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힐링의 와인 프로방스 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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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와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가벼운 바캉스 와인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로제 와인이야말로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약점을 보완하는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하는 와인이다.

영화 속의 와인은 우리에게 특별한 감명을 준다. 그것은 와인을 사랑하는 주인공들과 음식문화뿐만 아니라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름다운 포도원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와인영화라 할 수 있는 「Sideways」, 「A walk in the Clouds」와 「Bottle Shock」는 모두 미국 캘리포니아의 나파밸리와 산타바바라 지역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이다. 최근에 제작된 「A year in Burgundy」와 「You will be my son」은 프랑스의 버건디와 보르도 지방이 배경이지만 워낙 스토리가 탄탄하여 배경이 되는 포도원보다는 극의 흐름에 집중하게 된다.

「Out of Africa」의 작가 카렌 블릭센의 작품인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Feast)은 춥고 음산한 덴마크의 바닷가가 배경이지만 음식과 와인을 통해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다’는 특별한 메시지를 남긴 명작이다. 이번 호의 주제인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많다. 이곳 출신의 극작가 마르셀 파뇰의 영화 <마르셀의 여름>이나 <마르셀의 추억>은 뜨거운 가족애와 함께 프로방스의 자연을 잘 보여주고 있다.

라가르드 사원에서 바라본 마르세유 항구.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성채가 철가면과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 갇힌 곳으로 유명한 이프섬이다.

라가르드 사원에서 바라본 마르세유 항구.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성채가 철가면과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 갇힌 곳으로 유명한 이프섬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찾은 프로방스
<마농의 샘>이나 <프로방스에서의 1년> 역시 이곳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지만 프로방스 와인 영화로는 <어느 멋진 순간>(A good year)이 대표적일 것이다. 비록 지중해에서 떨어진 내륙지방인 뤼베롱의 고르드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런던 금융가의 펀드매니저 역을 맡은 러셀 크로우의 와인 사랑과 프로방스의 자연과 일상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작렬하는 태양, 노란 황금빛이 일렁이는 해바라기의 물결, 보랏빛 라벤더의 향기가 가득한 대지, 에메랄드 빛깔의 지중해와 하얀 석회암 산들이 연출해내는 풍요로운 자연환경과 프로방스인들의 여유로운 일상에서 새로운 영감과 정신적 치유를 위해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프로방스는 원래 로마인들에 의해 로마의 속주(Provincia Romana)라는 이름에서 유래하였으나, 기원전 7세기 이미 리구르족과 그리스인들이 지중해를 통해 정착하여 프랑스에서는 가장 오래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와인은 단연 아름다운 핑크빛깔의 로제 와인이다. 주요 와인 생산지역은 오랜 전통과 가장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코트 프로방스, 아를과 론 지방에 접해 있는 레보드 프로방스와 엑상프로방스, 그리고 카시스와 방돌이 유명하다. 필자는 먼저 아를에서 북쪽으로 30㎞ 떨어져 있는 레보드 프로방스로 향했다.

이곳은 와인으로도 유명하지만, 고흐가 죽기 1년 전까지 절망과 정신적인 방황 속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였던 생 레미에 있는 생 폴 드 모졸 정신병원이 있는 곳이다.

난공불락의 레 보 고성의 석회암 벽 구멍을 통해 본 레 보-드-프로방스지역의 포도와 올리브밭 풍경.

난공불락의 레 보 고성의 석회암 벽 구멍을 통해 본 레 보-드-프로방스지역의 포도와 올리브밭 풍경.

생 폴 드 모졸과 고대 로마의 유적지인 글라눔 사이에는 지금도 올리브 밭이 있는데 당시 고흐가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되는 곳에 모작이 있었다. 고흐가 머물렀던 병실과 중정을 둘러보고 생 레미에서 석회암 바위산고개를 넘어가니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모습의 포도밭이 거대한 석회암산 아래에 펼쳐졌다. 이곳은 무르베드르와 시라를 주품종으로 한 힘찬 레드 와인, 신선한 로제와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하다. 희뿌연 석회암의 척박한 자갈 위에 저렇게 생존할 수 있는 농작물이 올리브를 제외하고 또 있을까?

