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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통 제빵기술 동네빵집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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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독일 빵집의 수는 3.6% 하락해 8000만명 인구인 독일에서 단지 1만3171개만 존재했다. 프랑스도 독일보다는 아직 전통 빵의 영향력이 강하지만 쇠퇴의 길을 걷는 것은 마찬가지다.

독일 남부의 작은 마을 쇼프하임에 있는 프리츠 트레프츠거의 빵집에는 일요일 아침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 빵집의 부엌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부엌 테이블 위에는 작은 타원형의 반죽이 있고, 오븐 선반 위에는 여러 종류의 빵이 놓여 있다. 부엌 가운데에 선 트레프츠거가 손목을 몇 번 흔들자 순식간에 가운데 부분이 봉긋하고 양 끝이 가느다란 풍부한 갈색의 프레첼 반죽이 동그랗게 모양을 갖춘다. 견학을 온 이들은 이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일반적인 빵집들과 달리 트레프츠거가 부엌을 공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전통 독일 빵집들을 고사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지역 대형마트가 파는 빵들을 집어드는 사람들에게 전통 빵집들이 빵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줘 그 안에 들어가는 시간과 정성의 차이를 깨닫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트레프츠커는 “그들 스스로 가까이 눈을 들이대고 우리들이 무엇을 하는지 보길 원했다”며 “사람들이 전통 제빵술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5일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독일 작센 주의 한 행사장에서 제빵사가 독일의 전통 빵인 바움쿠헨을 만들고 있다. | 플리커 RuckSackKruemel

독일 작센 주의 한 행사장에서 제빵사가 독일의 전통 빵인 바움쿠헨을 만들고 있다. | 플리커 RuckSackKruemel

냉동 대량생산 빵에 밀려 전통 제빵 위기
다른 많은 독일의 전통 제빵사처럼 트레프츠거도 1989년 아버지에게서 제빵술과 빵집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이 힘든 제빵일에 종사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전통 빵집은 자정을 조금 지나면 다음날 판매할 빵의 반죽을 섞기 시작하는데, 이런 일과는 빵을 만드는 데 흥미가 있었던 사람들도 종종 마음을 바꿔먹게 할 만큼 고된 것이다. 반면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나 마트에서 파는 빵들은 냉동식품과 다를 바 없다. 냉동기술의 발달로 대량생산된 빵 반죽들은 멀리까지 배달된 뒤 조리되어 마치 거기에서 반죽부터 모든 것을 다해 나온 듯한 향을 풍기며 전통 빵보다 싼 가격에 판매대에 오른다.

트레프츠거처럼 전통 제빵술의 고사를 우려하는 이들은 젊은 세대가 제빵술에 관심을 갖도록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홍보에 나섰고, 독일제빵협회는 지난해 독일 전통 제빵술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이런 노력 중 어느 것도 전통 제빵술의 쇠락을 막지는 못했다. 지난해 독일 빵집의 수는 3.6% 하락해 8000만명 인구인 독일에서 단지 1만3171개만 존재했다. 60년 전에는 서독 지역에만 5만5000개의 빵집이 있었다. 제빵을 배우는 사람 수도 7년 전에 비해 3분의 1이 감소해 지난해 2만6535명에 그쳤다.

8세기 샤를마뉴 대제 시대 이래로 20세기 말까지 독일인들의 주식은 호밀이나 스펠트밀과 같은 곡물로 만든 효모 발효 빵을 두껍게 썰어낸 것이었다. 독일어의 저녁인 ‘아벤트브로트’는 ‘저녁 빵’이라는 뜻이다. 독일제빵협회장 페터 베커는 “1960년까지 빵은 독일인들의 주요 영양원이었다”며 “사람들은 심지어 감사의 표시로 빵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런 중요성이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검은 숲’이 우거진 언덕에 자리잡은 쇼프하임은 아직 전통 빵집의 생명력이 강하게 이어지고 있다. 주민이 1만9000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도시이지만 전통 빵집이 곳곳에 있다. 비제 강을 좀 더 내려가 있는 이웃 마을에는 인구는 두 배이면서도 전통 빵집이 하나밖에 없다.

