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진상규명 요구, 지칠 때까지 시간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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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캠프 사고 아직도 미해결… 세월 갈수록 유가족 간 미묘한 입장차

호소할 곳 없는 사람들이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 모인다. 해외 관광객 외에는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은 곳이다. 혹시나 대통령이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듣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온 것이다.

청와대 앞에 오는 사람들 중에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유가족들도 있다. 지난해 7월 18일 공주대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2학년 학생 80명은 충남 태안군의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다. 이들은 교관의 지시에 따라 구명조끼를 벗은 채 바다에 들어갔다. 갑자기 20여명의 학생들이 갯골(모래사장이 움푹 파인 곳)에 빠졌고, 결국 5명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유가족들은 엄정한 수사와 재발 방지대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 릴레이 1인시위에 나섰다. 눈이 오고 비가 오는 날에도 이들은 빠지지 않고 1인시위를 이어갔다.

7월 17일 청와대 입구에서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유가족들이 전면 재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7월 17일 청와대 입구에서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유가족들이 전면 재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년 3개월 넘도록 유가족 한 안 풀려
사건이 터진 지 1년하고도 100일 가까이 흘렀다. 캠프 관계자 몇 명이 징역, 금고형(1년~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한은 풀리지 않았다. 처벌수위 자체가 낮은 데다가 직접적 가해자 외에는 추가 기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가족들은 이번 국정감사에 맞춰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 재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계획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가족 내부의 반대 목소리 때문에 기자회견이 무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태안 참사 유가족들은 주로 참여연대와 활동해 왔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이후에는 다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참여연대 지하강당에서 재난안전가족협의회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반면 5가족 중 2가족은 이미 지난해 정부의 위로금을 받고 청와대 1인시위에는 나서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의사자 지정 문제를 두고 나머지 가족들 사이에도 입장 대립이 나온 것이다.

사실 의사자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정부였다. 사고 직후 교육부를 대신한 공주대 총장과 유가족들은 보상금, 위로금, 국가 차원의 의사자 건의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태안 참사 유가족들은 국가가 의사자 건의 및 지정에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몇몇 유가족들은 참여연대 대신 과거 금양호 선원들이 의사자 지정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준 서민민생대책위의 김순환 사무총장을 찾았다.

아직 참여연대와 함께하고 있는 유가족 ㄱ씨는 서민민생대책위와 그쪽 유가족들이 사실상 기자회견을 막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정감사 기간 중 정부를 상대로 재수사 촉구를 압박하면 의사자 지정 추진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ㄱ씨는 난감하다. ㄱ씨의 아들은 이미 올해 5월 다른 아이들을 구하다가 숨졌다는 점이 인정되어 의사자로 지정됐다. 진상규명 요구가 자칫 ‘가진 자의 여유’처럼 보일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

국가에 의해 의사자로 지정되면 명예도 얻을 수 있고 일정액의 국가보상금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의사상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타인을 위한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한 사람에 한해 일정한 심사를 거쳐 의사자로 지정하도록 돼 있다.

ㄴ씨는 “안타까운 죽음이긴 하지만 과연 모두를 의사상자로 지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세월호 참사 때처럼 진상규명보다 의사자 지정 문제가 부각되면 오히려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7일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활동을 하다 숨진 것으로 알려진 4명의 의사자 지정이 보류된 바 있다. 구조활동을 한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김순환 사무총장은 자신 있는 분위기였다. 그는 “금양호 때도 마찬가지였고 1년간 끌어온 끝에 결국 의사자 지정을 이끌어냈다. 국가가 내린 지침에 따라 교육받다가 죽은 아이들이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라고 반문하며 “10월이 지나가기 전에 우리 단체가 추진한 일들을 정리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우리 자녀들이 국가의 부름으로 공무원인 교사들의 인솔 하에 교육을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국가가 책임지는 차원에서 희생자들을 모두 의사자로 지정을 하면 재수사 촉구는 필연적으로 뒤따라오는 것이지 지금 재수사 촉구를 먼저 강조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정치 편향성 논란에 대해 김 사무총장은 “우리를 여당 성향 단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정부가 책임질 일에는 할 말은 한다”며 “우리는 정부, 정치권과 독립된 NGO로 국민의 이익을 위해 활동해 왔다”고 답했다.

유가족 ㄱ씨는 “유가족들이 힘을 모아도 부족할 판에 사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 오가고 힘들다. 정부에서 명예졸업장이나 장학재단 설립 같은 비교적 쉬운 약속도 지키지 않으니 결국 유가족 내부의 감정싸움만 심해졌다”고 말했다.

7월 30일 씨랜드 화재참사,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등 과거 참사 유가족들이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7월 30일 씨랜드 화재참사,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등 과거 참사 유가족들이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정치단체 개입으로 유가족 간 대립
사건 이후 유가족들을 지켜봐온 생존자 부모 ㄷ씨도 “세월호 참사처럼 점점 여론의 관심이 없어지고 잊혀지면 결국 남는 사람들끼리 싸우다 끝난다. 정부에서도 시간만 끌다가 조용히 사라지길 원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과거 참사에서도 정부의 시간끌기와 정치적 시민단체의 개입으로 유가족끼리 대립하는 일이 있었다. 2005년 연천 GP 총격사건 유족들은 아직도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사병 한 명의 범죄로 보기에는 증거도 부족하고, 오히려 반증할 만한 것들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이 과정에서 지만원 등 보수인사들이 노무현 정부를 비난하기 위해 유가족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몇몇 유가족들은 지나친 정치색 때문에 유족회에서 손을 뗐다. 2010년에는 연천 GP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노력이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유족회에서 손을 뗀 유가족들은 책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단원고 유가족들과 일반인 유가족이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안을 둘러싸고 일반인 유가족들은 수사권·기소권이 없는 특별법에 찬성한 반면, 단원고 유가족들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급기야 9월 29일에는 일반인 유가족들이 안산에 위치한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일반인 희생자들의 영정을 빼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사고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가족들이 육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해지면서 의견대립이 생길 수도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주문했었다.

태안 참사 생존자 학부모 ㄷ씨의 아이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다. 최근 졸업사진을 찍었다. ㄷ씨는 “먼저 떠나간 아이들의 의자를 놓고 졸업사진을 찍은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ㄷ씨는 “대형 참사가 터졌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모델을 아이들에게 보여줬어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가 더 부끄럽다. 아이들은 1년여 전에 죽은 친구들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데 우리 어른들은 벌써 다 잊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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