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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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기다리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취재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브라질과 스코틀랜드의 개막전이 열린 생드니 경기장 앞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백인부터 흑인, 아랍인까지 다양한 인종, 국적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류 전시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생드니에서 보고 듣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던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은.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한 한국인이 말도 안 통하는 곳인데도 정말로 열심히, 쉬지도 않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십중팔구는 반가운 심정이 되는데 이때는 좀 달랐습니다.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만드는, 뭔가에 질린 느낌에 황급히 자리를 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프랑스에서의 경험 때문만은 아니고, 종교에 냉소적이었습니다. 종교의 영역·역할·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바는 아니었지만, 한국에서의 종교 행태를 보면 그마저도 정내미가 뚝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의 기독교(그 중에서도 개신교)는 ‘예수 믿고 천국 가자’는 아편에 취해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인간으로서 두 발을 땅 위에 딛고, 낮은 곳에 임하는 기독교인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아니 없을 리 없겠지만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그늘이 너무 커서 존재감이 미미한 게 현실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뜨려준 게 프란치스코 교황이었습니다. 처음 그에 관한 기사를 읽고,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보를 보았을 때 저는 금세 그에게 빠져들어갔습니다. 그건 종교적인 면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매혹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의 말, 그의 행동, 그의 신념 모두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교황은 난민들과 수감자, 약물 중독자, 에이즈 감염자 등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발에 입맞추었습니다. 교황은 개인적인, 또는 인간적인 차원의 사랑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소득 불평등 같은 사회적 모순에도 칼날같은 비판을 하는 등 사색과 통찰의 깊이를 보여줬습니다. 이런 교황과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교황은 종교 고유의 절대적 신앙마저도 가차없이 깨뜨립니다. 그는 신을 믿지 않아도 양심에 따라 살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뿌리를 뒤흔들 수도 있는 발언입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도그마가 일거에 무너집니다. 이것이야말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리에도 구애받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대면하고, 고백하는 참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기독교, 아니 한국 사회에 어떤 충격파를 던질지 기대가 큽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 하늘에서 땅으로, 신에서 인간으로, 구원에서 사랑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를 기다리는 가난한 자들, 약한 자들, 눈먼 자들, 절름발이들이 한국엔 너무도 많습니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 아이를 잃어버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있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도보순례를 해야 하는 아버지들의 한과 눈물, 비통에 교황이 입맞춰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꺼내달라’고, ‘살려달라’고 유리창을 두드리며 울부짖다가 눈조차 감지 못하고 죽어간 아이들의 원혼을 달래주고, 억장이 무너져 있는 아버지·어머니들의 눈물도 닦아주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들 모두 교황에게서 위로와 용기, 희망을 얻기를 바랍니다. 교황이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손가락만 쳐다보지 말고, 그가 가리키는 달을 직시했으면 좋겠습니다. 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나는 오늘 어떤 행동으로 무엇과 맞서야 하는지를 내내 묵상하며 교황님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위대한 종교인, 위대한 인간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려면, 우리의 시선 역시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 높은 곳이 아닌.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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