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3·11 이후 3년, 일본은 벌써 망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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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비극 생생한데 아베 정권은 무역적자 핑계로 원전 재가동 밀어붙이고 정·관·재 원전마피아들은 여전히 건재

무려 300명이 넘는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를 엄청난 분노와 슬픔에 빠뜨린 것은 물론, 가까운 일본 사회에도 적지않은 충격을 던졌다. 30여명의 주한특파원이 있는 일본 언론은 서울지국 보도에 만족하지 않았다. NHK,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주요 언론은 특별취재팀을 보내 참사 현장을 일본 시민들의 안방에 전달하였다. 3년 전 3·11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데다 해난사고가 많았던 일본은 참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특히 세월호가 1994년 일본에서 건조되어 가고시마-오키나와 노선을 운항했던 여객선이라 더욱 주목을 끌었다. 일본 언론은 이번 대참사를 무책임의 연쇄구조로 분석하고 있다. 무리한 선실 증축으로 인한 복원성 상실, 탐욕스런 이윤 극대화를 위한 화물 과적, 무책임한 선장과 미숙한 항해사와 조타수 등의 무책임이 연쇄작용을 일으키면서 대형 참사를 불렀다는 것이다.

지난 3월 8일,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 유가족 200여명이 대지진 3주기를 맞아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의 해변가에 모여 손을 맞잡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지난 3월 8일,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 유가족 200여명이 대지진 3주기를 맞아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의 해변가에 모여 손을 맞잡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유권자들 위험 알면서도 ‘탈원전’ 외면
무려 2만여명이 사망, 실종된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은 전후 일본이 겪은 최대의 참사였다. 발생 당시의 죽음, 폐허, 오염, 절망, 고통의 현실은 두말할 것도 없고, 후쿠시마 원자로 1·2기 폭발과 그로 인한 방사능 피해는 현재와 미래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진 피해자들은 방사능 오염으로 정든 고향에 되돌아갈 수 없게 됐고, 오랜 가설주택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쳤다. 추가 대지진과 쓰나미 가능성에 일본인들은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불안한 일상을 강요받고 있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도쿄에서 수직 직하 대지진(충격이 좌우 수평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상하 수직으로 전달돼 피해가 일반 지진보다 훨씬 큰 지진) 발생확률은 100%이며, 실제로 도쿄가 뉴욕보다 17배, 파리보다 28배나 위험한 도시라고 주장하는 책까지 나왔다. 1944년, 1946년에 각각 1251명과 1330명의 사망자를 냈던 오사카 주변지역 대지진은 앞으로 수십년 내 재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후쿠시마의 비극이 벌써 잊혀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베 정권은 석유와 가스 등 화석연료 수입으로 인한 막대한 무역적자 때문에 원자로 재가동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대외 무역적자는 2011년 이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해 2013년엔 그 규모가 11.5조 엔(약 120조원)에 달했다. 세계 유일의 피폭국가이자 후쿠시마 사태를 겪은 일본은 무역적자를 해소하고자 UAE(아랍에미리트연합), 베트남, 터키 등지에 원자로 수출을 강행하고 있다. 대형 방사능 피해를 겪은 일본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터키 시민단체가 맹렬히 항의했을 정도다.

국민 안전보다 에너지 수급을 더욱 중시하는 아베 정권은 지난 2월 검토된 에너지 기본계획에서 원자력을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설정하고 있다. 제조비용이 싸고,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원자로 재가동을 강조하고 있다. 2월 9일 실시된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원자력 폐지를 주창한 민주당의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 자민당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공동전선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도쿄도 지역경제 활성화, 방재시스템 구축, 고용과 복지가 지방선거의 중요 쟁점이 된 반면, 단일 쟁점이었던 원자력 제로는 하루하루 생활이 힘든 유권자에게 거의 먹혀들지 못했다. 아베 정권의 원자로 재가동이 더욱 힘을 얻게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일본의 관피아(관료+마피아) 실태는 한국 내 정·관계 유착보다 훨씬 심하다. 전전 천황의 관료제, 전후 개혁에서 생존한 일본 관료제는 고도성장기를 거쳐 자민당 지배, 대기업 연합과 굳은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정·관계 유착과 낙하산 인사(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의미로 일본에서 天下り·아마쿠다리라고 부른다)는 일상적인 관행이 되었다. 1990년대 장기불황과 관료제 부패상이 드러나면서 행·재정개혁, 성·청개편, 규제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오랜 유착관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태는 일본의 원자력 마피아가 낳은 일본판 ‘세월호’ 비극이었다. 2차대전 시 유일한 피폭국이었지만, 불과 10년 만에 일본의 원자력 개발은 본격화되었다. 미국 정부와 요미우리신문의 합작품으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미명하에 되살아난 일본의 원자력은 50년 넘도록 강고한 이권 연합체로 자리잡았다.

