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에 부사·형용사 남발을 자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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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초기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도 대개의 묘사가 주어, 동사, 목적어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에 관한 일화로 시작해 보자. 그는 문학과 그림, 예술 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평론가였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문학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다. 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모아놓은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남들보다 더 가진 것이라곤 글 쓰는 재주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쓰고 또 썼다. 늘 마감에 시달렸다. 집필 노동이 임계점을 넘은 어느 날 그는 신경쇠약으로 병상에 드러눕게 된다. 라이트의 작업량을 옆에서 지켜본 이라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결과였다. 담당의사는 ‘독서 금지’라는 처방을 내렸다. 다만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것은 허락했다고 한다.

투병 기간 중 그는 수천 권에 달하는 미스터리 소설을 독파했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 가운데 나만큼 미스터리를 많이 읽고 나만큼 주의 깊게 연구한 사람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라고 자부했을 정도다. 한편 ‘이렇게 형편없는 소설들이 팔리다니, 어이없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이 읽은 미스터리 소설이 가진 문제점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호평받는 미스터리 소설들의 결점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다 보니 더 나은 작품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퇴원하고 이듬해부터 라이트는 잇따라 세 편의 미스터리 소설을 발표한다.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는 일약 코난 도일을 잇는 미스터리 소설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그린 살인 사건>은 한 달도 채 안 되어 초판 6만 부가 전부 팔렸다. 이 작품으로 받은 인세가 15년에 걸쳐 원고와 기사를 쓰며 받았던 고료보다 많았다고 한다. 밴 다인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그는 자신의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탐정소설을 쓰기 위한 스무 가지 규칙’을 남기기도 했다.

그 중 스무 번째 규칙은 이렇게 시작한다. “자존심이 있는 미스터리 소설 작가라면 결코 쓰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수법을 열거해 둔다. 너무나도 자주 쓰여서 미스터리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지극히 익숙한 요소들이다. 이것들을 쓴다면 독자에게 무능함과 독창성의 결여를 고백하는 꼴이 된다.” 그가 반세기도 훨씬 전에 세운 규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길지만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봐도 좋겠다.

레이디경향 자료사진

레이디경향 자료사진

심사위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이제 공모전 얘기로 돌아와 보자. 내가 두 번에 걸친 연재에서 ‘~은 피하는 게 좋다’는 식으로 글을 전개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공모전을 위한 소설에 ‘~’한 수법이 지나치게 자주 쓰이니까. 다른 하나는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따라하기보다 나쁜 작가의 나쁜 작품을 따라하지 않는 편이 더 효율적일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타산지석의 사전적 의미를 잠깐이라도 떠올려 주기 바란다.

‘~은 피하는 게 좋다’는 것은 대가라면, 아니 대가가 아니더라도 등단한 작가라면 무시해도 상관없다. 진부한 비유, 주제와 동떨어진 묘사,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는 상황, 얼마든지 써도 무방하다. 그것은 최종적으로 독자가 평가할 문제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는 상황도 납득해 주겠다는 독자가 많다면 그게 무슨 대수겠나. 하지만 공모전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잠깐의 실수도 금세 시선을 끌어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되풀이하지만, 심사위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고 읽어야 할 작품은 많기 때문이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줄일 필요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당부를 드리고 싶다.

10) 부사(어)의 남발은 피하는 게 좋다. 문장에 자신이 없을 때 부사와 형용사를 자주 사용하게 된다. 딱 부러지게 서술하기 어려우니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이다. 당연히 문장의 의미가 애매해지고 박자감도 떨어진다. 어떤 글쓰기 책도 부사와 형용사의 사용을 권장하진 않는다. 헤밍웨이의 초기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도 대개의 묘사가 주어, 동사, 목적어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부사(어)를 얼마나 많이 삭제할 수 있느냐가 소설의 성패를 좌우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쓴다는 것에 대하여>(On Writting)에 이렇게 적었다. “작가 제프리 울프가 문학도들을 향해 ‘값싼 트릭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 역시 카드에 적어서 붙여둘 생각이다. 나 같으면 ‘값싼’이라는 단어도 빼버리겠다. 그저 ‘트릭은 안 된다’고 한 뒤에 마침표를 찍으면 된다. 트릭이란 결국에는 지겨운 것일 수밖에 없다. 극도로 현란하게 기교를 부린 문장, 또는 시시한 농담 같은 글은 나를 금방 잠들게 만든다. 작가에게는 트릭이나 교묘한 잔머리가 필요 없다.”

카버에 관해 알고 있는 작가와 비평가들이 한 목소리로 하는 얘기가 있다. 그가 늘 자신이 쓴 문장에서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저렇게 지우다가 남아나는 게 없지 않을까 걱정이 됐을 만큼 지웠다고 한다. 오에 겐자부로 역시 3000장짜리 소설을 써놓고 그 중 1000장을 삭제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카버나 오에 같은 대가들이 쓴 문장도 출간 직전에는 3분의 1 넘게 살아남지 못하고 삭제되었다. 프로작가가 아닌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 자명해 보인다. 나 같은 얼치기 심사위원이 어느 한 대목도 시시하게 여기지 못하도록 과감하게 삭제해야 한다.

문장이 간결할수록 효과적이다
최근 1년가량 일간지에 칼럼을 썼다. 주어진 지면이 200자 원고지로 8.9장(1700자)이었는데 주의주장을 전개하기에 넉넉한 분량이 아니었다. 항상 넘쳤다. 뭔가 잘라내야 했다. 이때 가장 만만한 게 부사(어)였다. 쓰기보다 고치는 데 품이 더 들었다. 그런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한 끝에 깨달았다. 부사(어)가 없어도 문장이 성립한다는 것을. 논지가 분명해진다는 것을. 글이 깔끔해진다는 것을. 소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묘사하려는 내용이 극적일수록 문장은 간결한 것이 효과적이다. 글쓰기 관련 책에서 단문이 강조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느낀, ‘공모전을 위한 소설을 쓸 때 피하면 좋을 몇 가지 것들에 대한 단상’이다. 소설 한 권 출간한 적 없는 인간이 이러쿵저러쿵 너무 떠들었다. 마뜩잖게 여긴 분들도 적지 않았으리라. 다만 이 정도 분량의 글을 읽는데도 같잖은 대목이 눈에 띄더라는 분들께는, 몇 날 며칠에 걸쳐 100여편이 넘는 장편소설을 읽으며 느꼈을 얼치기 심사위원의 심정도 조금쯤 헤아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 번에 걸쳐 쓰면서 공부가 됐다. 다시는 심사위원 같은 걸 하면 안 되겠다는 반성도 했다. 나에게만 유효한 공부가 아니었기를. 모든, 공모전을 위한 소설을 쓰려는 분들의 건투를 빈다.

<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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