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기·경북고 비집고 서울·대구고 뜬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박근혜 정부 들어 서울고 대약진, 1기 내각 땐 같은 기수 4명 입각도…

친박 실세 최경환 경제부총리 오른 뒤 대구고 주목, 유독 금융계서 ‘전성기’ 맞아

박근혜 정부에서는 기존의 고위직을 장악했던 경기고·경북고 대신 서울고·대구고가 뜨고 있다. 도명(道名)보다 도시명을 가진 학교들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서울엔 서울고, 대구엔 대구고”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비록 묘한 우연이긴 하지만 도시명을 가진 학교들의 부상은 박근혜 정부의 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서울고 선후배 끈끈 ‘SSS라인’ 신조어
박근혜 정부의 1기 내각에서는 단연 서울고의 부상이 돋보였다. 한 기수에서 4명이 나란히 장관에 임명됐다. 문형표 보건복지부·방하남 고용노동부·서승환 국토교통부·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고 27회로 고등학교 동기생이었다. 서승환·방하남·유진룡 장관은 같은 3학년 4반 출신이었다. 이들 외에도 서울고 23회인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1기 내각에 들어갔다. 당초 장관 내정자는 경기고 출신 5명, 서울고 출신 4명(문 장관은 2013년 11월 임명됨)이었다. 하지만 경기고 출신의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가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물러난 후 서울고 20회인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유임되면서 경기고 대 서울고의 비율은 1기 내각에서 4 대 6으로 역전됐다.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1기 내각의 장관 중에 서울고 출신들은 모두 6명이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1기 내각의 장관 중에 서울고 출신들은 모두 6명이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초대 내각에서 국무총리로 지명됐다가 사퇴했던 김용준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서울고 중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고는 박근혜 1기 내각에서 더 막강한 학맥을 자랑할 뻔했다. 서울고가 박근혜 정부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서울의 명문인 경기고에 이어 행시 출신이 많다는 점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초기에 관료 출신들을 선호하면서 서울고 행시 출신들이 중용됐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박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들에 서울고 출신들이 많다는 점도 플러스가 됐다. 대선 이후 권력이 집중됐던 김용준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고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 7인회 멤버인 안병훈 도서출판 기파랑 대표가 모두 서울고 출신이다. 서울고의 부상으로 박근혜 정부에서는 ‘성시경’(성균관대-고시-경기고) 내각 이후 ‘SSS’(서울 태생-서울고-서울대)라는 조어가 등장할 정도였다. 부처 장관 외에 장관급인 인사들도 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26회,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27회다. 청와대에서는 주철기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서울고 17회다.

속칭 ‘뺑뺑이 이전 세대의 마지막 기수’가 서울고 황금시대를 열었다는 분석도 있다. 서울고는 27회와 28회에 관료 출신들이 많이 분포돼 있다. 28회가 시험을 쳐서 들어간 입시 명문고의 마지막 기수였다. 서울고 출신 한 인사는 “경기고는 뺑뺑이 세대를 후배 취급도 하지 않아 연결고리가 약했지만, 서울고는 경기고에 비해 뺑뺑이 전후 편차가 심하지 않았고, 그래서 뺑뺑이 이전과 이후 선후배 간 연결고리가 탄탄했다”고 말했다. 비록 경기고에 밀렸던 2등 학교지만 선후배의 끈끈한 정 덕분에 뺑뺑이 직전 세대와 직후 세대가 경기고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서울고의 독주는 서울고 출신인 문창극 총리 지명자의 낙마를 고비로 하향세로 돌아섰다. 세월호 대참사 이후 관피아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자연스럽게 서울고 출신 관료들의 설 자리도 좁아졌다. 2기 내각에서 서남수·방하남·유진룡 장관이 물러나면서 장관 숫자가 줄었다. 하지만 지난 6월 서울신문에서 청와대와 정부 파워엘리트 256명의 출신고를 조사한 결과 경기고와 서울고가 나란히 13명으로 1등을 차지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줬다.

지난 7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7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에서 서울고 출신 인사들이 박근혜 정부에서 부상했다면 대구에서는 대구고 출신 인사들이 이 정부에서 뜨고 있다. 특히 2기 내각에서 친박 실세인 최경환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오름에 따라 대구고 인맥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TK(대구·경북)로 고위직을 독식했던 경북고의 명성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눈에 띄는 인물들이 나타난 것이다. 7월 25일 차기 국세청장으로 내정된 임환수 서울청장이 첫 수혜자로 떠올랐다. 임 내정자는 최 부총리의 대구고 6년 후배다. 

임 내정자는 최 부총리가 경제통으로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친분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임 내정자는 줄곧 국세청장 제1 후보로 거론돼오다 최 부총리가 입각하면서 우연찮게 곧바로 국세청장에 내정됐다. 때문에 차기 국세청장을 놓고 경쟁했던 이전환 국세청 차장이 지난 6월 27일 돌연 사표를 낸 것에 대해 관가에서는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다. 내부에서는 최 부총리의 입각으로 임 내정자의 국세청장 임명 가능성이 커지자, 이 전 차장이 명예롭게 은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청장 등 대구고 인맥 TK 새 강자로
대구고 출신 인맥은 유독 금융계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대표적인 대구고 출신 금융계 인사이다. 금융계의 한 인사는 “최 부총리가 한국여자농구연맹의 총재를 맡던 시절 우리은행이 각종 여자농구연맹 행사의 후원 기업이 될 정도로 두 인사의 관계가 두터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가 친박 실세로 여당 원내대표를 지내던 지난해 말에 국민연금 자금운용 최고책임자(CIO)에 임명된 홍완선 자금운용본부장은 최 부총리의 대구고 15회 동기다. 이 인사를 놓고 최 부총리의 힘이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두 사람이 속한 대구고 15회는 서울고 27회처럼 황금 기수로 손꼽힌다. 이 기수에서 최 부총리를 비롯해 금융계·언론계 등에 다수의 유명인사들이 활약하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계에서는 대구고 출신 인사와 관련해 KDB대우증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기범 KDB대우증권 사장이 중도 퇴임한 이후 후임 사장으로 대구고 출신 인사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여러 후보 중 전병조 KB투자증권 부사장과 김윤태 전 산업은행 부행장이 대구고 출신이다. 여기에다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구동현 KDB산은금융지주 부사장도 대구고 출신이다.

최 부총리와 가까운 한 정계 인사는 “최 부총리는 ‘최 부총리의 대구고 후배’라는 ‘이름팔이’를 극도로 싫어한다”면서 “국세청장 내정자처럼 능력이 있는 사람이 능력에 걸맞은 자리에 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친박 실세인 최 부총리 때문에 대구고 출신 인사들은 남다른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경제계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혜택’을 입지 못했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대표적인 것인 사정 라인이다. 대구고 출신인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 이만희 전 경기경찰청장, 임환수 전 서울국세청장(현 국세청장 내정자)이 해당 기관에서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떠돌았다. 하지만 경제계에 속하는 임 내정자만이 승승장구해 결국 국세청장 자리에 올랐을 뿐이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