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큰스님이 탈종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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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담 스님은 전강 스님의 수제자로 경허-만공-전강으로 이어지는 정통선맥을 이어 오롯이 수행에만 전념해온 대표적인 선승이다.

불교의 대표적인 종단인 조계종이 술렁거리고 있다. 종단의 정신적인 스승으로 일컫는 송담 스님(88)이 조계종에서 탈종 절차를 밟았기 때문이다. 인천 용화선원 원장인 송담 스님은 9월 15일 불교 언론에 탈종 공고를 냈다. 탈종 공고에는 송담 스님이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법인 법보선원 명의로, 이사장 송담 스님과 이사 9명의 스님이 이사회 결의에 따라 조계종 탈종을 공고한다고 돼 있다. 9월 19일 송담 스님은 재적 본사인 제2교구 본사 용주사에 법적 대리인을 보내 제적원을 제출했다. 제적원에는 “재단법인 법보선원의 수행전통과 현 대한불교조계종의 수행환경의 차이로 조계종 승려로서의 의무를 내려놓고자 한다”고 돼 있다.

‘남 진제 북 송담’으로 불릴 정도로 불교계에서 송담 스님은 조계종 종정인 진제 스님과 함께 선승으로 추앙받아 왔다. 특히 송담 스님은 전강 스님의 수제자로 경허~만공~전강으로 이어지는 정통 선맥을 이어 오롯이 수행에만 전념해온 대표적인 선승이다. 불교계에서는 대중의 추앙을 받아온 성철·법정 스님이 입적한 후 조계종의 선지식인 송담 스님마저 탈종하는 조계종의 현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자칫 조계종이 선종이 아닌 행정적인 조직으로 대중들에게 비쳐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불교계의 한 관계자는 “송담 스님 탈종은 종단분규와는 성격이 다르다”면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계에서는 지난 8월 용주사 주지 선거와 오는 9월 30일까지 등록신고해야 하는 법인관리법이 송담 스님의 탈종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송담 스님은 용주사 회주로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에서는 큰어른이다. 송담 스님은 제자들을 통해 문중운영위원회에서 문중의 의사를 결집하라는 유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논란 끝에 주지 선거가 결국 투표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새로 제정된 ‘법인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에 따라 송담 스님이 이사장으로 있는 법보선원이 9월 30일까지 조계종에 법인으로 등록을 해야 하는 절차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법보선원 이사회는 법인관리법을 검토한 후 조계종단 등록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탈종이라는 수순으로 연결된 것이다.

인천 용화선원 원장 송담 스님 | 법보신문 제공

인천 용화선원 원장 송담 스님 | 법보신문 제공

정통선맥 이어 수행에만 전념한 어른
조계종은 조계종의 뿌리이기도 하지만 재산을 아직 조계종에 등록하지 않은 선학원과의 갈등이 지속되었고, 올해 6월 종회에서 법인관리법을 통과시켰다. 선학원과의 갈등이 엉뚱한 불똥으로 튀어 송담 스님의 탈종으로 이어진 것이다. 선학원은 법인 등록을 거부한 채 10월 1일부터 독자적인 사찰 등록과 승적 업무를 하겠다고 나섰다. 선학원 이사장인 법진 스님은 9월 15일 조계종 초심호계원(사법부 1심에 해당)에서 종단 최고형인 ‘멸빈’ 판결을 받았다.

조계종으로서는 정신적인 스승인 송담 스님의 탈종에다 한 뿌리인 선학원의 분종사태까지 이중고를 겪게 된 셈이다. 불교계의 한 관계자는 “송담 스님의 탈종사태를 용주사 주지 선거라든지 법인관리법 파동으로 보는 것은 어른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행에만 전념해오면서 종단의 정치에는 일절 발을 담그지 않은 분의 탈종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불교계에서는 용주사 주지 선거와 관련해 최근 얽힌 조계종 행정의 세속화 문제가 복합적인 배경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용화선원에서는 송담 스님의 은사인 전강 스님의 유지 자체가 용화선원을 조계종에 등록하지 말고 오로지 수행만 하라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용주사 선거뿐만 아니라 종단 내부의 일에 일부 제자들이 연루된 것에 대해 송담 스님이 많이 언짢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뒤늦게 용주사의 어른 스님들과 조계종 선원수좌회 등이 탈종 만류에 나섰다. 같은 용주사 문중으로 송담 스님의 조카 상좌인 총무원장 자승 스님까지 송담 스님을 면담하려 했다. 송담 스님은 이들 인사와 만나지 않고 있다. 용화선원의 한 스님은 “여기(용화선원)는 안에서 그냥 조용히 수행하는 곳”이라면서 “바깥일에 일일이 신경쓰지 않고 수행자들은 큰스님 말씀대로 계속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스님은 “전강 스님 뜻도 그렇고 송담 스님도 ‘수행만 하라’고 말씀하셨다”면서 “이곳에서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탈종 전)이나 지금(탈종 후)이나 똑같다”고 말했다.

2012년 승려 도박 사건으로 뒤숭숭하던 조계종 총무원 청사에 소통과 화합을 강조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 김기남 기자

2012년 승려 도박 사건으로 뒤숭숭하던 조계종 총무원 청사에 소통과 화합을 강조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 김기남 기자

선학원 분종사태까지 겹쳐 이중고
조계종은 10월 16일 종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이 행정부라면 종회는 입법부로 국회에 해당된다. ‘총선’을 앞두고 큰스님의 탈종이라는 태풍이 몰아쳤지만 의외로 조용하다. 정당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각 종책모임에서도 입을 다문 채 아무런 입장을 표시하고 있지 않다. 여당 격인 불교광장은 물론이거니와 야당 격인 삼화도량에서도 송담 스님 탈종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있다. 현 총무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삼화도량에서는 입장 발표를 논의했으나 큰스님의 탈종에 대한 언급이 정치적인 발언으로 비칠까 우려해 결국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계에서는 이미 종회의원 선거가 시작됐기 때문에 송담 스님의 탈종 파문이 선거 결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여당 격인 불교광장이 대승을 거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용주사 주지 선거의 후폭풍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용주사 주지 선거에서 낙선한 수원사 전 주지 성관 스님 대신 수원사의 새로운 주지가 임명됐다. 본사인 용주사 주지가 말사인 수원사 주지를 임명하는 것에는 절차상 문제가 없다. 하지만 28년 동안 도심포교로 일궈온 사찰에 대해 선거 낙선 후 주지를 곧바로 바꾸자 수원사 신도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9월 23일에는 불교인권위원장 진관 스님을 비롯한 일부 스님들이 ‘송담대선사 조계종 탈종 반대 모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모임은 기자회견문에서 “출가수행자가 스승을 잃어버리는 것은 칠흑 같은 밤 천길 벼랑에서 횃불을 잃는 것과 같다”면서 “한시 지체없이 종단으로 돌아오셔서 미혹한 후학들에게 역대 조사께서 지켜오신 간화선 수행을 지도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모임에 대해 용화선원의 한 스님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 뭐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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