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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교황을 기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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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볼 게 없는 정부, 작동을 멈춘 야당과 정치, 자본의 편에 선 제도, 기득권층과 부자들을 위한 종교,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조차 사라진 사회. 그래서다. 세월호 유가족과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밀양주민, 용산참사 주민, 강정 주민들은 교황의 방한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구호시설을 방문, 환영나온 사람들과 손을 잡고 있다. |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구호시설을 방문, 환영나온 사람들과 손을 잡고 있다. | 연합뉴스

7·30 재·보선마저 승리한 박근혜 정부가 눈치를 볼 게 있을까. 유일하게 있다면 교황 방한이다. 교황이 방한하면 전 세계의 언론들이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다. 특히 8월 15일에는 세월호 유가족 10명과 따로 면담하는 시간을 갖는다. 만남 자체가 메시지다. 한상익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유가족과 교황이 단순히 만난다는 게 아니라 이미 교황이 ‘내가 거기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만남 이후 교황의 메시지는 전 세계에 확성기처럼 퍼질 수밖에 없다. 1만여명의 외신기자들이 교황의 행보를 전 세계 언론에 보도할 것이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연구실장은 “언론에 직접 면담했다는 사진이 들어가는 것과 그냥 교황이 바티칸에서 ‘안타깝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고 말했다. 이것이 국내에도 정치적인 영향을 미칠까. 김 실장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합리적 보수들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 보수들은 국제뉴스, 시민적인 정의, 외국 인권단체의 목소리 이런 데 민감하다. 합리적 보수는 국내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층이기 때문에 정부가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그런 것들이 정부에 압박이 될 것이다.”

8월 6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특별법에 전격 합의한 것은 이러한 부담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양당 합의가 있기 전 정치권의 분위기를 전했다. “새누리당이 교황 방한을 앞두고 ‘이 상태로 교황과 유가족이 만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교황과 유가족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교황의 입에서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 결과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만나면 골치 아프기 때문에 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은 상태에서 ‘우리도 할 말 있다’ ‘우리도 양보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만나려 할 것이다.” 8월 6일 양당의 전격 합의는 교황 방한에 부담을 느낀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세월호 특별법 출구마저 막은 야당
하지만 유가족들은 여야의 특별법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수사권·기소권은 물론 야당안이었던 특검추천권까지 받아내지 못한 후퇴안이기 때문이다. 7·30 재·보선 패배로 가뜩이나 좁아졌던 수사권·기소권이 있는 세월호 특별법의 정치적인 출구가 야당의 전격 합의로 아예 막혀버렸다. 유가족들은 이런 상황에서 교황의 방한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변곡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유가족 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여야 합의안에 대해 “이러려고 단식한 거냐”며 울분을 토로하면서 “교황 방한으로 전환점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를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 대책위는 교황청 담당자에게 수사권·기소권이 있는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할 계획이다.

유가족들이 정치권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교황을 기다리는 모습에 야권의 한 관계자는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야당에 몸담고 있지만, 왜 이렇게밖에 협상을 못했는지 답답하다. 정치권에 있으면서 창피하지만, 교황이 방한해 특별법 문제에 좀 방향이 전환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갈등의 상황에서 야당이 정치적인 출구를 찾는 데 소극적이거나 막아버린 것이 낯선 상황은 아니다. 익숙하다. 세월호 유가족 외에도 교황 방한 행사에 초대받은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과 같은 이유로 교황을 기다리고 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밀양 주민, 용산참사 주민, 강정 주민들이다. 교황과의 면담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명동성당 미사에 초대받았다.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서 몇 년째 한국 사회에서 해결되지 않은 숙제가 된 사건들이다.

“사실만이라도 전달할 수 있는 계기로”
이들이 교황을 기다리는 이유는 제 기능을 잃어버린 한국 사회 현실을 보여준다. 세월호 특별법에서 보듯이 정치는 작동을 멈췄다. 8월 6일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여야 합의가 발표되던 날 김득중 쌍용차 평택지부장은 광화문에서 동조단식을 하고 있었다. 김 지부장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유가족들이 단식까지 하는 상황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사회냐고 반문했다. “이 문제를 정치가 외면하고 방관하고 있어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교황 방한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교황 방문으로 다시 한 번 정부에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김 지부장은 정치적 해법이 막혀버린 세월호 특별법 문제를 보면서 쌍차 문제에 숱한 약속을 했던 정치인들을 떠올렸다. “쌍용차도 진상규명위나 해고자 복직 문제로 5년째 싸우고 있는데, 우리도 무모할 정도로 단식하고 송전탑 올라가고 25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겨우 세상에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정치는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정조사를 약속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당론으로 채택했는데 결국 유야무야 없어졌다. 지금도 쌍용차 해고자들의 복직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 교황 방한을 계기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충연 전 용산 철거민 대책위원장은 정치권에 아예 기대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그래도 정치권에 희망을 가져왔던 걸로 알지만, 정치인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경험해왔기 때문에 안다”고 말했다.

