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동부그룹 구조조정에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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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의 동부 계열사 인수 무산… “총수 일가의 동부화재 지분 담보로 제공해야”

“포스코가 감당해야 할 재무적 부담에 비해 향후 사업성이나 그룹 전체에 미치는 시너지가 크지 않다고 판단해 인수 포기를 결정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지난 6월 24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패키지 인수 포기를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동부CNI 회사채 상환 급한 불은 꺼
동부그룹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지난 3월 포스코에 동부 패키지 인수를 제안했다. 포스코는 서류 검토, 현장 실사 등을 거친 끝에 결국 인수를 포기하기로 했다. 포스코로서는 대기업 구조조정에 동참하라는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박도 있었지만 결국 가격이 문제였다. 포스코는 5000억원가량으로 가격을 매겼지만 산은은 9000억원가량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동부그룹 본사 앞을 직원들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동부그룹 본사 앞을 직원들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동부 패키지 매각계획이 물거품이 되면서 동부그룹 구조조정에 적신호가 켜졌다. 동부그룹은 지난해 11월 동부제철 인천공장 등 일부 자산 매각 등이 포함된 3조원 규모의 자구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포스코의 ‘퇴장’으로 4개월간 허송세월만 한 셈이 됐다. 포스코가 인수 포기를 발표한 지 불과 3시간 만에 산은이 동부제철에 대한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방침을 전격 발표하면서 주요 계열사 신용등급이 떨어졌다.

당장 동부CNI로 불똥이 튀었다. 동부 비금융 계열사 지주회사격인 동부CNI는 주채권은행인 산은이 신용등급 하락 등을 이유로 회사채 차환발행을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 법정관리로 돌입하는 게 아니냐는 위기설이 퍼졌다. 동부제철의 경우 신용보증기금이 지원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워크아웃으로의 전환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동부그룹은 일단 급한 불은 끄는 데 성공했다. 동부CNI가 이달 중 갚아야 할 회사채는 500억원이다. 동부CNI는 7월 4일 회사가 보유한 동부팜한농 주식 2267만8800주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장녀 주원씨와 장남 남호씨에게 635억원에 매각했다. 이번 주식 매각으로 확보된 자금은 회사채 상환과 재무구조 개선에 활용된다.

동부제철도 자율협약 체제에 들어가기로 했다. 동부제철 채권단은 7월 1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자율협약 진행을 위한 사전협의를 마무리했다. 이 자리에서 신용보증기금은 신속인수제를 통해 7~8월 만기가 도래하는 동부제철 회사채 1100억원의 차환(기존 채권 상환을 위해 새 채권을 발행하는 것) 발행을 지원하기로 채권단과 합의했다. 신속인수제는 산업은행 등 채권은행과 신보가 동부제철의 신규 회사채를 사들여주는 형태의 지원방식을 말한다.

동부그룹으로서는 한숨을 돌리게 됐지만 향후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율협약은 오너 일가인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과 주채권은행으로서 지난 10여년간 동부 재무상태를 관리해온 산은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도권을 지닌다는 뜻이다. 동부 부실에 책임이 있는 장본인들이 구조조정을 맡게 되는 셈이다.

“신규자금 주는데 대주주도 성의 보여야”
동부그룹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했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동부그룹의 연결기준 부채비율과 이자보상배율은 2012년 기준으로 각각 397.57%, 0.3배였다. 금융권에서는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상태가 3년 넘게 지속되면 심각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부실기업으로 여긴다. 오너 일가의 경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산은은 동부 구조조정을 위한 핵심 매물인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경쟁입찰에 부치지 않고 포스코와의 수의계약을 밀어붙이다 실패를 자초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금융당국, 산은, 동부그룹 세 주체의 이해관계가 왜곡된 형태로 맞아떨어지면서 동부그룹 구조조정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어떻게든 금융계열사 지배권은 유지하겠다는 총수 일가, 재무구조 개선 유도를 이끌어내지 못한 책임론을 피하려는 산은, 더 이상 대기업 부도는 막고 싶은 정부의 의도가 얽혀 있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세 주체의 도덕적 해이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어 과연 옥석 가리기를 통해 동부그룹 회생작업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라며 “요행을 바라는 천수답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향후 동부그룹 구조조정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김준기 회장의 장남 남호씨가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을 둘러싼 동부와 채권단 간 샅바싸움이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김 회장에게 “채권단에서 신규자금을 주는데 대주주도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며 남호씨가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 14.06%를 담보로 내놓을 것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동부그룹은 채권단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남호씨가 보유한 동부화재 지분을 채권단 요구에 따라 담보로 제공할 경우 동부제철의 자금난이 악화돼 담보를 회수할 상황이 되면 결국 경영권이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동부그룹은 또 금산분리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비금융계열사 문제에 금융계열사를 끌어들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총수 일가에 부실책임이 있는 만큼 동부화재 지분을 담보로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남호씨는 일반 주주가 아니라 동부제철은 물론 동부화재에 대해서도 통합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총수 일가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부실을 초래한 지배주주 책임을 묻는다는 차원에서 보면 당연히 동부화재 주식이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산분리 원칙은 동부화재가 동부제철에 신용공여를 하거나 출자하는 등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에 대해 지배를 하거나 지원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화재와 제철 간 관계를 문제삼는 게 아니라 그룹 전체 경영권을 행사하며 부실을 야기한 총수 일가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인데 금산분리 원칙 위배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설명했다.

<김지환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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