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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은 살아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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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원안에서 빠진‘금품수수 공직자 대가성과 직무 관련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처벌’핵심 내용 다시 넣기로

‘관피아’(관료+마피아)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일명 김영란법)이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영원히 묻힐 뻔했던 ‘김영란법’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김영란법’은 잃어버렸던 무기도 다시 장착했다. ‘김영란법’ 원안에는 있었지만 정부 논의과정에서 빠졌던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한 공직자는 대가성과 직무 관련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처벌한다’는 내용을 다시 법안에 넣기로 했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1년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공직자들의 부패행위를 일으키는 원인을 사전에 제거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법안이다.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의 모태가 된 ‘공직자의 사익추구 및 청탁수수금지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 모습. | 국민권익위원회 제공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의 모태가 된 ‘공직자의 사익추구 및 청탁수수금지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 모습. | 국민권익위원회 제공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은 판사 시절 지인들로부터 각종 청탁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것을 직접 경험한 김 전 위원장은 “청탁이 부패행위의 근본 원인이다. 부패행위로 연결되는 그 원인을 제거하면 공직자들의 부정한 직무 수행을 막을 수 있다”며 공직자들에 대한 ‘부정한 영향력 행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이 법안을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정부 반발로 ‘누더기’ 됐던 부정청탁금지법
하지만 법무부, 안전행정부 등 다른 부처의 반발로 처벌요건이 완화된 정부안이 만들어졌고, 지난해 7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된 이 법안은 누더기가 됐는데도 10개월여 동안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 이후 ‘김영란법’ 제정 여론이 비등해지자 이 법안의 국회 처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세월호’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세월호 참사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김영란법’을 적용해 봤다.

우선 이 법안의 핵심은 대가성에 관계없이 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선박안전기술공단 부산지부 검사원은 선박안전 검사업무를 하면서 해운업체들로부터 금품을 받았다. 또한 항만에서 선박의 입출항을 돕는 한국예선업협동조합은 해양수산부 항만운영과 공무원에게 명절 때 선물과 향응을 제공했고, 공무원 개인의 외상값까지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이렇게 공직자가 금품을 수수할 경우 대가성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이 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여기서 말하는 금품은 금전·유가증권·물품과 부동산 등의 사용권, 골프 등의 접대와 향응 또는 교통·숙박 등의 편의 제공 등이 총망라된다. ‘김영란법’ 제8조 1항에 따르면 공직자는 자신의 직무 관련 또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통하여 어느 누구로부터도 금품을 받을 수 없도록 돼 있다. 정부나 공기업의 부서 내 회식에서 제3자가 참가해 회식비용을 내는 일은 앞으로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지난 1월 11일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지난 1월 11일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현행법(형법)에는 공직자가 금품을 수수했을 경우라도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 수뢰죄로 처벌할 수 없다. 그동안 각종 ‘스폰서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뇌물로 보이는 돈을 받고도 재판에서 무죄를 받는 사례가 많았다. 검찰 수사에서 증인이 공직자에게 뇌물을 줬다고 인정했어도 재판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면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한 죄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이 제정되면 법의 사각지대를 훨씬 줄일 수 있게 된다. 권익위 관계자는 “그동안의 사례를 보면 뇌물을 받은 공직자도 돈은 받았지만 직무와 관련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럴 경우 유죄를 입증하지 못할 뿐이지 무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의 국민정서”라고 말했다.

법안 통과 땐 관피아 막는 데도 도움될 듯
또 이 법이 시행되면 국회의원도 함부로 업계나 이익단체의 청탁을 들어줄 수 없게 된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가 수십억원을 사용해 해운법 개정 등 각종 이권 획득을 위해 정치권에 로비를 했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실제 일부 국회의원들은 한국선주협회의 지원으로 수년간 해외시찰을 다녀와 업계에 유리한 입법을 해주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만약 이런 로비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부정청탁에 해당돼 형벌 또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해당사자가 제3자를 통해 부정청탁하는 경우 이해당사자에게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공직자가 부정청탁을 받고 그에 따라 직무를 수행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또 이 법이 시행됐다면 세모그룹 출신인 이용욱 전 해경 정보수사국장이 세월호 침몰 사고 수사를 지휘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공직자가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 수행을 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공직자는 자신 또는 친족 등과 이해관계가 있는 업무에 대해 회피를 신청해야 한다.(제11조 제1항, 제3항) 예를 들어 고위공직자가 특채될 경우 재직했던 민간업체, 단체 등과 그 업무내용이나 고문 및 자문 등의 내용을 이해충돌방지담당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공직자가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전관예우 등 이른바 ‘관피아’의 적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해수부 산하기관은 해양환경관리공단 등 14곳이 있으며, 이 중 해수부 출신 기관장이 11곳에 달한다. 또한 해양 관련 각 업종을 대표하는 민간협회도 관료 출신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이 대정부 로비활동 창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법안(제5조 1항)은 공직자가 수행하는 직무에 대해 직접 또는 연고관계나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제3자를 통한 부정청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사인(민간인)이 기관 또는 협회를 위해 공직자에게 부정청탁을 했다면 2000만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부산해양경찰서 소속 한 정보관이 검찰이 한국선급 부산본부와 임직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한다는 정보를 한국선급 법무팀장에게 사전에 유출한 것은 직무상 비밀이용 금지 위반이 된다. 공직자가 직무수행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사적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법안은 규정하고 있다.

이 법안은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위임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민간인에게도 공직자와 똑같이 적용된다는 특징도 있다. 예를 들어 정부로부터 선박안전검사 위임을 받은 한국선급 등이 의뢰인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면, 한국선급 관계자는 공직자에 준하는 처벌을 받게 된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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