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헬기는 단체장 전용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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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한 일정 핑계로 응급비상용 헬기를 자가용 쓰듯…

김문수 전 지사 5년간 43회로 최다

“소방헬기는 항상 대기하고 있다. 일부 자치단체장들의 눈에는 소방헬기가 할 일 없이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놀고 있는 헬기를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자치단체장들은 안전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소방헬기는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위기 시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

최근 5년 동안 소방용 응급헬기로 이송한 인원이 1만1000여명으로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광역단체장들이 소방헬기를 비상용이 아닌 업무용 이동수단으로 사용한 사실이 다수 밝혀졌다.

지난 2013년 2월 7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수난구조대 인근 한강에서 119특수구조단이 혹한기 한강 인명구조훈련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지난 2013년 2월 7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수난구조대 인근 한강에서 119특수구조단이 혹한기 한강 인명구조훈련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도 헬기 이동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정청래·유대운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소방방재청으로부터 받은 ‘시·도별 업무지원 귀빈 탑승내역(2009.1.1.∼2014.7.31.)’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소방헬기를 보유한 광역단체 14곳 중 12곳이 무려 135차례에 걸쳐 업무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경기도가 43차례로 가장 많았으며, 전남도 34차례나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도의 경우 김문수 전 지사는 재직 당시 소방헬기를 대부분 업무용으로 사용했다. 천재지변 또는 사고현장 방문 등 긴급한 상황도 아니었다. 김 전 지사는 2011년 9월 30일 남양주에서 열린 세계유기농대회와 2010년 2월 24일 부천에서 개최된 영상미디어센터 개소식에 참석하는 데 헬기를 이용했다. 2009년 6월 5일 안산에서 열린 세계요트대회 외신기자 초청 간담회에도 헬기를 타고 갔다.

긴급상황과 관련해 소방헬기를 이용한 것은 화성 매몰사고 현장 방문(2009년 5월 19일), 임진강 수난사고 현장 순시(2009년 9월 6일), 구제역 현장 방문(2010년 1월 8일) 등 단 4건에 불과했다.

김 전 지사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도 소방헬기를 이용했다. 2011년 12월 8일 그는 경기도 2청사가 있는 의정부에서 연천까지 가는 데 헬기를 이용했다. 연천에서 개최된 수도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경기 북부지역인 의정부에서 연천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김 전 지사가 경기도의 소방헬기를 자가용 헬기처럼 사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청래 의원은 “김문수 전 지사는 지난 2008년에 이미 소방헬기를 타고 출판기념회를 가는 등 소방헬기를 마치 전용 헬기처럼 이용했다는 문제를 지적받은 바 있다”며 “도정 홍보행사 등 육로로 이동이 충분히 가능한 일정까지 소방헬기를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지사 측은 빡빡한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소방헬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김 전 지사 측 관계자는 “김 전 지사의 하루 일정을 보면 다른 광역단체장들보다 많은 일정을 소화한 것을 알 수 있다”며 “특히 경기도는 지역이 넓어서 차량으로 이동하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헬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인 김 전 지사는 최근 충북 음성의 꽃동네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대구에서 택시기사를 하면서 민심을 듣는 등 차기 대권 행보에 들어갔다.

지난 2012년 8월 16일 새누리당 제18대 대통령후보자 선거 합동연설회가 열린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김문수 후보가 연설을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지난 2012년 8월 16일 새누리당 제18대 대통령후보자 선거 합동연설회가 열린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김문수 후보가 연설을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박맹우 전 울산시장(현재 국회의원)은 시장 재직 중 매년 1월 1일 소방헬기를 타고 간절곶에서 열린 해맞이 행사에 참석했다. 박 전 시장뿐만 아니라 지역의 유력 인사 24∼32명도 같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헬기를 이용했다. 울산시는 18인승 헬기 단 1대만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이 같은 규모의 인원을 행사에 참석시키기 위해 헬기는 두 번에 걸쳐 나눠 운행됐다. 돌아오는 것까지 총 네 번에 걸쳐 헬기가 동원된 셈이다. 문제는 이 시간대에 불이 나거나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소방헬기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박맹우 전 울산시장은 ‘해맞이 행사용’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관계자는 “울산에서는 1월 1일 아침에 응급환자가 생기면 헬기를 이용할 수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며 “광역단체장이 1대밖에 없는 소방헬기를 해맞이 행사에 사용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울산시청은 내년부터는 해맞이 행사에 소방헬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울산시청 관계자는 “해맞이 인파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행사 후에 승용차로는 빠른 시간 내에 빠져나갈 수 없어서 헬기를 사용했다”며 “내년부터는 해맞이 행사가 축소될 예정이어서 소방헬기를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임기를 마친 박맹우 전 시장은 7월 국회의원 재·보선 울산 남구을에서 당선됐다.

이 외에 인천시의 경우 비상대책과장 등 4명이 2013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3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소방헬기를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박준영 전 전남지사는 재직 때 나로호 발사 참관과 신안군 비금도에서 열린 전국바둑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김완주 전 전북지사는 새만금 시찰과 투자유치를 위해 소방헬기를 각각 이용했다.

이에 따라 일부 지자체장들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쓰여야 할 국가 재산(소방헬기)을 엉뚱한 데 사용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자체장들이 소방헬기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소방공무원들이 지방직으로 자치단체 소속이기 때문이다. 지자체장들은 소방공무원에 대한 인사권과 예산권을 쥐고 있다. 특히 각 시·도에서는 조례로 ‘시·도정 업무 지원’에 소방헬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소방헬기의 주목적은 화재 및 재난, 응급환자의 이송 등 긴급한 상황에 대한 대응이다. 지자체장들이 업무용으로 탈 때도 항상 응급콜에 대비해 운영 시 구조사 1명과 정비사 1명을 동승하게 하고 있다. 소방헬기를 운항할 경우 시간당 유지비용만도 수백만원이 들어간다.

전문가들은 소방헬기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자체장들의 안전에 대한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유대운 의원은 “응급헬기는 응급환자 이송이 1차 임무이고 그 외에 교통·산악사고 구조나 산불 등 화재 진압 등에 써야 한다”며 “지자체에서 안전에 대한 철학을 확고히 하고 있다면 일반 업무용으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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