.

민혁당 출신으로 알려진 이광백 자유조선방송 대표는 7월 22일 11차 변론기일에 정부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이 대표는 RO에 3개 지역위원회, 18개의 조직, 3500명의 조직원이 있다고 증언했다. 또한 이석기 의원이 관리하는 4개 RO 조직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2심 재판부에서 RO의 실체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정부 측에서도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을 많이 연결짓지 않고 있다. 법무부 위헌정당 TF팀장인 정점식 검사는 최종 변론에서 RO를 언급하지 않았으며, 이석기 의원 관련한 내용도 변론 말미에 잠시 포함시켰다.

이석기 사건 재판과정에서 RO가 부정되자 정부 측이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을 증인으로 세웠다는 것이 통합진보당 측의 주장이다. 한 진보당 관계자는 “고등법원에서 내란음모와 RO가 인정이 안 되니까 그때부터 정부 측에서 민혁당 잔존세력을 들고 나왔다. 이것을 입증하려고 김영환씨를 증인으로 불러낸 것”이라며 “아마 변론이 좀 더 진행이 됐으면 민혁당을 앞세우는 지금 논리도 또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10월 21일 열린 16차 변론기일에 출석했다. 김 연구위원의 주장의 구조는 앞의 이광백 대표와 비슷하다. 1990년대 민혁당 조직이 현재도 유지되고 있으며, 민주노동당 창당 역시 민혁당의 방침에 따른 것으로 추측된다는 것이다. 또한 김 연구위원은 1995년 자신이 북한으로부터 돈을 받아 당시 지방선거 후보였던 이상규, 김미희 의원의 선거자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정점식 검사도 최후변론에서 민혁당 잔존세력이 통합진보당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측은 김 연구위원의 주장 역시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김 연구위원 본인이 변론에서 1997년 이후에는 민혁당 인사들을 만난 바가 없다고 진술했다. 또한 이상규, 김미희 의원은 김 연구위원으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은 적이 없다며 김 연구위원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섰다.

통합진보당 측이 정부의 레드 콤플렉스 공격을 무너뜨리는 데 방어를 집중한 것도 당연했다. 자기 당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권영길·노회찬 전 의원을 증인으로 부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각각 8차, 17차 변론에 참석한 두 사람은 통합진보당의 강령에 위헌성이 없으며, 진보당이 북한과 연관되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특히 권 전 의원은 본인이 직접 소위 ‘군자산의 약속’으로 불리는 2001년 9월의 NL계열 모임에 참석해 조직적 참여를 호소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권 전 의원은 민주노동당의 모델은 북한의 조선로동당이 아니라 브라질의 집권당인 노동자당이라고 증언했다. 정부는 북한 추종 세력이 ‘군자산의 약속’ 행사를 통해 민주노동당에 대거 입당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후신인 통합진보당까지 위헌정당이라는 주장을 해 왔는데, 권 전 의원이 이를 반박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빠르면 12월 이내에 정당해산 심판 선고를 할 전망이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현재로선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분명한 것은 그동안 조금씩 전진해 왔던 한국의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레드 콤플렉스도.

한국이 레드 콤플렉스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아니면 아직도 사로잡혀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게 진짜 시험인지도 모른다.

“증거 없으니 더 위험하다는 논리 황당”
이상규 통진당 의원 “재판 내내 위헌 여부보다 북한 연계 여부만 따져”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최후변론이 끝난 지난 11월 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을 만났다. 그는 “재판 내내 진보당이 헌법을 위배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북한과 연결됐느냐 아니냐만 가지고 시종일관 얘기가 됐다”며 씁쓸해했다.

강윤중 기자

강윤중 기자

최후변론까지 끝났는데.
“법리로만 따지면 이미 결론이 난 거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법무부는 일관되게 당의 핵심인 이석기가 총책인 RO가 내란음모를 획책했기 때문에 진보당이 위헌정당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RO도 실체가 없고 내란음모도 무죄로 나오니까 이젠 민혁당 잔존세력을 거론하고, 김영환씨가 나와서 화룡점정을 찍은 거다. 최후변론에서도 새로운 사실이나 증거를 댄 게 아니라 레토릭(수사)만 말했다. 통합진보당이 정말 폭력혁명 집단이면 왜 해산을 시키나. 전부 구속해서 영원히 사회와 격리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북과 연계된)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일심회 사건처럼 과거에 있었던 사건만 가지고 계속 이야기를 한다.”

재판 과정에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부분은 뭔가.
“정말로 북한과 진보당이 연계된 증거가 하나도 나온 게 없다. 그런데 드러난 증거가 없으니 더 위험하다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그럼 뭐 이제 할 말이 없는 거다. 사실 그런 발언이야말로 위헌적 발언이다. 증거도 없고, 형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무죄추정을 해주질 않는다. 법치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지금 법치주의를 거부하고 있지 않나.”

김영환씨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이 의원에게 선거자금 500만원을 지원했다고 하던데.
“난 김영환씨가 참 괘씸하다고 생각한다. 500만원이면 꽤 큰 돈인데 나나 김미희 의원이나 엄청 고생을 해가며 선거를 치렀다. 김씨에게 직·간접적으로 돈을 받은 바도 없다. 그 사람이 북한에서 돈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알 도리가 없지 않은가. 전형적인 ‘아니면 말고’ 식 생사람 잡기다.”

다른 야당의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한 것 같은데.
“지난해 이맘 때 정부가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을 때 의원단 전원이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했다. 당시 민주당 등 다른 당 의원들은 우리 근처에도 오질 않았다. 혹시 우리랑 함께 사진이 찍혀서 종북으로 몰릴까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당시 민주당 지도부도 정당해산심판 청구가 부당하다는 입장을 냈다. 최근에도 인재근 의원 등 정당해산심판을 철회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종북 이미지를 벗기 위해 진보세력이 전략적으로 반북을 외치자는 주장도 있다.
“집권세력은 우리에게 전향서 쓰기를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는 쓸 생각이 전혀 없다. 진보세력이 그동안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노동의 가치를 지켜왔는데 여기에 공격이 들어오면 반노동자를 외칠 것인가. 노선은 토론을 통해 변하는 것이지 강요와 협박에 못 이겨 노선을 바꾸는 것은 진보적이지 않다. 이번 사건이 진짜 진보와 사이비 진보를 가르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통합진보당에 씌워진 종북 이미지는 어떻게 벗을 생각인가.
“종북 프레임을 벗자고 반북을 말하자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특정한 사건을 두고 북한의 잘못이 있으면 스스로 판단을 해서 북한을 비판하면 된다. 정권의 공세에 못 이겨서 하는 것과는 다르다. 진보당은 모든 핵에 반대한다고 말해 왔고, 당연히 북핵 등 모든 군사적 핵에도 반대한다.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나 권력구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는 꾸준히 냈다. 다만 선정적으로 하지 않았을 뿐이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선언하면 어떻게 할 건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마지막까지 의원들은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고, 당원들은 진보당의 존재를 알리는 활동을 해나갈 것이다. 당이 해산되면 정당 보조금은 없어지겠지만 당원들이 어디로 없어지는 건 아니다. 헌재 결정의 부당함을 알리는 여러 가지 후속 활동을 당연히 하게 되지 않겠나.”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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