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해외자원개발

자격 없는 가스공사 유전개발 ‘상왕’ 이상득·‘왕차관’ 박영준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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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공사가 전담하는 유전개발 업무에 가스공사 뛰어들어…

위법 논란일자 SD가 법개정안 대표발의, 박 차관은 지경부 소극적인 기류 뒤집고 개정 옹호

이명박 정부의 핵심 실세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이 유전사업을 할 수 없었던 한국가스공사가 유전사업을 할 수 있도록 주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전 의원과 박 전 차관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부터 해외자원개발을 명목으로 국부유출을 초래한 핵심 인사들로 지목받고 있다.

새정치연합 ‘MB정부 국부유출 자원외교 진상조사위원회’ 부좌현 의원에 따르면 가스공사는 지난 2010년 1월 이라크에 있는 주바이르 유전과 바드라 유전 개발사업에 참여했다. 이라크 국영회사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한 가스공사의 총사업비는 각각 93억5000만 달러(9조9000억원), 17억1000만 달러(1조8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가스공사는 주바이르 광구 지분 23%를, 바드라 광구 지분 22%를 갖고 있다.

이상득 전 의원이 1년 2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2013년 9월 9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이상득 전 의원이 1년 2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2013년 9월 9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이라크가 석유공사 제외해 불가피”
원래 가스공사는 유전 개발사업을 할 수 없었다. 가스공사법과 정관에 따르면 천연가스와 액화석유가스 개발 및 공급 등 가스사업만 하게 돼 있었다. 유전 개발업무는 한국석유공사 소관이었다. 공기업의 업무중복을 피하기 위해 관련법에 업무범위를 엄격하게 구분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가스공사는 이를 어기고 이라크 유전 개발사업 입찰에 참여했다. 당시 석유공사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의 유전사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쿠르드 자치구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라크 정부가 석유공사를 입찰에서 제외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석유공사 대신 가스공사로 하여금 입찰에 참여하게 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당시에 이라크 유전 개발 수주와 관련해서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서 (정관 변경 없이) 입찰에 참여한 것 같다”며 “원칙적으로는 유전 개발 전담 공기업인 석유공사가 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스공사가 들어갔다”고 해명했다.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가스공사의 이라크 유전 개발 참여와 관련해 ‘불법’ 논란이 일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가스공사법의 개정 없이 현행 규정 안에서 가스공사가 유전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이론상 및 법해석상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유전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법률 개정이 선행되어야 적극적으로 유전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가스공사가 모 법무법인에 이라크 유전사업 계약 관련 검토를 요청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이 법무법인은 “원유를 취득하는 것이 이라크 사업의 중심이 된다면 천연가스에 관련된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 부합되지 않을 수 있다”며 가스공사에 정관 개정을 권고했다.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2012년 5월 7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 김창길 기자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2012년 5월 7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이 같은 지적이 잇따르자 2010년 3월 가스공사도 석유자원의 탐사·개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가스공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 법안의 대표발의자가 바로 이상득 의원이었다. 법안 발의·정책 개발 등 의정활동을 거의 하지 않던 6선의 이 의원이 법안 발의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가 국회의원 재임 기간 중 대표발의한 법안은 총 6건뿐이다. 그것도 대부분 초·재선 때였다. 18대 국회에서는 가스공사법 개정안이 유일했다.

이상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 의원은 가스공사를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상임위인 국회 지식경제위 위원이 아닌 외교통상통일위 위원이었다. 일반적으로 법안 대표발의는 소관 상임위원이 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매우 이례적이었다.

부좌현 의원은 “이상득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의정활동보다는 이명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일을 주로 했다”며 “가스공사의 불법투자가 문제가 되자 이 의원이 직접 법안을 대표발의한 것은 그만큼 급했던 사정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득 전 의원이 국회에서 가스공사의 유전사업 합법화를 주도했다면 정부에서는 박영준 전 차관이 총대를 멨다.

법안이 국회에 처음 제출됐을 때만 해도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과 지식경제부는 이 법안 통과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자원외교 국부유출 핵심인물로 지목돼
당시 국회 지식경제위 법안소위 회의록(2010년 4월 22일, 11월 16일)을 보면 김영학 지경부 제2차관은 “정부 의견은 이것을 좀 더 검토해서 반영을 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갖고 있다”며 신중론을 펼쳤다. 한나라당 권성동 의원도 “(유전사업을 하려면) 해외에 나가서 탐사와 정보수집을 하는 일과 관련해 인력 양성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이 사업을) 1개 기관에 몰아줘서 석유공사로 하는 게 맞다. 굳이 인력과 노하우를 나누고 이중으로 비용을 들일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특집| 해외자원개발]자격 없는 가스공사 유전개발 ‘상왕’ 이상득·‘왕차관’ 박영준 합작

하지만 이 같은 분위기는 김 차관이 경질되고 자원외교 실무사령탑으로 박영준 차관이 지경부에 오면서 급변했다. 박 차관은 국회에 출석해 가스공사의 유전 개발 참여를 옹호했다. 박 차관은 “석유공사가 이라크 중앙정부의 반대에 걸리면서 가스공사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며 “가스공사와 석유공사의 기본체계를 존중하되 현실적인 가스공사의 그런 애로부분은 해소해주는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여야 의원들을 설득했다.

이후 국회에 계류 중이던 가스공사법 개정안 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 법안은 가스공사가 이라크 사업에 참여한 지 1년 2개월 후인 2011년 3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일단 불법적으로 유전사업을 진행한 뒤 뒤늦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부좌현 의원은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지식경제부는 ‘왕차관’으로 불린 박영준 제2차관이 임명되자마자 법안 처리에 적극적으로 변했다”며 “이는 해외자원외교에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차관이 개입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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