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된 내부제보자와 이상한 전문위원 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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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지공사 사장 비리 의혹 새누리당 의원실에 고발한 직원은 해직되고 의원실 비서관은 전문위원으로 입사

수도권매립지공사의 김 부장이 ㄱ씨를 만난 건 지난 7월 중순이었다. 김씨는 5월부터 시민단체 등과 연계해 송재용 매립지공사 사장의 업무추진비 유용·횡령 의혹을 정부기관에 알려왔다. 인천지역 언론을 비롯해 언론에서 송 사장의 비리의혹을 기사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국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송 사장 측도 “업무추진비를 규정에 어긋나게 집행한 사실이 없다”며 버텼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에 만난 게 ㄱ씨였다. ㄱ씨는 이학재 새누리당 의원(인천 서구·강화갑) 지역구의 전 조직부장이었다. 김씨는 “당혹스러운 건 내가 먼저 의원실에 제보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의원 측 인사가 먼저 송 사장의 비리를 신고해달라고 요청해 왔다”고 말했다. 7월 16일, 김씨는 ㄱ씨의 소개로 이학재 의원실의 보좌관을 만났다. 그리고 자신이 확보한 자료들을 이메일로 넘겨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 10여 명이 인천시 서구에 위치한 수도권 매립지 현장실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 10여 명이 인천시 서구에 위치한 수도권 매립지 현장실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 의원실의 보좌관은 김씨를 만난 뒤 김씨가 보낸 자료를 매립지공사에 전달했다. 이후 사장 등 공사 간부들은 긴급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감사실장이 김씨가 의원실에 보낸 문건을 읽었다. 김씨는 자신의 제보 사실이 탄로났음을 직감했다. 며칠 뒤 김씨는 감사실장이 자신의 제보자료가 담긴 이메일을 해킹했다고 생각해 경찰에 고발했다. 고발과 함께 내부 제보자가 김씨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김씨는 9월 22일 해고됐다. 자신의 이메일 해킹 의혹 등을 언론에 알려 “공사의 명예와 위신을 실추시켰다”는 이유에서다.

내부에서 ‘배신자’로 낙인찍인 제보자
신원 노출의 진원지로 지목된 곳은 이학재 의원실이었다. 의원실 측은 자신들이 제보자 신원을 노출할 이유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제보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공사 측에 질의 차원에서 김씨가 보낸 첨부파일을 보내줬을 뿐이다. 제보자의 신원이 노출될 만한 것은 단 한 글자도 싣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의원실 해명의 신뢰성을 의심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올해 10월 중순까지 이 의원실에서 일하던 김모 비서관이 국정감사 직후인 10월 27일 매립지공사 전문위원으로 입사한 것이다. 매립지공사에 따르면, 김 전문위원은 연봉 6700만원으로 1년 계약했다.

배밭에서 갓끈을 고쳐 맸으니 의심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김 전문위원은 “2003년 인턴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국회의원실에서 일을 했다”며 전문위원 채용 요건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사 전문위원이 국회 비서관보다 임금이나 권한이 강한 것도 아니다. 혜택이 없는데 특혜채용, 보은인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매립지공사의 내부비리가 외부에 알려지기 전부터 공사 측과 접촉해 왔다며 제보자 신원 노출 논란과 자신의 채용은 “오비이락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 전문위원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었지만 김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배신자’ 낙인이었다.

7월 21일 김씨를 제외한 매립지 공사 1·2급 직원 20여명은 친필 서명이 첨부된 글을 사내게시판에 올렸다. 이들은 “공사에 대한 언론 보도와 감찰기관 투서 등으로 조직원으로서 마음이 불편하고 안타깝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우리는 당신들의 실체를 다 알고 있다”며 “조직이 싫으면 당신들이 떠나도 된다”고 말했다. 전직 노동조합 위원장들도 내부 제보자 때리기에 동참했다. 매립지공사 전임 노조위원장 4명은 8월 4일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사사로운 목적을 달성하려는 불순한 사람들의 준동으로 조직 내부가 흔들리고 동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들과 공사 직원이 있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직을 떠나라”고 했다.

한 노조 관계자는 “사장의 잘못된 업무추진비 사용에 대해선 우리도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했다. 전문위원 채용에 대해서는 당장 그분의 능력에 하자가 있는지 드러나지 않아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사장의 전횡을 감시해야 할 노동조합이 반대로 나가고 있다. 노동조합 전임 위원장들이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그래서 지금 노조도 한통속처럼 보이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한편, 취재과정에서 만난 매립지공사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김씨의 징계 전력을 문제삼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씨는 매립지공사 인사담당 부장이었다. 해임되기 전 김씨는 채용 문제와 관련해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환경부, 공사 조사결과 문제점 드러나
매립지공사 인사팀 관계자는 “우리 기관이 잘못한 점은 있지만 김씨가 언론에 팩트를 왜곡해서 제공한 부분도 있다”며 “공익 목적의 제보라기보다는 징계수위를 낮추기 위한 사리사욕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홍보팀 관계자는 “제보를 했다고 해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채용과정에서 무자격자를 선발하는 등 애초에는 중징계를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9월 12일 마무리된 환경부의 매립지공사 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씨의 제보를 순전히 허위사실로 치부할 순 없어 보인다.

환경부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매립지공사 송 사장은 업무추진비를 활용해 송씨 족보를 구입하고 자신의 지인 관련 축의금, 조의금 등으로 300여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환경부는 매립지공사가 전문성이 부족한 경찰 출신 인사를 전문위원으로 고용하는 과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매립지 골프장에 대해서도 매립지공사가 유관기관이나 언론 등에 편의를 봐줬다는 점도 드러났다. 환경부는 송 사장에게 “앞으로 업무처리에 신중을 기하라”며 엄중 경고조치를 내렸다.

매립지공사의 잘못된 경영행태는 10월 국정감사장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결과적으로 김씨는 제대로 된 제보를 하고서도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셈이다.

법적으로 공익제보자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신분상 불이익 조치나 인사조치로부터 보호된다. 김씨는 국민권익위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김씨는 경찰에 매립지공사 감사실장을 고발하기 이전에 먼저 권익위에 송 사장을 부패행위자로 신고했다. 이후 김씨는 권익위에 여러 차례 자신에 대한 신분 보호를 요청했지만 권익위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김씨는 이미 공사에서 해임된 이후인 10월 24일이 되어서야 권익위 사무실에서 최초 진술을 할 수 있었다.

김씨는 “이미 해임이 이뤄진 뒤라 사실상 권익위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며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는 “조직에서 내부고발자를 비판할 때는 고발이 아닌 다른 이유를 대곤 한다. 최근에도 내부고발자가 고발 내용의 진실성 여부 때문이 아니라 입사원서에 허위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입사 취소를 통보받은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 상임이사는 권익위나 재판부에서 ‘보복성 징계’에 대해 적극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권익위부터 큰 틀에서 봤을 때 내부고발자가 조직으로부터 보복을 당하고 있는지 아닌지 적극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또한 고발자의 신원을 보호하려면 권익위가 사건을 접수한 뒤 되도록이면 빠르게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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