3월 17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회원들이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올해 방한하는 교황이 한국사회에서 자본의 논리와 국가권력으로 고통당하는 수많은 해고노동자들과 강정, 밀양의 주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헤아려주기 바라는 청원을 발표하고 있다. | 김정근기자

3월 17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회원들이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올해 방한하는 교황이 한국사회에서 자본의 논리와 국가권력으로 고통당하는 수많은 해고노동자들과 강정, 밀양의 주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헤아려주기 바라는 청원을 발표하고 있다. | 김정근기자

제도 또한 균형을 잃은 지 오래다. 이충연 전 위원장에게 한국 사회란 제도가 일반 시민의 삶과 생존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사회였다. 재개발을 반대하더라도 세입자들은 재개발에 대해 관여할 수 없었다. 그저 기업에 유리하게 제도가 만들어져 있고, 세입자들이 개발을 반대하면 불법적인 업무방해자가 됐다. “제도라는 게 만들어진 이유는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은 최소한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제도가 국민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몬다면 제도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는 기본적인 삶보다는 돈의 논리를 우선시했다. 그에게는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규제완화라는, 돈을 우선시하는 제도적 틀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용산참사와 닮았다. 그는 용산참사 때 진압하던 경찰의 사망에 대한 책임으로 구속됐다. 하지만 당시 총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경찰청장은 공항공사 사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을 교황에게 전달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다시는 용산참사나 세월호 참사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메시지를 교황이 남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권도 이윤에 뒤처진 지 오래다. 밀양주민 구미현씨에게도 한국 사회는 “대기업의 이윤만 보호하는 나라”다. 구씨는 지난 6월 한전의 행정대집행 당시가 지금도 눈앞에 떠오른다. 주민들이 끌려나가지 않기 위해 쇠사슬을 쓰고 있었는데 경찰이 이를 끊어내는 과정이 너무 잔혹했다. 쇠사슬을 끊는 과정에서 너무 세게 잡아당겨 숨통이 끊어질 정도로 숨이 안 쉬어졌다. 지금도 눈앞에 경찰이 가지고 있던 쇠 자르는 기계가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인권을 현장에 있던 국가인권위는 지켜주지 않았다. “국가인권위가 경찰과 보조를 맞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이 사람들을 잡아끌어도 인권위는 별 문제 없다는 식으로 넘어갔다. 기댈 데가 아무 데도 없는 것 같다.” 구씨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도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야 할지 정리가 안 되고 굉장히 마음이 착잡하다. 기댈 데가 없는 구씨는 교황에게 이러한 밀양과 한국 사회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다.

정부 안 변할 것… 시민행동 동기부여 기대
이들이 단순히 종교계 지도자가 아닌 교황 방한에 기대를 하는 것은 한국의 종교 또한 작동을 안 하기 때문이다. 김진호 연구실장은 교황 방한을 기다리고 교황의 방한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조금이라도 풀리기를 바라는 것이 한국 종교지도자들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개신교는 물론이고 천주교 또한 종교지도자들이 제 역할을 못하다 보니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이충연 전 위원장은 천주교에 대해 각별하지만, 천주교 전체의 보수성에 대해서는 실망스럽다. 이 전 위원장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도움 덕분에 355일만에 남일당에서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매일 거르지 않고 신부님들이 남일당 건물에서 미사를 집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씨는 신부님들도 천주교 내에서 탄압을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안식년 1년 이후에 본당에 돌아가서야 하는 신부님들이 본당으로 발령을 못 받고 몇년째 안식년을 갖고 계시기도 한다. 지금도 계시다. 천주교 내에 불합리한 것들이 있어서 교황 오시기 전에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 사무총장 마리오 토소 주교와도 면담했었는데, 그 때도 이러한 점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듀오보다는 대형교회가, 최고의 결혼시장은 S교회라는 농담처럼 종교가 시민 개인의 삶의 이해득실과 결부된 지 오래다. 중산층 중심으로 종교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종교를 떠나게 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김 실장은 “종교가 우리 사회에서 나눔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관계망을 회복시켜가는 매개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교황의 방한으로 제 기능을 잃어버린 한국 사회는 조금이라도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까.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이 오면 이슈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종교적인 행동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 여론조사 결과도 조사하면 수사권을 줘야 한다는 게 압도적으로 나온다. 국내 여론도 외면하는 정부인데, 외부자인 교황이 말했다고 정부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심리적 위로는 받을 수 있지만 정치적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결국 정부를 바꾸기는 쉽지 않고 일반 시민들이 내적 역량을 키우는 데 의미를 둬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진호 실장은 “정부는 압박을 받겠지만, 그 압박을 이어서 제도화할 수 있는 비판 정치세력이 없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이든 진보적 정치세력이든 정치적 제도화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다만 집단적·사회적 이슈가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교황 방한으로 사회적 정의라는 이슈에 대한 생각이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동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내적 역량이 강화될 수 있는 기회를 지도자들이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의미 있게 작동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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