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크레이지 파티’ 선거용 ‘빈 수레’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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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뒤 ‘누구나 참여하는 모바일 정당’ 깃발 들고 출범해 혁신·모바일·소통·2040 키워드 선점, 발족 6개월 만에 용두사미 조짐

최근 민주정책연구원은 ‘박근혜 정치를 넘어서’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박근혜 패러독스’에 갇혀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가 언급한 박근혜 패러독스 중 하나가 ‘민생의 패러독스’다. ‘민생의 패러독스’는 늘 중요 의제를 선점당하는 새정치연합의 무력함을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는 김대중 정부(5.0%), 노무현 정부(4.3%)보다 경제성장률이 낮다. 박근혜 정부 집권 1년차인 2013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3.0%에 그쳤다. 그럼에도 ‘민생’이라는 키워드는 박근혜 정부가 선점했다. 보고서는 박근혜 정부가 실질적 민생개선 없이 ‘민생’ 이슈를 ‘민생 vs 정쟁 구도’로 정쟁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의원토론 재보선 전 달랑 세 차례
‘선점’은 새누리당의 주특기다. 18대 대선부터 그랬다. 당시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와 복지 어젠다를 선점했다. 집권 이후에도 선점은 계속됐다. ‘혁신’ ‘모바일’ ‘소통’ ‘2040’이라는 키워드는 지난 5월 출범한 ‘크레이지 파티’를 통해 선점했다. 크레이지 파티의 의미는 ‘미친 듯이 토론하고 미친 듯이 혁신한다’는 뜻. ‘누구나 참여하는 모바일 정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크레이지 파티의 기획자는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당명·당색을 바꾸는 대변신을 이끌어낸 조동원 전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이다.

‘7·30 재·보궐 선거 유니폼 공개 시연회’에서 윤상현 사무총장, 김세연 의원, 박대출 대변인, 민현주 대변인 등이 흰색 반바지, 셔츠와 빨간모자를 쓰고 포즈를 취하며 선거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7·30 재·보궐 선거 유니폼 공개 시연회’에서 윤상현 사무총장, 김세연 의원, 박대출 대변인, 민현주 대변인 등이 흰색 반바지, 셔츠와 빨간모자를 쓰고 포즈를 취하며 선거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크레이지 파티가 발족한 지 6개월. ‘누구나 참여하는 모바일 정당’이라는 목표는 얼마만큼 달성됐을까. 그러나 현재 크레이지 파티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참여하는’ 쌍방향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토크’에 지난 6개월간 올라온 글은 50개뿐이다. 토론의 활성화를 알아볼 수 있는 댓글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의원들이 현안에 대해 직접 시민들과 토론하는 현장라이브는 5월, 6월, 7월 세 차례 이뤄졌다. 크레이지 파티와 관련된 뉴스를 올리는 크파뉴스는 7월 21일에 업데이트가 멈춰 있다.

모두 7·30 재·보선 이전이다. 크레이지 파티가 결국 세월호 참사 이후 수세에 몰린 새누리당이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를 통과하기 위한 선거용이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새누리당의 주특기는 ‘선점’이지만, 또 다른 주특기는 ‘외면’이다.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선점했다가 집권 이후 이를 외면한 것이 대표적이다. ‘크레이지 파티’도 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8월 13일 ‘토크’ 게시판에는 ‘크파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군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크파가 활성화되어 상시 정책에 대한 서명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봅니다”라는 내용이었는데 비슷한 내용의 댓글이 하나 달렸을 뿐 이에 대한 관리자의 답변은 없었다. 크레이지 파티 관계자는 쌍방향 모바일의 활성화를 위해 페이스북으로 플랫폼을 옮겼다고 하지만, 이에 대한 홍보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거를 앞두고 20만 당원을 둔 집권여당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크레이지 파티의 페이스북 페이지의 현재 ‘좋아요’ 클릭수는 606건에 불과했다.

선거용이라는 지적에 대해 조동원 전 본부장에게 물었다. 조 전 본부장은 “선거용이면 당헌·당규 바꿔가면서 왜 고생해서 했겠나. 하루아침에 활성화되고 막 들끓기는 어렵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워낙 온라인하고 친숙하지 못해서 우여곡절을 겪어가면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성과가 없지 않다. 크레이지 파티는 지난 6개월의 주요한 성과로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법안을 발의한 것을 들었다. 500명 찬반 투표에서 ‘18살 선거권을 허용해야 한다’에 찬성한 비율이 61.8%(309명)로 나타났다. 이를 반영해 김세연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다. 선거연령을 낮추는 법안은 17대 때부터 지속적으로 발의됐다. 19대 국회에서는 지난 3월 새정치연합의 이언주 의원도 발의했다. 문제는 통과다. 크레이지 파티에서 결정된 사안이 국회에서 실질적인 결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당의 의사결정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지난 11월 5일 크레이지 파티가 국회에서 연 ‘초연결사회와 미래정당’의 토론회에서는 이범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이 방청석에서 이를 방청했다. 토론회에 대한 평가를 묻자 이 부원장은 “평가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궁금한 것은 새누리당이 당의 의사결정구조의 변화를 꾀하면서까지 크레이지 파티를 통한 당 혁신을 생각하고 있느냐다. 당의 의사결정구조에 크레이지 파티를 어떤 수준으로든, 어떤 형식으로든 제도화시켜 포함시킬 것인지가 앞으로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 의사결정구조 바꾸기에는 역부족
그러나 지난 6개월의 과정을 돌이켜볼 때 크레이지 파티가 당의 의사결정구조를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훈민 크레이지 파티 민간운영위원은 “새누리당이나 국회의원 차원으로까지 크레이지 파티의 의견이 반영되는 게 시스템 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고, 그 부분에 있어서 지도부들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쉽다. 당이 정책을 만드는 통로는 국회를 통한 것이 대부분인데 그런 부분에서 실천이 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크레이지 파티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의원은 김상민 의원, 김세연 의원, 손인춘 의원, 강은희 의원, 민현주 의원 정도다.

개별 의원들이 열심히 활동한다고 해도 당의 의사결정구조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면 크레이지 파티를 통해 나오는 법안이나 정책 등은 의원 개인의 정치적 실적을 올리는 하나의 재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예를 들어 선거연령을 낮추는 것은 이미 같은 법안이 나와 있다. 물론 법안은 자구만 틀리면 다른 법안이므로 발의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선거연령을 낮추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미 발의된 법안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할 때 자구 수정을 통해 본인의 의사를 나타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본인의 이름으로 그 법을 발의했다는 것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본인의 정치적 스탠스를 알려주고 실적을 올리기 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크레이지 파티’가 출범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새누리당은 ‘크레이지 파티’라는 이름을 통해 ‘혁신’과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선점했다. 그러나 ‘누구나 참여하는 모바일 정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소통과 참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크레이지 파티가 주최한 ‘초연결사회와 미래정당’에서 김무성 대표는 “저는 아직도 크레이지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조동원 본부장이 여러 번 설명했는데 잘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반농담이었지만 이는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크레이지 파티’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방증한다. 끊임없이 새누리당은 주요 의제의 껍데기를 선점하고, 껍데기를 선점당한 새정치연합은 그 패러독스에 갇혀 옴짝달싹을 못하는 게 오늘날 여의도의 현주소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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