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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ㆍ서북청년단 등장… 적대정치 무의식적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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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권의 취약한 정당성을 채우려는 초조함 드러나, 세력 더 커질 땐 보수에 부메랑…

야당과 시민단체에 이들을 견제할 만한 힘이 없는 것도 문제

정체성은 입증하기 어렵다. 한 번 정체성 시비가 걸리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보수가 진보를 공격할 때 늘 나오는 단골메뉴는 ‘북한에 대한 입장’이었다. 진보는 보수가 물고 늘어지는 ‘종북’이라는 정체성 시비에 줄곧 걸려 넘어졌다. 반대로 보수를 향해서는 이렇다 할 정체성 시비가 없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한국 정치지형에서 보수가 정체성 시비에 빠질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일베’ ‘서북청년단’ 등 극단적인 보수세력이 도드라지면서 보수에게도 정체성 시비가 붙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베’처럼 특정 지역을 비하하고 여성 및 소수자를 혐오하며, ‘서북청년단’처럼 극단적인 네거티브 공세를 벌이는 보수 일각의 행태가 부각되면서 보수를 향해서도 ‘일베냐, 아니냐’ ‘서북청년단에 대해 어떤 입장이냐’는 정체성 시비가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9월 28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원회 회원들이 구조활동 중단 및 인양을 촉구하고 노란리본 철거를 주장하며 리본을 떼려하자 이를 막는 경찰과 실랑이 벌이고 있다. | 김정근기자

9월 28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원회 회원들이 구조활동 중단 및 인양을 촉구하고 노란리본 철거를 주장하며 리본을 떼려하자 이를 막는 경찰과 실랑이 벌이고 있다. | 김정근기자

이는 보수에게는 물론 한국 정치지형에도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적대정치의 극대화이기 때문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는 ‘일베’에 이어 등장한 서북청년단 현상에 대해 “기존의 진영정치 내에 포함됐던 적대정치가 일베나 서북청년단에 의해 극대화되고 있는데, 특히 서북청년단은 역사적으로 적대정치의 극에 있었던 단체다. 지금의 서북청년단이 그 역사적 코드를 알고 사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적대정치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은 일베나 서북청년단의 활동이 지금보다 더 확대된다면 이는 보수층에게 굉장히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등장으로 보수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지만, 좋은 방향으로 넓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수층에게는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지금껏 한국 보수에는 서양의 KKK단 같은 극단세력이 해방정국 이후에는 없었다. 이런 극단주의가 횡행하게 되면 전체 한국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의 합리성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그렇게 극단적인 수준으로 치달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극단주의 세력 간의 논쟁이 향후 한국 정치를 좌우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부분은 분명 있다.”

한국정치 극단주의에 휘둘릴 우려
지난 9월 30일 배성관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장은 인터넷 일베 게시판에 “김구는 김일성의 꼭두각시였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했다. 반공단체인 서북청년단원 안두희씨가 김구를 처단한 것은 의거이고 안두희씨가 맞아죽은 것은 종북 좌익정권 시대다”라는 글을 올려 논란을 빚었다. 김구에 대한 평가를 낮추고, 이승만에 대한 평가를 높이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보수의 역사전쟁이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대한 대항으로 보수학자들이 편찬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서도 이러한 맥락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편집자 중 한 명인 서울대 박지향 교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편집자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박사(이승만 박사)가 마키아벨리적인 뛰어난 감각을 지닌 정치인이었고, 나름대로 1950년대에 그런 정치인이 있었기에 한국이 그나마 발전하지 않았을까, 만약에 김구 같은 분에게 맡겼으면 나라가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솔직히 해봅니다.” 하상복 목포대학교 교수는 <이명박 정부와 ‘8·15’ 기념일의 해석>이라는 논문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하나의 애국적 표상을 만들기 위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비애국적 표상을 대비시키는 방식인데, 김구는 당시 대한민국의 수립에 전면적으로 반기를 들고 북한과의 통일국가 건설에 매진한 비애국적 인물로 등장하게 된다.”

자신들이 굳건히 지켜온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산업화의 정당성을 위협받아본 적이 없던 보수세력은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가 등장하면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승만을 부상시키려는 보수세력의 노력은 이러한 위기의식의 발로다. 하 교수는 이 논문에서 이러한 의식이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경축사’에서도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당시 8·15를 ‘일본으로부터의 해방’보다는 ‘대한민국 수립’에 방점을 찍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 발언이 2008년 일회성으로 끝났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그 후 2012년 마지막 광복절 연설까지 건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상복 교수는 이를 위기의식에 따른 정치적 스펙터클로 이해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2008년 이후 이명박 정부와 한국의 보수가 건국절 제정을 향한 정치적 의지와 열정을 반복해오지 않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워 보인다. 그러한 사실에 비추어볼 때 8·15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상징정치 혹은 언어정치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등장이라는 특정한 정치적 국면 속에 초래된 국가 정체성의 위기의식을 돌파하기 위한 정치적 스펙터클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한국의 보수세력은 그런 면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이 도전받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역사해석의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 동원을 통한 정치적 스펙터클 만들기는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이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 속에서만 등장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수의 정치적 위기 방증하는 현상
‘역사 동원을 통한 정치적 스펙터클 만들기’가 보수세력이 정치적 기득권을 도전받았을 때 작동하는 것이라면 지금 등장하는 ‘일베’나 ‘서북청년단’ 또한 보수가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야당은 위협적인 세력이 되지 못한 채 제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고, 새누리당은 지난 6·2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 모두 승리했다. 표면적으로는 보수의 ‘정치적 기득권’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부패는 보수를 치명적인 위기로 몰아넣었다.

