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광화문 미사, 세월호 유가족 농성 보듬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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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과 나> 저자 김근수 신학자 “교황, 다른 어떤 곳보다 팽목항에 갔으면…”

“교황이 방한하면 다른 어디보다 팽목항을 갔으면 좋겠다. 팽목항에 가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을 끌어안고 함께 울며 기도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떠나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의 가슴에 맺힌 한은 약간이라도 풀어지지 않을까.”

<교황과 나>의 지은이 신학자 김근수씨는 교황이 방한하면 어디를 찾았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교황과 나>는 ‘가난한 교회’를 강조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적인 삶과 한국 종교의 개혁 필요성을 다룬 책이다. 세월호 참사의 상처가 해소되기는커녕 계속 덧나기만 하는 한국 사회에 교황의 방한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지난 8월 4일 김근수씨를 만나 교황 방한의 의미를 물었다.

[표지이야기]“광화문 미사, 세월호 유가족 농성 보듬어야”

교황 방한에서 다른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의 만남이 주목받고 있다.
“상반기의 세월호 참사와 하반기의 교황 방한이 올해 한국 사회의 2대 화두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권력의 맨 얼굴이 드러난 사건이고, 교황 방한은 한국 천주교는 물론 한국 사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8월 16일 교황이 집전하는 광화문 시복미사 행사를 앞두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광화문 농성장 유지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광화문 시복식 미사에서 유족들의 농성장을 몰아내거나 해산시켜서는 안 된다. 시복식은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이 성인 이전 단계인 복자로 추대되는 자리다. 과거에 고통받았던 분들을 존중하는 미사다. 그렇다면 지금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는 유가족들의 아픔을 종교 예식인 미사에 함께 포함하는 것이 어울린다.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같이 미사해야 한다.”

일단 유가족들과 교황의 면담은 성사됐다.
“유가족들을 만난 후 교황이 세월호 진상이 정확히 밝혀져서 유가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씻어줬으면 좋겠다는 한 마디만 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의 주교들을 향해서는 세월호 진상을 밝히도록 촉구하는 데 왜 나서지 않았는가를 물었으면 좋겠다.”

한국 정부로서는 교황 방한이 부담이 되겠다.
“정부로서는 부담이 되고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예컨대 광화문 시복미사에서 대통령이 맨 앞줄에 위치해 2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미사에서 계속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가톨릭 친구들에게 우호적인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방한을 앞두고 일정 논란이 계속 일었다.
“교황이 작년에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 빈민촌을 갔다. 한국은 그게 없다. 아시아 청년대회에서 빈민촌을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없어서 아쉽다. 교황님의 삶과 메시지에 어울리기위해서는 일정이 있는것이 맞다.”

교황의 삶과 메시지는 어떤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개혁을 표방하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나 베네딕토 16세와는 다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교회’를 말한다. 이 메시지는 종교 비판이다. 가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 불교도 돈이 종교를 좌우한다. ‘가난한 교회’는 이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종교가 활동하고 기능하는 면에서 자본주의 원리가 종교의 원리인 교리보다 앞선다. 돈이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금 교황은 그것을 반대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종교가 되기 전에 종교 자체가 가난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가난’이라는 주제는 대개의 종교지도자들이 말하는 것 아닌가.
“지난 교황과의 차이점은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는 것은 물론 가난의 구조적 원인까지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황은 ‘규제받지 않은 자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라는 말을 했다. 작년에 발표한 회칙(문헌)을 보면 ‘가난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불평등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이전에는 개인의 신심이나 자선에 초점을 맞췄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구조의 문제를 먼저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종교는 어떤가.
“가난한 사람이 진짜 환영받는 종교는 한국에 없다. 중산층화, 우경화, 보수화됐다. 신도 구성의 경제적 기반이 바뀌었다. 나아가 요새 종교는 심리주의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심리문제, 경제의 문제도 심리문제, 조직의 문제도 심리문제로 자꾸 축소한다. 종교는 마음의 위로와는 거리가 멀다. 종교는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요새 종교는 현실을 바꾸자는 게 아니라 현실을 보는 내 마음의 해석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난과 갈등의 현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할 말이 없다. 이건 종교가 사람을 속이는 거다.”

가난의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 경향이 있다.
“가난의 문제는 나와 관계 없는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다. 정치에서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투표시킬 것인가가 문제라면, 종교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야 하는데 요새 종교는 그것을 막아버린다. 일부러 안 한다.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신도들이 그의 정신적 노예가 되도록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익이 떨어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심리문제로 축소해서 마음에서 해소시키는 속임수를 쓴다. 예배 때 춤추고 노래 부르며 마음을 흐뭇하게 하지만 끝나고 나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교황이 추진하는 개혁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개혁적인 대통령이 들어왔다고 해도 공무원이 하루 아침에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반대도 하고 사보타지도 하고 태업도 한다. 현재 가톨릭교회에서는 프란치스코의 개혁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노골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일을 제대로 안 하거나 모른 체하거나 하는 형태의 저항이 아주 많다.”

한국 천주교회는 어떤가.
“한국 천주교는 보수화돼 있고 교황의 개인적 성품만 강조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인적인 캐릭터만 강조하고 구조개혁의 문제는 보도를 안 한다. 카마라 대주교가 이런 말을 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준다고 하면 사람들이 날 성인이라고 하고, 가난의 원인을 말하면 사람들이 마르크시스트라고 한다.’ 지금도 한국 교회는 가난한 사람을 돕자고 하면 박수를 치면서, 가난의 원인을 설명하려고 하면 빨갱이라고 한다. 교회가 너무 부자들하고 손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만 제 역할을 해도 공동체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한다.
“한국에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치면 1500만의 신자가 있다. 셋 중 한 명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다. 이 셋 중 한 명이 똑바로 살면 나라가 이렇게 되겠나. 지금 한국에 목사가 20만명이다. 그 중 10분의 1인 2만명만 똑바로 살면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되겠나.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가 사회를 비추고 사회 부패를 막는 빛과 소금이 아니라 부패의 선봉에 서 있다. 그러나 언론은 종교단체와 전면전을 벌이기를 두려워하고, 정부는 선거가 있으니까 못 건드려서 종교들이 마음껏 부패한 것이다. 종교는 한국 사회의 치외법권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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