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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 당시 거북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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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역사적 사실 논란,

이미 불타서 없던 거북선 등장시켜 극적 요소 가미

영화 <명량>이 연일 최단 기간 관객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개봉 열흘 만인 8월 8일 새벽 800만명 관객 기록을 돌파했고, 최단 기간 1000만 관객 동원을 앞두고 있다. 영화 제작팀은 명량해전의 역사적 사실을 놓고 최대한 역사적 고증을 거쳤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와 역사적 사실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명량해전의 역사적 사실은 <난중일기> <선조실록> <임진잡록> 등 여러 기록에서 나타나지만 대부분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 <장계(승전 보고서)>에 사실적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 속 내용은 <난중일기>의 역사적 사실과 어떻게 다를까.

우선 영화 속에서 거북선을 불태우고 달아난 경상우수사 배설의 설정부터 <난중일기>와 차이가 있다. 경상우수사 배설은 원균이 지휘한 칠천량 전투에서 12척의 배를 갖고 도망쳐 나왔다. 이 배가 조선 수군의 마지막 남은 12척이다. 그는 명량해전(1597년 음력 9월 16일)을 보름 정도 앞둔 9월 2일(음력) 새벽에 도망을 쳤다. 이 같은 사실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기록돼 있다. 배설이 거북선을 불태우고 달아난 것이 아니라 그냥 육지로 도망친 것이다. 거북선은 이미 칠천량 전투에서 모두 불타고 없어졌다. 영화 <명량>에서는 이 거북선이 등장한 것이다.

영화 <명량>의 한 장면.

영화 <명량>의 한 장면.

비겁한 도망자 배설, 다소 과장
이순신 연구가로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일상이상)를 최근 출간한 김태훈 전국은행연합회 기획조사부장은 “거북선이 불타는 장면은 관객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극적 요소를 가미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거북선은 이미 칠천량 해전에서 모두 불탔고, 매일 진을 옮겨 다니는 도중에 거북선을 단기간에 만들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진심진력-삶의 전장에서 이순신을 만나다>(더 퀘스트)를 쓴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는 “기록을 보면 명량해전에서 거북선은 등장하지 않았으며, 다만 거북선으로 위장하려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영화 <명량>에서 배설은 ‘제2의 원균’으로 등장한다. 거북선을 불태우고 달아나다가 화살에 맞아 죽는 것이다. 실제로는 배설은 도망을 쳤다가 1년 후 권율 장군에게 잡혀 참수를 당하게 된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는 “배설이 이순신 장군을 암살하려 하고 거북선을 불태운 뒤 도망치는 모습은 역사의 왜곡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허구”라고 말했다. 박 연구가는 “비겁한 도망자 배설은 맞지만 이순신 장군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그를 참혹한 희생양으로 만들었다”면서 “이는 제2의 원균 만들기”라고 비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이순신 장군을 극단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원균을 극단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과 비슷한 설정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김태훈 기획조사부장은 배설의 설정에 대해 “극적 재미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영화에서는 충분히 가공이 가능하다고 본다”면서 “왜곡이 아니라 역사적 상상력을 통한 강조”라고 말했다.

명량해전의 실제 전투에서 영화 <명량>이 역사적 사실과 다른 점은 백병전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김태훈 기획조사부장은 “영화에서 대장선에서 백병전이 벌어지는데 난중일기를 보면 본격적인 백병전은 없었다”면서 “대장선에서는 사망자 2명 부상자 3명이 발생한 기록을 보더라도 백병전이 벌어졌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정유일기>에는 ‘상선(대장선)이 홀로 적선들 속으로 들어갔다. 포탄과 화살이 비바람처럼 일었지만 여러 배들은 구경만 하고 나오지 않아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고 기록돼 있다. <난중일기>의 다른 전투 기록을 보면 조선 수군은 화포로 왜선을 파괴할 뿐 이순신 장군이 직접 칼을 휘두르며 적과 싸움을 벌였다는 기록은 등장하지 않는다. 지략이 뛰어난 이순신 장군은 왜군보다 우수한 화포와 활쏘기 기술로 원거리 공격을 펼쳤다. 왜군을 쫓아 육지에까지 상륙한다든지 왜선이 판옥선 근처에 접근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근접전에서 왜군이 조총과 뛰어난 검술을 펼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근접전이 필요할 경우 돌격선으로 거북선을 이용했다.

선상 백병전도 영화 속 상상력
명량해전에서 백병전에 가까운 근접전은 안위의 함선에서 일어났다. 정유일기에는 ‘안위가 몹시 당황해 곧바로 뚫고 들어가 교전할 때 적장의 배와 다른 두 척의 적선이 안위의 배에 개미처럼 달라붙었다. 안위의 격군 7~8명이 물에 떨어져 헤엄치고 있었으나 구할 수 없었다’고 기록돼 있다. 김 조사부장은 “안위의 함선으로 왜군이 백병전을 시도했으나 대장선이 도와줌으로써 왜군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서 판옥선으로 왜선을 격파하는 장면도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영화에서는 이를 충파(衝破)라고 표현했으나 충파는 <난중일기> 중 1593년 2월 20일 기록에 등장한다. 이 뜻은 판옥선으로 왜선을 격파하는 것이 아니라 큰 바람이 불어 배끼리 부딪쳐 ‘구멍나고 깨졌다’는 표현에 등장한다. 이를 당파(撞破)로 표현한 주장도 있다. 하지만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는 “충파든 당파든 난중일기 내용을 보면 모두 잘못 해석됐다”고 말했다. 박 연구가는 “1592년 6월 5일 당항포 해전 기록에서 ‘당파’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천자·지자의 각 총통을 연달아 쏘아 왜적선 50여척을 쳐서 깨뜨렸다’는 표현에 당파가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이순신 장군의 장계 등에서도 당파는 천자포·지자포·대장군전 등의 총통 등을 활용해 포탄 등으로 맞혀 적선을 깨뜨리는 방식의 전투였다. 박 연구가는 “거북선으로 직충(直衝)했다는 기록도 등장하지만 이 역시 거북선이 왜선들을 들이박았다는 것이 아니라 적의 대열을 깨뜨리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화포가 왜선에서 터지면서 배에 불이 붙는 것도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화포는 당파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왜선을 깨는 역할만 했다. 왜선에 불을 내기 위해서는 따로 불화살을 이용했다.

영화 <명량>의 역사적 사실 논란은 결국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냈느냐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김태훈 기획조사부장은 “영화 <명량>이 이순신 장군의 절규와 고뇌를 그려내면서 완전 무오류의 장군상을 만들어낸 이전의 이순신 장군 영화보다 진일보했다”고 평가했다. 김 조사부장은 “신이라면 숭배의 대상이지 따라가야 할 귀감이 되지 못한다”면서 “이순신 장군이 너무 완벽하다면 이순신 장군을 따를 사람이 없으므로 온전히 이순신 장군을 인간의 영역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는 “탈영병을 처형하는 장면 등은 이순신 장군의 진정한 리더십과 맞지 않는 부분으로, 이순신 장군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낸 것이 아니라 할리우드식, 사무라이식 영화로 지나친 영웅화를 시도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박 연구가는 “영화 <명량>이 사실보다는 픽션에 가깝지만 우리 곁에 이순신 장군을 다시 불러냈다는 의미는 소중하다”고 덧붙였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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