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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방북, 풀리지 않은 의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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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의원도 묵었다는 강화도 집ㆍ금수산기념궁전 방문 여부 등 관련자들 해명 아리송

지난해 3월, 기자는 “박근혜 ‘2002년 방북’ 소문을 둘러싼 진실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기사를 쓴 시점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였다. 2002년 방북 경위와 동행자가 누구냐를 둘러싼 논란을 정리하는 기사였다. 2002년 박근혜 당시 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과 동행한 인사는 신희석 아태정책연구원 이사장, 지동훈 유럽-코리아재단 공동이사장, 장 자크 그로하 전 주한 EU 상공회의소(EUCCK) 소장 등 3명이다. 평양에서의 방문일정 및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면담 내용의 주요 근거가 된 것은 2012년 대선을 앞둔 10월 말, 신희석 이사장이 한 비공개 친목카페와 주변 지인에게 보낸 메일에다 정리한 당시 회상이었다. 그 후로도 신 이사장은 몇 차례 종편 등에 출연해 방북경위 등을 설명한 바 있다.

지난 2002년 방북 당시 평양 만경대 학생소년 궁전을 방문한 박근혜 당시 미래연합창당준비위원장이 학생들이 서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맨 오른쪽부터 지동훈 유럽-코리아재단 공동이사장, 신희석 아태정책연구원 이사장 그리고 박근혜 의원이다. | 경향자료사진

지난 2002년 방북 당시 평양 만경대 학생소년 궁전을 방문한 박근혜 당시 미래연합창당준비위원장이 학생들이 서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맨 오른쪽부터 지동훈 유럽-코리아재단 공동이사장, 신희석 아태정책연구원 이사장 그리고 박근혜 의원이다. | 경향자료사진

기사를 출고한 직후인 지난해 3월, 기자는 박 대통령의 방북에 동행한 장 자크 전 소장이 그동안 언론 인터뷰 등에서 밝힌 강화도 거주지를 방문해 주변 취재를 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에 위치한 이 한옥 주변 복수의 동네 사람들을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이 저 집에 1년에 2~3일씩 묵고 가곤 했다.” 동네사람들이 증언하는 박 대통령의 ‘일정’은 그동안 언론에 노출된 적이 없었다. 인근의 한 동네 주민은 또 다른 흥미로운 일을 언급했다. “대선이 있기 전인 2012년 여름 무렵 남자들이 며칠씩 묵어가며 망원렌즈로 사진을 찍는 등 저 집의 동향을 살펴보고 갔다. 그들은 언론사 소속은 아니라고 말했다.”

2002년 박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했던 장 자크 전 소장은 현재 본국, 자신의 고향인 프랑스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머무르는 동안 그는 자신이 강화도 집의 소유주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집의 건물과 토지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면 장 자크 그로하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이 집의 소유주는 역시 방북에 동행했던 지동훈 이사장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등기부등본에 보면 인상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2012년 9월 14일, 주한 유럽연합 상공회의소에서 7억1000만원의 가압류가 들어왔다가 한 달 만인 그 해 10월 5일 집행취소 결정이 난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13년 4월 23일에는 또한 교육과학기술부가 2억4550만원의 가압류를 건다. 교과부의 가압류는 올해 2월 7일이 되어서야 해제된다.

박, 2012년까지 유럽코리아재단 이사
“EUCCK는 우리와 무관한 단체다.” 현재의 주한 유럽연합 상공회의소(ECCK)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ECCK는 2012년 말 정식으로 법인으로 출범한 단체로 그 단체(EUCCK)와는 무관한 단체”라고 덧붙였다. 앞서 등기부등본에 기록된 ‘주한 유럽연합 상공회의소’의 소재지는 서울시 종로구 오피시아다. 현재의 ECCK는 서울 남대문 앞 대우빌딩에 소재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국세청 남대문세무소에서 ‘이례적인 세무조사’를 2012년 2월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온다. 1986년 설립된 이래 최초의 일이다. “대선 등 정치적 목적의 세무조사가 아니었느냐”는 해석이 EUCCK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그 해 6월 25일, 장 자크와 지동훈 이사 등은 EUCCK에서 물러났다. 유럽-코리아재단은 그 후 활동의 일부분이었던 공정무역 활동에 주력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까지 유럽-코리아재단의 이사를 역임하고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 EU 상공회의소 시절의 장 자크 그로하 소장. | Flickr

주한 EU 상공회의소 시절의 장 자크 그로하 소장. | Flickr

장 자크가 한국을 떠난 후 지동훈 이사장은 그동안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강화도 집을 2013년 4월부터 숙박시설로 공개했다. 지 이사장은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과거 인터뷰에서 장 자크가 강화도 집을 자신 소유의 집으로 밝힌 것 등과 관련해서 “인터뷰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느냐”며 “어찌됐건 한-EU FTA나 개성공단 외국인 투자유치 등에서 ‘지한파’로서 장 자크가 한 역할은 우리로서는 고마워할 일”이라고 말했다. 2012년 출국이나 EUCCK의 해산, 세무조사 등과 관련해서는 “조직의 해산은 우리(지 이사장과 장 자크 소장)가 물러난 뒤인 2012년 9월에 이뤄졌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입장이고, 세무조사 문제도 도덕적이고 투명한 것으로 판명났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UCCK 해산ㆍ세무조사 등도 갸웃
한편, 신희석 이사장은 앞서 2012년 10월에 남긴 글에서 2002년 방북과 관련, “우리들 두 사람(박근혜 당시 의원과 신 이사장)은 그들의 안내를 받고 최고인민회의, 인민문화궁전, 금수산기념궁전(?: 편집자주: 물음표나 이하 xx는 신 이사장이 남긴 것), 주체탑, 모란봉 소년소녀xx?, 김일성대학, xx병원, 봉제공장 등 다양한 시설을 견학·시찰하였다”고 적고 있다. 신 이사장은 지난 대선 전후 언론 인터뷰에서는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방문 의혹은 부인한 바 있다. 착오에 의한 기재라고 볼 수 있지만, 신 이사장의 방문기를 보면 방문지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신 이사장은 이 방문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북한 당국은 우리들이 북한에 체류하는 기간 중의 일정표는 물론이거니와 주요 시설 시찰·방문계획에 관하여 우리들에게 아무런 사전정보를 주지 않았다. 갑자기 복장을 갖추고 입구로 나오라고 하면 우리는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들이 안내하는 장소로 정처없이 실려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주요 시설을 시찰하고 다시 영빈관 초대소로 들어왔다. 대개 오전 2건, 오후 3건 정도의 빈도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백화원 초대소의 거대한 현관문을 들락날락할 수밖에 없었다.” <주간경향>은 10월 10일, 그가 방문기에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했다고 언급한 까닭은 무엇인지 물어보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그로부터 직접적인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그곳에는 가지 않았다”는 답을 연구원 관계자를 통해 전해왔다. 프랑스로 돌아간 장 자크 그로하는 최근 자신이 북한에서 체류할 당시 경험한 일을 담은 에세이집을 탈고해 출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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