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FTA에서 늘 ‘남는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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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간산업이란 측면에서 자동차산업 보호받는 만큼 사회적책임 다해야

지난해 11월 1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공청회에서는 특이한 광경이 연출됐다. 토론자로 나선 박천일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한국 정부가 TPP에 조기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실장은 “산업발전 단계가 다양한 국가들이 모인 TPP에 참여하면 역내 분업구조를 바탕으로 한 생산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어 생산비가 절감되는 등 산업적 효용이 크다”고 말했다.

그런데 공청회가 끝난 뒤 현대자동차그룹 내 통상분야 담당직원이 박 실장을 따로 찾아갔다. 그는 “말씀하신 내용이 무역협회의 공식 입장인가요. 공평하게 얘기를 해주셔야죠”라며 항의했다. 한국이 TPP에 참여할 경우 현대·기아차가 겪게 될 어려움은 충분히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이 그동안 체결해온 FTA는 이른바 ‘자동차 FTA’였다. 현대차그룹 해외수출에 도움이 되는 FTA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무역협정이 현대차그룹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TPP 공청회에서 벌어진 광경이 이를 방증한다. 11월 10일 실질 타결된 한·중 FTA, 한국이 참여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TPP는 현대차그룹이 불편하게 여겨온 무역협정이다.

한·중 FTA는 결국 자동차가 양허(관세 철폐) 대상에서 빠지면서 현대차그룹이 원하는 대로 협상이 마무리됐다. 향후 한국이 TPP에 참여한다 해도 한국으로 들어오는 일본차에 붙는 관세가 즉시 철폐될 가능성은 낮다. 정리하면 현대차그룹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정부의 동시다발적 FTA 추진으로 인해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았던 셈이다. 이 같은 ‘불패 신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난 9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에서 세번째)이 인도에 있는 공장을 방문해 신형 i20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9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에서 세번째)이 인도에 있는 공장을 방문해 신형 i20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중FTA 자동차 양허대상서 빠져
한·중 양국은 FTA 협상 과정에서 자동차는 서로 양허 대상에서 제외하는 데 합의했다. 한국산 자동차가 중국으로 수출될 때 붙는 관세, 중국산 자동차가 한국으로 들어올 때 붙는 관세 모두 현행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중국보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우위에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중국 시장을 충분히 열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중국 현지생산체제를 갖췄다. FTA 발효 시 관세인하 혜택을 누릴 여지가 크지 않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중국 현지에서 158만대를 생산했다. 현대차 103만대, 기아차 55만대다. 반면 한국 공장에서 생산해 중국으로 수출한 차량은 현대차(1만7501대), 기아차(3만991대)를 합쳐 4만8492대다. 현지 생산물량의 3%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되레 중국산 독일차가 한국에 들어오는 게 걱정거리다. 폴크스바겐, 아우디, 포르셰 등을 망라한 폴크스바겐그룹은 지난해 중국 생산물량이 313만대가량에 이른다. 지난해 중국에서 30만대 양산체제를 갖춘 BMW는 중기적으로 40만대 체제를 갖추기 위한 계획을 진행 중이다. 독일차 브랜드들은 중국 내수 수요 증가를 겨냥해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내수 수요가 정체기에 접어들 경우 남는 물량을 어디서 소화하려고 할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김태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이사는 “중국이 시장이 크긴 하지만 한국 업체들이 이미 현지화 전략으로 가고 있고, 수출물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만약 한국 시장이 개방되면 향후 중국산 독일차 등이 들어올 우려도 있어 신중하게 한·중 FTA 협상을 해야 된다는 게 업계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TPP 역시 현대차그룹에는 골칫거리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말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 관심을 표명한 뒤 12개 참여국과 예비 양자협의를 벌이고 있다. 아직 참여 여부가 정해지진 않았지만 만약 한국이 참여할 경우 사실상 한·일 FTA를 체결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일본이 이미 TPP에 참여하고 있어 한국이 뒤늦게 이 협정에 참여하려면 일본과 자동차를 포함한 상품분야 양자협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으로 들어오는 일본차에는 관세 8%가 붙는다. 일본으로서는 이 8%를 TPP 발효 즉시 없애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TPP 발효 즉시 일본차에 붙는 관세 8%를 철폐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관세 즉시 철폐 시 일본차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면서 현대차그룹의 내수시장 점유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TTP, 일본차 관세 철폐 가능성 적어
현대차그룹이 이처럼 FTA에서 늘 ‘승자’가 되는 것은 자동차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부인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특히 후기자본주의로 접어들수록 글로벌 기업이 국가보다 우위를 보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FTA 시대’로 접어들면서 국가가 FTA 상품 양허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장에 빼앗긴 권력의 일부를 되찾아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개방할 품목과 그렇지 않은 품목을 짤 수 있는 칼자루를 쥐는 순간 정부의 힘은 막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중 FTA를 포함한 13개의 FTA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 정부는 결국 현대차그룹에 불리한 협상을 하지 않는다. 대기업의 막강한 ‘로비력’도 작용하겠지만 한국이 그동안 어렵게 육성해온 자동차산업에 불리한 정책 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산업은 산업 전후방 연관효과, 고용효과가 매우 크다.

자동차산업의 국내 경제 기여도를 고려해 현대차그룹에 불리하지 않은 FTA가 지속적으로 체결될 수밖에 없는 조건인 만큼 현대차그룹이 이를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사내하청 등 고용문제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지만 현대차는 1심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한 상태다.

<김지환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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