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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있는 상대’ 행동 보여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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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3인 방한은 고위급회담 주도 뜻… 일방적 강요보다 상호주의적 접근 필요

북한의 권력서열 2위 황병서 국방위 부위원장 겸 총정치국장, 3위 최룡해 당비서, 대남정책 총책임자 김양건이 10월 4일 아시안게임 폐회식 참가를 명분으로 인천을 방문해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등 한국의 안보·통일 실무 책임자들과 총리 및 여야 대표 등을 만나고 돌아갔다.

최근 북한의 아시안게임 응원단 파견 불발, 우리 탈북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북한의 인권문제를 따갑게 비판한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 연설, 그리고 북한의 거센 반발 및 대남 비방으로 남북관계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악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들 북한 실세 3인방의 방한으로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이 10월 말쯤에 이루어지게 되고 남북관계는 새출발의 계기를 맞았다.

이런 맥락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고위급 인사들을 파견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향후 한반도 정세를 전망해 본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0월 8일 현대화공사를 마친 공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0월 8일 현대화공사를 마친 공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정은이 이들 3인을 보낸 직접적인 이유는 수령 통치행위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자기가 보낸 선수들이 기대한 성과를 거두었으므로 고위급 인사를 파견해 격려함으로써 ‘자애로운 수령’의 이미지를 유지하려 한 것이다. 국내정치적으로는 자기가 강력히 추진해온 스포츠 강국 건설이 성공했음을 과시하여 자신의 능력을 뽐내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획기적 발전 기대하기 어려워
국내 언론이 3인의 방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대통령을 제외한 정계와 안보·통일 관련 책임자들이 총출동하여 이들과 만남으로써 우리 국민들은 마치 남북관계가 곧 획기적으로 발전하리라는 기대를 갖기 쉽지만 이는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시종일관 미소를 보였지만 정작 박근혜 대통령의 면담 의사를 일정이 촉박하다는 이유를 들면서 거절한 것은 이들의 속내를 잘 보여준다. 즉 이들의 주목적이 남북관계 개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남북관계는 빠른 진전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피력하고, 국방위원회가 상호 비방·중상 중단 등을 제안했으며, 고위급 접촉을 거쳐 별 대가 없이 이산가족 상봉에 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고위급 접촉에서 약속했던 2차 고위급 접촉 대신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논의를 위한 적십자 실무회담을 제안하고, 미국이 본격적으로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남북관계는 또다시 소강 및 악화 과정을 밟았다. 이른 봄과 8월의 한·미 연합훈련, 그리고 이에 대응한 북한의 미사일 및 방사포 발사는 한반도 정세를 긴장상황으로 끌고 갔다. 정부가 고위급 접촉의 8월 19일 재개를 제안했지만 8월 18일에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 시작되므로 북한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는 회담에 응하기 어려웠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에 북한이 고위급 접촉에 응한 것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구도에서 고위급 회담을 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리수용 북한 외무상(오른쪽)이 9월 27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리 외무상은 이날 반 총장에게 김정은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 AP연합뉴스

리수용 북한 외무상(오른쪽)이 9월 27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리 외무상은 이날 반 총장에게 김정은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 AP연합뉴스

3인을 파견한 김정은의 의도는 자신에게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만들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의 한·미·일 동맹 강화 의도를 견제하고 최근 소강상태를 보이는 북·일관계에서 대일 협상력 강화를 모색하는 한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러시아와 중국 지도부에게 북한이 남북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김정은은 최근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린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북한이 한반도 정세 안정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김정은은 어느 정도 세습권력을 안착시켰다고 평가하고 이제는 핵 개발을 지속하면서도 경제를 발전시켜 주민의 생활을 향상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농업과 기업 및 상업에 자율성을 강화하고 인센티브를 도입할 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 경제특구를 설치하여 경제를 활성화하고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이것이 성공하려면 해외자본의 투자유치가 절실하므로 해외투자자들이 원하는 안정적인 남북관계를 구축하는 노력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향후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우리는 3인의 방한이 북한이 양보적으로 남북관계 발전에 나서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호혜적인 남북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대등한 관계에서의 회담에는 응하겠지만 일방적인 양보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체면 존중하면서 과거 합의 실천 노력을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정권 유지가 지상의 목표다. 자신의 체면이 유지된다면 호혜적인 남북협력에 나서겠지만, 고개를 숙이는 일방적인 관계가 전제된다면 차라리 긴장과 정면대결적 구도에서 주민들의 결속을 강화하면서 정권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특히 현재 남북의 경제력 격차가 40배에 달하므로 김정은은 흡수통일의 공포를 떨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향후 남북관계가 안정과 협력 기조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평화공존의 의사를 진정성 있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상호주의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즉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라고 북한을 압박하는것과 병행하여 우리도 북한이 믿을 수 있는 정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향후 고위급 회담을 거쳐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평화공존 및 공동번영의 진정성 교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려면 상호 비방을 중단하고 과거 양측 수뇌부가 합의한 것을 지키겠다는 노력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현안으로 살펴보면 5·24조치와 금강산 관광 및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은 서로의 체면을 존중하는 가운데 상대방의 체제 안보와 실리도 고려하고 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해야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또한 북한의 인권문제도 국제사회에서 이를 제기하기보다는 남북대화에서 당당하게 언급하고 보상을 제공하면서 북한의 성의있는 정책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외적 환경도 중요하다. 북·중이 계속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이 11월 중간선거 이후에도 북한과의 대화를 계속 경시할 경우 북한은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이어 또다시 핵실험을 감행하여 핵무기 소형화를 달성하려 할 수 있다. 북한은 머지않아 핵무기를 손에 들고 우리를 위협하면서 고압적으로 남북관계를 주도하려 할 것이므로 정부는 남북관계 정상화는 물론이고 보다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외교력을 발휘하여 북핵문제 해결을 주도해야 할 것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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