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적 긴장 높아가는 요나구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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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요나구니가 센카구 제도 방어를 위한 지정학적 요지라 판단하고, 육상자위대 소속 정보부대를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인구 1200명의 이 작은 섬은 중국과 대만, 일본과 미국의 군사적 압력이 폭발하는 ‘태풍의 눈’으로 진입하는 것이 된다.

오키나와 본섬 사람들은 타이완 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섬들을 사키시마(先島)라 부른다. 오키나와 본섬의 관점에서 보면 사키시마에 속하는 미야코나 야에야마 제도는 일종의 ‘변경’이라는 지리적 표상이 거기에 담겨 있다. 16세기에 이르러 오키나와 본섬의 류큐왕국에 복속되기 이전까지 이 섬들은 독자적인 권력체계와 문화를 갖고 있었다.

현재는 오키나와 현에 속해 있지만, 이 섬 사람들의 오키나와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중앙과 변경의 권력관계는 일본열도와 남서제도 사이에도 있지만, 오키나와 본섬과 사키시마 사이에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키시마의 섬들 가운데 흥미로운 섬 중의 하나가 야에야마 제도의 끝자락에 있는 요나구니 섬이다. 이 섬은 오키나와의 최서단에 위치하며 타이완과는 불과 40㎞ 떨어진 거리에 있다.

지리상으로는 타이완과 가까워
중세까지 요나구니 섬은 샤먼을 겸한 여성 부족장이 독자적으로 통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던 것이 16세기에 이르러 오키나와 본섬의 류큐왕국에 복속되었고, 그 이후로는 오키나와와 운명을 같이했다. 타이완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고, 오키나와 본섬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섬이기 때문에, 이 섬 사람들의 생활감각 속에는 “나는 일본인이다” 또는 “나는 오키나와인이다”라는 감각보다는 “나는 요나구니 사람이다”라는 감각이 지배적이다.

지리상으로는 타이완과 가깝지만, 요나구니가 중세부터 타이완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요나구니 섬 편에서 보면 타이완이 거대한 대륙처럼 보이지만, 기묘하게도 타이완 편에서는 요나구니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요나구니가 타이완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일본이 류큐왕국을 멸절시키고 타이완을 강점한 이후일 것이다. 류큐왕국이 오키나와 현으로,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결과, 타이완과 요나구니는 밀접한 경제·문화적 공동체로 재편된다. 현재는 인구 1200명의 작은 섬이지만, 일본의 패전 후 타이완과의 밀무역이 성행했을 때는 요나구니에 무려 2만여명 가까이 거주했다고 한다.

패전 후 일본은 심각한 식량난과 생필품난에 허덕였다. 이때 타이완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사이에 있었던 오키나와 사람들은 오키나와 전쟁에서 소모된 고철 등을 타이완과 중국에 팔고, 그것의 대가로 생필품과 식량들을 사왔다. 타이완과 중국으로부터 밀무역을 통해 수입된 식량과 생필품들은 배편으로 일본 본도에 팔려갔는데, 이를 통해 일본은 심각한 생필품난을 극복할 수 있었고, 오키나와인들 역시 전후의 어둠 속에서 생존을 지속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밀무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된 이후 엄금되었고, 따라서 오키나와의 밀무역 경제도 소멸되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요나구니에 체류했던 사람들 역시 외지로 빠져나갔다.

그리하여 요나구니는 다시 동중국해의 고요한 섬이 된 셈이었는데, 최근 들어 이 섬이 매우 시끄러워졌다. 센카쿠 제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대만, 중국, 일본 간의 영토분쟁 때문이다. 미국이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을 본격화하고 일본이 이에 발맞춰 집단적 자위권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중국은 이것이 대중국 포위전략이라고 크게 반발하면서 동중국해를 관리하기 위한 군비를 확장하고 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의 ‘강대 강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그것의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요나구니에 일본의 육상자위대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이다.

경제자유지역 형태의 ‘평화의 섬’으로
일본 정부는 요나구니가 센카구 제도 방어를 위한 지정학적 요지라 판단하고, 또 중국과 타이완의 영유권 분쟁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중국어에 능통한 100여명의 육상자위대 소속 정보부대를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인구 1200명의 이 작은 섬은 중국과 대만, 일본과 미국의 군사적 압력이 폭발하는 ‘태풍의 눈’으로 진입하는 것이 된다. 요나구니 섬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오키나와 전쟁의 악몽을 불가피하게 상기하는 일이 된다. 중국 입장에서도 자위대의 요나구니 배치는 위협으로 간주된다. 이것은 일본과 미국이 동중국해를 마주보면서 직접적으로 중국과 군사적 대결을 벌일 각오를 굳혔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인 것이다.

이 ‘강대 강’의 충돌을 바라보는 요나구니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물론 그 중에는 침체된 요나구니 경제의 활력을 위해 자위대를 수용하고, 더 많은 토지보상비를 받아내겠다는 세속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소수일 것이다. 요나구니 섬 사람들의 대다수는 이 작은 섬이 중국과 타이완, 그리고 일본을 중계하는 관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중세로부터 오키나와는 중국과의 조공-책봉 시스템 아래서 일본과는 다른 독자적 문화와 역사를 유지해 왔다. 요나구니 사람들 역시 일본 정부에 의해 중국과의 교류가 억제된 이후인 현재까지도 자신들의 생활권을 오키나와 본도나 일본 열도가 아닌 타이완과 중국과의 교류에 두는 것이 훨씬 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번영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타이완 및 중국과의 교류가 차단되면서 요나구니가 쇠락했기 때문이다.

요나구니가 포함되어 있는 야에야마 제도의 사람들에게 중국이나 타이완은 ‘국가’ 개념이 아니라 ‘생활권’의 개념에서 이해된다. 지정학적 차원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주권이 맞부딪치고 충돌하는 지역의 경계가 요나구니이지만, 생활권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곳은 오랜 세월 동안 일본적인 것과 중국적인 것이 혼효되고 발효되었던 공간이다. 센카쿠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이 무주지 선점론을 기초로 센카쿠 제도를 영유화하기 이전까지 그곳은 중국과 오키나와 어민들의 삶의 장소였다.

그렇다면 요나구니에서 고조되고 있는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서는 중·일간의 영토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오키나와의 학자들은 ‘생활권’의 관점에서 이 변경문제를 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주권과 주권의 충돌로 센카쿠 제도나 요나구니의 문제를 보지 말고, 일종의 ‘자유교류지역’이나 ‘경제자유지역’과 같은 형태의 ‘평화의 섬’으로 중립화시켜 불필요한 군사적 충돌과 긴장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보자면, 나는 오키나와 전체가 ‘중립화’를 통해 ‘평화의 섬’이 되는 것이 진정으로 이 지역 주민들의 존엄과 자립에 걸맞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일본과 중국 사이에 ‘완충지대’를 만들어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동시에 일본이라는 국가에 의해 ‘인질’이 되어버린 오키나와의 본래성과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이 아닐까.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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