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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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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속하고 공정한 판결을 호소하며 매일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평택법원까지 3000번의 걸음과 1000배의 절을 하는 3보1배를 진행합니다.

별안간 해고가 되었습니다. 믿어왔던 회사가 나를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말과 명절도 없이 일만 해왔는데 ‘왜 내가 해고가 되었을까’, 생각에 생각을 더해도 도저히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 공장 안에서 파업을 했습니다. ‘모든 걸 양보할 테니 해고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해고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는 사회적 냉대와 전쟁을 치르는 양 대테러 무기까지 앞세운 경찰들의 폭력으로 인해 공장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냉대와 폭력의 맨 선두는 늘 법원의 불법딱지였습니다. 그 불법딱지에 살려달라고 시작했던 파업은 수백명의 구속과 수백억원의 손배가압류 소송으로 이어졌습니다. 믿어왔던 국가가, 만인에게 평등하다던 법원이 수많은 나를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들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방이 불법과 폭력의 낙인으로 뒤덮인 벽이었습니다.

10월 2일 오전 평택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해고 조합원들이 평택공장에서 법원 평택지원까지 삼보 일배를 하며 가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10월 2일 오전 평택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해고 조합원들이 평택공장에서 법원 평택지원까지 삼보 일배를 하며 가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외부로부터 혹은 타인으로부터 받는 모멸과 폭력, 냉대가 지속될 때, 그리고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없을 때 우리는 ‘사는 게 지옥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빨갱이, 범법자, 강성노조 같은 불온한 딱지가 붙여진 쌍용차 해고자들은 수십 통의 이력서를 써봐도 재취업이 되지 않았습니다. 간신히 이력을 속이고 취업해도 ‘쌍용차 해고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이내 해고되었습니다. 이혼과 파산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해고되고, 이혼하고, 파산하고, 취업조차 어려워질 때 문득 ‘내가 꼭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 지옥이 별거일까 했습니다. ‘사는 게 지옥’인 채로 그렇게 6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2월 7일 서울 고등법원은 쌍용차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쌍용차 정리해고의 이유였던 경영상의 위기가 사실은 회계조작을 통해 부풀려졌고, 해고 회피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해고자들은 쌍용차 경영진에게 교섭을 요구했습니다. 더 이상 갈등과 반목이 아닌 화해와 상생의 자세로 쌍용차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절박한 호소였습니다. 하지만 법의 잣대가 아닌 함께 살자는 제안은 경영진들의 철저한 기만과 무시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해고자들은 근로자지위 확인청구 및 임금 가처분 소송을 평택법원에 제기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까지 고등법원에서 판결한 대로 해고자들이 쌍용차 노동자임을 법원이 확인해달라는 소송입니다. 가처분 소송은 법리적 판단만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빠른 판결이 통상적이고, 상급법원인 고등법원에서 판결된 내용 그대로 평택법원에서 판결하면 될 일인데 지난 5월에 낸 가처분 소송이 벌써 5개월째 판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속하고 공정한 판결을 호소하며 매일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평택법원까지 3000번의 걸음과 1000배의 절을 하는 3보1배를 진행합니다. 법원에 해고자들의 편을 들라는 압박을 가하거나 생떼를 부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출구가 없는 절망의 삶을 끝내고 긍정과 희망의 삶을 우리도 살고 싶다는 절박한 몸짓일 뿐입니다. 지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또한 생산량은 늘어나는데 노동강도는 줄어들지 않아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공장 안에서는 일하다 죽고, 공장 밖에서는 굶어서 죽고 있습니다. 쌍용차에 지금 해고자들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이어지는 죽음을 끝내야 합니다. 해고자라는 낙인과 스스로를 지탱해왔던 관계의 단절이 그 죽음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해고자라는 낙인을 걷어내고 막혔던 관계를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법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음을 지난 쌍용차 문제에서 확인했습니다. 법이 이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살리는 것이 되도록, 만인에게 공평함을 스스로 증명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형벌과도 같은 해고자라는 낙인을 지우는, 평택법원의 조속하고 공정한 판결을 호소합니다.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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