지난 3월 프랑스 파리의 바게트 경연에서 우승한 안토니오 테이세이라가 바게트를 만들고 있다. | 파리 AP연합뉴스

지난 3월 프랑스 파리의 바게트 경연에서 우승한 안토니오 테이세이라가 바게트를 만들고 있다. | 파리 AP연합뉴스

독일의 전통 빵을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 중에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젊은 제빵사인 외르크 슈미트(29)와 요하네스 히스(28)가 만드는 ‘익스트림 베이킹’이다. 픽업 트럭에 선반과 오븐을 설치하고 두 요리사가 차로 이동하면서 요리를 만들어 주문자에게 배달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은 것이다. 히스는 “사람들이 빵을 굽는 데 흥미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제빵 기술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사업에 위협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빵에 대한 흥미를 높여준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독일보다는 아직 전통 빵의 영향력이 강하지만 쇠퇴의 길을 걷는 것은 마찬가지다. 프랑스인들이 요즘 평균적으로 하루에 먹는 바게트의 양은 반 개다. 1970년에는 한 개, 1900년에는 3개 이상을 먹었다. 젊은이들은 10년 전에 비해 거의 30% 이하로 바게트 소비를 줄였다. 빵은 시리얼즈나 파스타, 쌀과 같은 경쟁자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프랑스는 여전히 동네 빵집들이 약 3만2000개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밀도를 자랑하지만, 1950년의 5만4000곳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바게트 소비량이 줄면서 프랑스의 제빵 및 제분업자의 로비 단체인 ‘빵 관찰자’는 지난해 6월부터 빵은 건강과 가족 간의 대화, 프랑스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홍보운동을 펴고 있다. 이 단체의 공동회장인 베르나르 발루이는 “식습관이 변하고 있다”며 “10대들은 아침을 거르고 사람들은 빵집에 들르기에는 너무 바쁘거나 너무 늦게까지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법으로 바게트 품질 관리
프랑스빵 전문가인 스티븐 캐플란에 따르면 프랑스 바게트는 두 단계의 쇠락기를 맞았다. 1920년 천연발효종으로 만든 반죽으로 느리게 빵을 만드는 대신 빠른 발효가 가능한 이스트를 사용하면서 맛이 떨어졌고, 1960년대 기계화로 인해 빵의 맛과 향이 부족해졌다. 맛의 쇠락은 1980년대 이후 역전됐다. 전설적인 제빵사 리오넬 푸아란이 천연발효종을 이용한 반죽과 우드 오븐에서 구워낸 것과 같은 전통방식을 대량생산에 결합시키면서 계기를 제공했고, 프랑스 정부도 1993년 ‘프랑스 전통 바게트’ 법을 제정해 바게트의 품질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로 ‘지팡이’라는 뜻의 바게트는 이 법에 따르면 오직 밀가루와 물, 발효종, 소금으로만 만들게 되어 있다. 이 황금률에서 대개는 밀가루의 종류에 관련되어 약간의 일탈이 허용되지만 첨가제는 금지된다. 이런 방식으로 만든 전통 바게트는 전체 제빵 시장의 75%를 점하고 있는 대량생산된 일반 바게트보다는 더 비싸다.

파리에서는 매년 바게트 장인들의 경연대회가 열려 여기서 최고의 장인으로 뽑힌 사람은 1년간 매일 아침 40개의 바게트를 엘리제궁(대통령궁)에 제공하게 된다. 지난 3월에 열린 제20회 대회에서는 파리 14구의 빵집 ‘오 델리스 뒤 팔레’의 주인인 24세의 안토니오 테이세이라가 최고의 바게트 장인으로 뽑혔다. 그는 새벽 3시부터 일을 시작해 하루에 약 1500개의 바게트를 만든다고 했다. 그는 “우리만의 제조법이 있긴 하지만 진짜 비법은 일에 대한 애정이다”라며 “매우 고된 일이라 동기 부여가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전통 빵의 쇠락은 사실 직접 손으로 요리하는 전통적인 음식문화의 쇠퇴와 맞물려 있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들이 직접 요리하지 않고, 즉석 냉동식품을 해동해 내놓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현상은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냉동된 반죽을 구워 내놓는 빵과 다를 바 없다. 지난해 6월 프랑스 의회는 냉동식품을 비롯한 즉석식품을 조리해 음식으로 내놓는 식당에 대해 ‘레스토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주영재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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