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남녀골프, 홀대와 우대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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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남녀골프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여자투어가 남자투어를 압도하는 현상은 한국이 유일하다.

최근 씁쓸한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남자골프의 간판스타인 ‘탱크’ 최경주(44·SK텔레콤)가 대회를 열 골프장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뉴스였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8승을 거둔 최경주는 2011년부터 후배들을 위해 국내에서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이라는 골프 대회를 열었다. 아시안 투어를 겸한 이 대회는 지난 3년간 CJ그룹이 최경주를 후원하면서 성공적으로 열렸지만 올해는 새 후원사와 골프장을 찾지 못해 대회 무산 위기에 놓인 것이다. 다행히 최경주에게 대회 장소를 지원하겠다는 골프장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최악의 위기는 면할 것으로 보인다.

최경주를 둘러싼 이 이야기는 한국 남자골프의 엄연한 현실이다. 남자골프에 대한 홀대가 심해지면서 국내 남녀골프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국내 여자골프는 호황이다. 올해 총 26개 대회가 치러진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총상금은 155억원, 대회당 평균 총상금도 6억원이나 된다. 지난해와 비교해 대회 수는 4개가 늘었고, 총상금도 24억원이 증액됐다. 대회를 하고 싶다는 후원사들이 줄을 섰다. 더 대회를 만들고 싶어도 들어갈 자리가 없다.

반면 국내 남자골프는 불황이다. 올해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대회 수는 14개, 총상금은 87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상금 규모가 큰 대회는 원아시아 투어와 공동 주관이다. 이 대회에 뛸 수 있는 국내 선수들은 많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까지 6년간 33억원 규모로 치러졌던 유러피언 투어 발렌타인챔피언십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KPGA 투어에서 뛰고 있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직접 나선 경우도 있다. 구두제조업체 안토니-바이네르 김원길 회장(53)은 올해 KPGA 코리안 투어에서 유일하게 2승을 올린 아들 김우현(23)을 위해 대회까지 만들었다. 김 회장이 타이틀 스폰서를 맡은 바이네르 파인리즈 오픈(총상금 5억원)은 8월 24일 막을 내렸다. 김 회장은 “제발 남자대회에 관심 좀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8월 17일 강원도 홍천 힐드로사이 골프장에서 열린 넵스 마스터피스 4라운드에서 참가 선수들이 경기 중 이동하고 있다. | 넵스 제공

8월 17일 강원도 홍천 힐드로사이 골프장에서 열린 넵스 마스터피스 4라운드에서 참가 선수들이 경기 중 이동하고 있다. | 넵스 제공

여자대회는 호황, 남자대회는 불황
스폰서들은 국내 여자대회를 선호한다. 수많은 갤러리와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여자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마케팅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 골프 전문채널인 SBS골프와 J골프는 지난해까지 KLPGA 투어를 공동으로 중계했지만, 올해는 단독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까지 벌였다.

올해 여자대회를 단독 중계한 SBS골프는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 9월 ‘미녀골퍼’ 윤채영(27·한화)이 9년 만에 우승한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의 시청률은 스카이라이프 150개 채널 중 1위를 차지했다. 분당 최고 시청률 2.576%(TNmS 수도권 가구 기준)를 찍었다. 세계 최고의 남자 선수들이 겨루는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오픈(0.370%)을 압도했다.

스폰서들이 여자대회를 여는 이유 중 하나가 프로암이다. 기업들은 대회 흥행뿐만 아니라 프로암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다. VVIP(초우량 고객)를 초청한 프로암이 잘 마무리될 경우 대회 절반은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여자대회를 후원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프로암도 무시할 수 없다. 여자 프로들이 프로암에 참가한 아마추어 분들에게 친절하게 레슨까지 해주는 것도 기업 입장에선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어느 종목이든 대형 선수들이 계속 등장해야 흥행몰이에 성공할 수 있다. 국내 여자투어는 실력 있는 신인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다. 장하나(22·BC카드)와 김세영(21·미래에셋), 김효주(롯데), 백규정, 김민선(이상 CJ오쇼핑), 고진영(넵스·이상 19) 등 특급 스타들이 필드를 주름잡고 있다. 올해 데뷔를 한 백규정은 2승, 고진영은 1승을 거둘 정도로 기량이 대단하다.

국내 선수들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뛰는 선수들과 비교해서 기량이 떨어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해외파들이 국내 대회에 출전하면 쉽게 우승을 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해외파와 국내 선수들의 기량 차가 없다. 국내 대회도 많아지고, 상금 규모도 커지면서 무리한 해외 진출보다는 국내 투어에 전념하는 실속파 선수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 여자선수들은 실력과 미모를 겸비했다. 이젠 ‘아저씨 부대’까지 등장을 했다. 김자영(23·LG)과 안신애(24·해운대비치골프앤리조트), 김하늘(26·BC카드), 윤채영, 허윤경(24·SBS저축은행), 전인지(20·하이트진로) 등은 많은 갤러리를 몰고 다닌다.

국내 여자투어와 달리 남자투어는 스타 기근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골프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대형 선수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실력이 있는 선수들은 국내 투어의 척박한 환경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배상문(28·캘러웨이)과 노승열(23·나이키골프) 등은 PGA 투어를 주무대로 삼아 활동하고 있다. 국내 남자골프의 어려운 여건 때문에 스타급 선수들이 무조건 해외로 떠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여자투어가 남자투어를 압도하는 현상은 한국이 유일하다. PGA투어는 이번 시즌 44개 대회가 열린다. 총상금도 3억 달러(약 3042억원)나 된다. 1000만 달러(약 101억원) 보너스를 주는 페덱스컵도 있다. 33개 대회, 총상금 5880만 달러(약 596억원)가 걸린 LPGA 투어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여자 특급선수 즐비, 남자는 스타 기근
유럽 투어도 마찬가지다. 유럽 남자투어는 올해 51개 대회, 1억2000만 달러(약 1217억원)의 상금이 걸렸다. 18개 대회, 753만 달러(약 76억원) 수준인 유럽 여자투어와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여자투어의 인기가 많지만 한국만큼은 아니다. 일본 여자투어는 올해 36개 대회, 총상금 31억3000만 엔(약 306억원)이다. 대회 수는 일본 남자(22개)보다 많지만 총상금은 남자(31억5000만 엔·약 308억원)보다 조금 적다.

호쾌한 장타와 파워 넘치는 스윙, 강력한 스핀 등은 남자선수들이 여자선수들보다 더 잘 구사한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골프팬들이 남자선수들의 플레이에 환호성을 지른다.

최근 국내 여자선수들의 몸값이 치솟자 “너무 거품이 끼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금은 여자선수들을 후원하고 대회를 하겠다는 기업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언젠가 거품이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분석이다. 만약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국내 투어는 크게 위축될 수도 있다. 국내 투어도 남자선수들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최소한 여자선수들과 비슷한 여건 속에서 경쟁을 해야 국내 골프도 더 성장할 수가 있다.

<노우래 한국일보 체육부 기자 sport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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