일본의 원자력 정책은 환경단체나 매스컴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었고, 국민들이 공개적으로 참여하는 논의 대상도 아닌 중대한 ‘국책사업’으로 자리잡았다. 지진, 쓰나미 등 세계적인 재난국 일본에서 무려 68기나 되는 원자로가 유지, 가동되었다. 원자로의 안전을 담당하는 원자력안전보안원은 원자력산업을 진흥시키는 경제산업성 산하에 있었다. 규제와 진흥, 원자로 가동과 안전 감시가 동일한 관료조직 내에 있었고, 연간 5조원에 달하는 원자력 예산을 정치가, 관료, 전력회사, 관련 업체, 지자체, 학계, 매스컴, 기술자그룹들이 나눠먹고 있었다. 2011년 5월 후쿠시마를 방문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단이 쓰나미 위험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전 추진파 일색인 정부 관료 출신 안전보안원장은 이를 무시하였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로 폭발 후 일본 시민의 원자력에 대한 인식은 크게 바뀌었다. 당시 간 나오토 민주당 총리는 원자로 재가동과 신규 건설을 포기하고, 202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1.1%에서 20%로 늘릴 것을 제안하였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일본 국민의 70%가 원전 폐지에 찬성한 점을 지적하면서 2050년까지 원전 탈피를 주장하였다. 시민단체의 원전반대 운동도 이어졌다. 2011년 7월 원전 폐지 전국변호사회는 시즈오카와 규슈 지역에서 원자로 재가동 중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하였고, 도쿄와 후쿠시마 등지에서 수만명이 모여서 원자력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일본 정부는 원자력 진흥과 규제를 분리하고, 안전을 감시하는 규제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하였다.

자본우위-참사-망각-재발 악순환 우려
그러나 3년 3개월이 지난 지금, 일본 사회는 또다시 망각의 위기에 접어들고 있다. 엄청난 에너지 적자와 급등한 전기료는 원자로 재가동을 부추기고 있다. 원자력 발전을 맡고 있는 전력회사와 종업원들은 경영난으로 큰 고통을 겪으면서 재가동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자로 기업 연합체인 일본원자력발전은 지난 5월 20일 이바라키현 도카이 제2원자로 재가동 적합 여부를 심사해 달라는 요청서를 원자력규제위원회에 제출하였다. 해당지역 단체장은 신중하지만 지역주민의 의견은 엇갈린다. 자식 세대에게 원자로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입장과 매출이 3할이나 감소한 택시회사, 아들 취업을 걱정하는 부모들의 입장이 평행선을 긋고 있다.

아베 정권은 안전성이 확인된 원자로는 다시 재가동한다는 입장이다. 아베 내각에서 지난 4월 11일 각의결정한 중장기 에너지 기본계획은 원자력을 여전히 가장 중요한 기본 에너지로 설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원자력을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간주하면서 이미 민주당 정권이 내세운 원자력 제로와 완전히 결별한 상태이다. 크고 작은 지진이 만연한 일본은 지금처럼 방사능 폐기물을 지하에 매립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일본 정부의 발표는 후쿠시마 원자로 폭발사태의 트라우마가 점차 잊혀지면서 벌써 망각기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자아냈다.

한국 동해안에 면한 일본 후쿠이 원자로 3·4호기는 지하에 활성단층이 발견되면서 즉각 가동을 중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시민단체는 지방재판소에 운전정지 청구소송을 낸 바 있었다. 그러나 5월 21일 일본 정부는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안전심사에 합격한 원자로는 지자체와 상호간 의견을 조정한 뒤 재가동한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혔다.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또다른 대형 참사는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그것은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마찬가지다. 모든 참사는 귀중한 생명과 환경을 한꺼번에 앗아가버린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다. 참사 배후에는 사람보다 돈을 찾는 천민자본주의 논리가 깊이 뿌리박혀 있다. 인식과 제도를 바꾸어 대안적인 생활을 정착시키지 않는다면, 자본 우위→참사 발생→대증요법→망각과 재발은 또다시 거듭될 가능성이 높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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