천정환 교수는 ‘일베’나 ‘서북청년단’의 등장을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취약성을 단정하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이들의 등장은 이 정권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인데,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면, 이들의 등장이 정권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이 선거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었고 또 그것이 세월호와 결합하면서 박근혜 정부에 커다란 흠이 생겼다. 거기다가 세월호 사건 당시 7시간 부재 문제까지 튀어나왔다. 현 정부가 이념이나 정책 등으로 헤게모니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취약함을 메우기 위한 초조함 등이 반영되어 나타난 게 ‘일베’나 ‘서북청년단’의 활동이다. 만약 정부·여당이 합리적 보수라면 일베 등의 행동과 선을 긋거나 제지해야 하는데, 지금 사실은 방조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적으로도 극단적인 단체들은 정당성이 취약한 정부가 자신들의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해 활용해 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새마을운동협의회는 쿠데타 이후 세워졌고, 바르게살기협의회는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을 떠받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서복경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일베’나 ‘서북청년단’의 지지를 봉헌하는 것이 현 정부의 정체성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지금 일베나 서북청년단의 모습이 어쩌다 돌출된 집단이 돌발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지지가 동원되는 것이 현 정부의 정체성이다. 지금 현 정부는 민주주의적 통치에 대해 학습한 바도 없고 관심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러한 식으로 통치가 이루어질 것이고 이들의 활동 또한 계속되리라고 본다.”

건강한 사회라면 자연스럽게 주변화됐어야 할 이들의 목소리가 유통되고 있는 것은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순영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박사는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효능감이 떨어지고 그 결과 ‘일베’나 ‘서북청년단’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부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우진 앤젤로 주립대학교 교수도 <한국민주주의에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의 정치적 효과>라는 논문에서 경제조건에 대한 누적적인 부정적 인식은 민주주의 체제의 능력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고 결국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지지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강 교수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국 국민들이 훨씬 더 경제적 평등의 문제를 민주주의의 중요한 차원의 하나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밝히며, 양극화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인식이 점점 심각해졌다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2006년 아시아바로미터 조사와 2009년 사회종합조사를 비교하며 2006년에는 양극화가 중요한 걱정거리라고 응답한 비율이 30.01%에 불과했지만, 2009년에는 90%가 넘는 국민들이 한국의 소득 차이가 너무 크다고 답했다. 김순영 박사는 이러한 불평등이 극우화 현상의 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유럽에서도 극우화 현상 뒤에는 경제적 불평등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이민자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공격도 경제적 불평등이 한 요인이 되어 이루어졌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과 시민사회에 힘이 없다는 것이다. 정한울 사무국장은 ‘일베’나 ‘서북청년단’의 등장은 진보세력에 대한 냉소가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에 기대 있다고 말했다. “보수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은 야당이나 진보세력에 대한 냉소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들은 한국 야당세력의 위기의 산물인데, 야당이 조롱거리가 되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는 것이다.”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시민사회 또한 문제다.

서복경 연구위원은 일베나 서북청년단이 서슴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반대편 시민사회 쪽의 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건강하지 않은 시민사회를 방증하는 것이다.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새마을운동협의회 등 시민사회 자체 인프라가 권위주의적이었다. 민주화 30년 동안 시민사회 자체를 민주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노조가 활발하게 일어났어야 했는데, 그러한 노력이 없었다. 시만사회의 권위주의적 뿌리가 왜곡되면서 한쪽은 기형적으로 변형돼 일베나 서북청년단이 등장하게 됐고, 반대쪽은 전혀 강화되지 않았다. 게다가 노조 조직률은 더 떨어졌고 민주주의를 뒷받침할 건강한 결사체 조직은 와해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북청년단 같은 단체가 다시 나오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 안 나오는 게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보수에게도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진단이다. 극우적인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문창극 총리 후보자 지명에 대한 비판여론이 이를 보여준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지명 이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율이 급락했다.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50%를 넘어선 것은 취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은 아직까지 ‘일베’나 ‘서북청년단’이 많은 사람들이 알 정도의 ‘전국적인 이슈’가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 지지율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이들의 세력이나 활동이 더 커진다면 보수세력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 자체 민주화 노력 부족한 탓
보수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높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지금 보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교감은 하고 있는 건지 실체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이들에 대한 새누리당의 침묵을 비판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보수에 유리한 정치지형이 보수에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며, 이는 보수의 위기를 넘어 한국민주주의 위기라고 말했다. “침묵 또한 발언이고 무반응도 반응의 양태이다. 새누리당이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침묵한다면 한통속으로 뭉개져 동일시되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민감하게 알아야 한다. 한국 사회는 보수 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보수는 스스로 정화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명박 정부 그리고 박근혜 정부 들어 보수가 급격히 퇴행하고 있다. 이전에는 아무리 해도 87년 이전 체제로 안 돌아갈 것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그 마지노선이 흔들릴 수 있겠다는 우울한 생각이 든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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