신선한 산도와 과일향의 장점
이곳 와인 생산지의 최정상에 있는 난공불락의 레 보 성은 놓쳐서는 안 되는 관광지다. 필자는 세잔이 유난히 사랑했던 생 빅투아르 산 아래에 있는 프로방스 드 빅투아르 포도원을 방문하기 위해 엑상프로방스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먼저 세잔의 화실을 방문한 후에 세잔의 모작들이 있는 언덕에서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생 빅투아르 산을 보면서 잠시 자연의 신비감에 젖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생 빅투아르의 북쪽 기슭을 돌아 가장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남쪽 포도밭으로 갔다.

하얀 빛깔의 거대한 석회암산인 생 빅투아르를 배경으로 자갈 위에 펼쳐진 포도원의 모습이 숨 막힐 듯한 장관을 연출하였다.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있는 것처럼. 이곳에서는 특히 테루아만큼 개성 있는 와인을 생산하는데, 로제와 화이트뿐만 아니라 장기 숙성용 레드 와인도 유명하다.

암포라 모양의 와인병으로 프로방스 최고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도멘 오트의 클로 미레유 와이너리.

암포라 모양의 와인병으로 프로방스 최고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도멘 오트의 클로 미레유 와이너리.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약점 보완
마르세유 동쪽 인근 해안에 위치한 카시스와 방돌은 프로방스에서 가장 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필자는 이 중 프로방스 와인의 롤스로이스라고 알려진 ‘도멘 오트’를 방문하기 위해 생 빅투아르를 출발하였다.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절벽 아래 석회석 토양에 포도원이 있는 카시스와 최고의 무르베드르 산지인 아름다운 항구 방돌을 거쳐 지중해 연안에 있는 라 롱드 레 모르에 있는 도멘 오트의 클로 미레이유 와이너리에 도착하였다. 설립자 마르셀 오트는 알자스 출신으로, 지중해에 대한 열망으로 1896년에 와이너리를 설립하여 최고가격, 최고품질의 전형적인 프로방스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명가로 성장시켰다. 특히 그의 와인은 고대 그리스의 와인 항아리 ‘암포라’를 상징하는 병 모양으로 유명하다. 

해안가의 포도밭과 현대적인 건물의 와이너리를 둘러본 후 ‘클로 미레이유 2007년산 화이트’, ‘코드 드 그레인 프로방스/방돌 2008년산 로제’, 그리고 ‘방돌 2004년산 레드’ 와인을 시음하였다. 필자의 관심은 로제였는데 적절한 산도와 타닌의 균형 잡힌 구조감이 우선 인상적이었다. 장미꽃, 블랙 커런트향과 드라이한 질감 속에서도 신선한 과일향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와인애호가들이 로제 와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가벼운 바캉스 와인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로제 와인이야말로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약점을 보완하는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하는 와인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태양의 와인이라 불리는 프로방스의 최상급 로제는 생소, 무르베드르, 그르나슈나 카리냥 같은 전형적인 지중해의 적포도 품종으로 만든다. 껍질이 검은 적포도라도 그 과육은 하얗기 때문에 주스 압착과정에서 껍질을 재빨리 제거하면 화이트 와인을 만들 수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자연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난공불락의 고성 레 보와 중세마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자연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난공불락의 고성 레 보와 중세마을

마르세유의 명물 부야베스. 지중해에서 나는 각종 어패류를 넣어 만든 해산물 수프로 로제 와인과 잘 어울린다.

마르세유의 명물 부야베스. 지중해에서 나는 각종 어패류를 넣어 만든 해산물 수프로 로제 와인과 잘 어울린다.

레드 와인이 발효과정에서 일정기간(보통 1~2주) 껍질의 침용을 통해 색깔과 충분한 타닌을 우려내는 데 비해, 로제는 단지 몇 시간 동안의 침용에 따라 다양한 핑크색과 타닌의 함유량이 결정된다. 따라서 로제 와인은 화이트가 가지고 있지 않은 적절한 타닌과 구조감을 가지고 있으며, 레드 와인의 지나친 무게감에 비해 가볍고 신선한 산도와 과일향을 가진 장점이 있다. 지중해의 해산물 요리와 샐러드, 스튜, 양다리까지 프로방스의 전형적인 요리와 함께 칠링하여 즐길 때 매혹적인 핑크빛 로제는 더욱 빛을 발한다. 지금도 프로방스는 누구나 꿈꾸는 힐링의 땅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여전히 그곳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고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얻고자 한다. 물론 그곳에는 언제나 프로방스의 로제 와인이 함께하고 있다.

<글·사진 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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