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돈풀기 끝, 한국경제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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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수순으로 금리 올리면 부채 늘려왔던 우리경제에 미칠 파장 상당

사상 최대의 미국발 ‘돈잔치’가 끝났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11월부터 지난 6년간 미국이 푼 돈은 4조 달러(약 4200조원)에 이른다. 이 돈은 전 세계 곳곳으로 흘러들어 추락하는 경기를 붙드는 역할을 했다. 2009년 마이너스로 떨어졌던 미국 경제와 글로벌 경제가 단시간에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한 것은 돈잔치의 효과였다.

하지만 잔치는 끝났다. 미국은 더 이상은 돈을 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경제가 어느 정도 살아났다는 이유에서다. 평가는 엇갈린다. 지표는 나아졌다지만 돈에 의한 착시현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생각보다 실물경제가 살아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신흥국이다. 그동안 미국이 뿌려준 돈에 의존하고 있던 신흥국들은 미국의 양적완화(QE) 중단에 의한 파급효과를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미국이 금리를 인상해 ‘돈 걷기’에 나설 경우에는 여러모로 골치 아파진다. 특히 초저금리만 믿고 가계와 정부의 부채를 늘려왔던 한국은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그에 따른 영향이 만만찮아 보인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면서 증시가 폭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경우다.

10월 22일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재닛 옐런 의장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10월 22일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재닛 옐런 의장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원달러 환율 오르고 주식은 하락
돈잔치가 끝났다는 선언이 나온 건 10월 29일(현지시간)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 경제의 개선 흐름이 확고하다는 판단에 따라 ‘양적완화’로 불리는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종결한다”고 밝혔다.

양적완화는 연준이 2008년 금융위기에 대응해 시중에 통화량을 늘린 정책이다. 연준은 미국의 국채와 주택담보부(모기지) 채권을 매달 수백억 달러씩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풀었다. 2008년 11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3차에 걸쳐 4조 달러 이상을 풀었다.

연준의 ‘양적완화 종료’ 선언은 예상됐던 일이다. 연준은 지난해 말부터 돈 푸는 양을 서서히 줄였다. 매달 850억 달러에 달했던 채권 매입 규모는 150억 달러까지 줄어들었다. 연준은 “현 상황에 대한 종합적 평가에 따라 양적완화 종료 이후에도 상당 기간 0~0.25% 수준의 기준금리를 유지하는 게 적절하다”고 밝혔다. 당분간은 제로 수준의 초저금리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연준이 양적완화를 중단한 것은 미국 경제가 좋아졌다는 의미도 된다. 연준이 출구전략의 기준 지표로 삼았던 고용지표 회복이 눈에 띈다. 2009년 10월 10%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현재 5.9%를 기록하고 있다. 미 경제성장률은 올 2분기 4.6%까지 회복됐다. 3차 양적완화가 시작되던 2012년만 해도 미국 경제성장률은 1%대에 그쳤다.

연준의 양적완화 중단에 대해 정부와 금융권은 “예상됐던 일”이라는 반응이다. 지난해 말부터 준비를 해온 일이라서 글로벌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불안한 징조는 있다. 일부 신흥국은 벌써 영향권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 테이퍼링(QE 부분 축소) 정책이 발표된 이후 슈퍼달러(달러화 강세)로 반전되고,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를 비롯한 신흥국 시장의 통화가치는 떨어지고 있다. 신흥국에 투자됐던 외국인 자금들이 추가로 투입되지 않거나 회수돼 떠나기 시작하면 해당국의 화폐는 평가절하되기 시작한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니 기업 투자가 줄고 증시는 떨어진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때 1000원대 붕괴가 우려됐던 원·달러 환율은 1060원대로 올랐다. 외국인 자금이 이달 들어 2조원가량 빠져나가면서 코스피지수는 1900선으로 내려앉았다.

초미의 관심사는 미국의 금리인상이다. 미국이 돈 푸는 것을 중단한 데 이어 돈 걷기에 나서면 신흥국의 부담은 두 배로 커진다. 금리인상을 얼마나 할지, 시점은 언제인지도 매우 중요하다. 연준은 이번 발표에서 ‘상당기간’(Considerable Time)이라는 표현을 썼다. 내년 하반기 정도로 금리인상을 예측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향후 고용 및 물가상승률 지표가 예상보다 빠르게 목표에 근접할 경우 현 전망보다 앞당겨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고도 했다. 경제상황에 따라서는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도 열어놓은 것이다. 이 경우 시점은 내년 초가 유력하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갑갑해지는 것은 한국 정부다. 정부는 “내년까지 확장정책을 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연준이 양적완화를 중단한 다음날에도 정부는 새로운 대출제도를 발표했다. 전월세 대책이라며 내놓은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방안’이다. 이 방안을 보면 내년부터 고교·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과 일하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2년간 매달 30만원씩 연 2%의 금리로 월세비(최대 720만원)를 대출해준다. 전월세 가격이 치솟으면 이를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른 만큼 돈을 빌려줄 테니 월세비를 내라는 의미다. 이런 대책은 전셋값 상승을 막는 데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전세의 월세 이동을 가파르게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정부는 듣지 않았다. 학자금대출에 이어 월세대출까지 받아야 하는 취업준비생들의 부담이 더 커진다는 우려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이미경 의원은 “‘빚 내서 집 사라’에서 ‘빚 내서 월세 갚아라’로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돈풀기 끝, 한국경제 괜찮나

“미국 금리인상 한국 충격 크다”
주요 국가들이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 축소에 나섰지만 한국은 반대의 정책을 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지난 3월 말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전년 같은 달 대비 6.2%에 달했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은 증가율이 1%를 넘지 않았다. 불어날 대로 불어난 가계부채와 정부부채는 곧장 칼날이 돼 한국 경제의 발목을 찌를 수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가계부채(개인부문)는 1242조원으로 금리가 1%만 올라도 연간 12조원의 이자부담이 생긴다. 가계가 이자를 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면 소비가 줄어들고, 내수가 위축되면 투자가 다시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기재부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급격한 자금 유출은 없을 것으로 자신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은 신흥국과 차별화됐다. 자본 유출이 발생하더라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의 양적완화 종료 선언 직후인 3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가진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도 정부는 “FOMC의 이번 결정은 이미 시장이 예상하고 있었고, 미국 경기가 회복세를 유지하는 사실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공언하는 것과 달리 세계는 양적완화 종료 이후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해본 정책이 아니어서 누구도 예단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출구전략은 고통 없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양적완화가 자산가치를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연준이 기대했던 만큼 실물경제 수요를 부추기지는 못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미국이 금리인상을 하게 되면 아시아 주요 5개국 중 한국의 충격이 가장 클 것”이라며 경제성장률 0.98%포인트 하락을 점쳤다. 외국인 자금 유입이 줄어 투자가 줄고 대미 수출이 축소되는 데 따른 것이다. 전제는 ‘미국이 조기에 금리를 인상해 미국 성장률이 떨어지고 시장금리가 급등할 경우’였다. 위기국면에서 한국의 리스크가 특히 클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행도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금리인상을 하면 자본유출 쪽으로 리스크가 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금리인상을 서두르지는 않겠지만, ‘됐다’ 싶으면 굉장히 급격하게 올릴 수 있다”며 “‘미국이 어떻게 할 것이다’라는 전제로 대응하면 안 되고, 미국보다 더 철저하게 사전 대비를 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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