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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레티코 ‘스페인 신계’를 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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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레티코의 2013~2014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신계로 불리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양강 구도를 깼기 때문이다.

스페인 프로축구에서 ‘신계’가 무너졌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5월 1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캄프 누에서 열린 2013~2014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38라운드에서 바르셀로나와 1-1로 비겨 이번 시즌 우승을 확정지었다. 적지에서 0-1로 뒤진 후반 4분 중앙수비수 디에구 고딘(28)이 짜릿한 동점골을 터뜨려 승점 1점을 더한 아틀레티코는 승점 90점을 기록해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이상 승점 87)를 따돌리고 통산 10번째 프리메라리가 정상에 올랐다. 18년 만의 짜릿한 우승이었다.

아틀레티코의 이번 우승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스페인에서 신계로 불리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양강 구도를 깼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0년을 돌아봤을 때 프리메라리가 우승은 레알 마드리드(3회)와 바르셀로나(6회)의 차지였다. 다른 팀이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03~2004시즌 발렌시아의 깜짝 우승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투자규모를 살펴보면 두 팀의 양강구도는 당연한 얘기다. 스페인 방송국 ‘프라임 타임 스포츠’의 발표에 따르면 2013~2014시즌을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각각 1억8300만 유로(약 2631억원)와 5700만 유로(약 820억원)를 썼다. 프리메라리가 20개 팀의 전체 이적료 지출액 3억8800만 유로(약 5820억원)에서 두 팀이 차지하는 비율이 62%에 달한다. 다른 팀들이 덤빌래야 덤빌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아틀레티코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 우승컵을 들어올린 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고 자화자찬한 게 어쩌면 당연할 지경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5월 18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뒤 선수단이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을 헹가래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5월 18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뒤 선수단이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을 헹가래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시메오네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12년만 해도 이런 결과를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한때 강등 후보로까지 손꼽혔던 터. 그는 선수단에 우승을 향한 DNA를 심었다. 현역 시절 데이비드 베컴을 막기 위해 침을 뱉은 일화로 유명한 그는 아틀레티코 선수 11명을 자신의 분신으로 만들었다. 거칠기 짝이 없는 시메오네 축구의 지향점은 전원 수비. 흔히 골잡이도 수비에 가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상 그러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틀레티코가 자랑하는 골잡이 디에구 코스타는 경기당 파울 1.8개를 기록해 팀내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철저히 수비에 가담했다. 최전방부터 적극적인 몸싸움과 태클로 상대를 괴롭히니 수비는 절로 탄탄해졌다. 시메오네가 부임하기 전 17경기에서 27골을 내줬던 아틀레티코 수비는 이후 9경기에서는 단 2골만을 내주는 통곡의 벽이 됐다. 이번 시즌에는 리그 최저 실점인 38경기에서 26실점으로 경기당 1골도 내주지 않았다.

우승 비결은 짠물 축구
흔히 화려한 축구는 구름 관중을 모으고 탄탄한 수비는 우승컵을 가져온다고 한다. 아틀레티코가 딱 그랬다. 시메오네 감독이 부임한 첫해 유로파리그에서 12연승을 달린 끝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더니 다음 시즌에는 17년 만에 코파델레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시즌 마지막 고비인 신계를 넘은 비결도 짠물 수비에 있었다. 화려한 개인기를 가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와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철저히 봉쇄하는 것은 기본, 아예 하프라인을 넘으면 거칠게 압박하면서 괴롭혔다. 송종국 MBC 해설위원은 “아틀레티코는 호날두와 메시 등 세계 최정상급 골잡이를 막아내는 교과서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긴다. 수비만 잘해선 이길 수 없다. 아틀레티코도 신계에 속한 두 팀과 비견할 수는 없지만 많은 골을 넣었다. 단, 골을 넣는 방식이 달랐다. 시메오네는 선수들이 골을 넣을 때도 실리를 찾았다. 축구통계전문 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에 따르면 아틀레티코의 시즌 볼 점유율은 47%에 불과했다.

점유율 축구의 상징인 바르셀로나(67.7%)나 레알 마드리드(58.8%)와 비교하면 공을 잡는 시간이 짧았다는 얘기다. 대신 확률이 높은 공격으로 승전가를 불렀다.

속공의 힘이다. 아틀레티코는 빠른 공수 전환으로 상대 수비가 자리를 잡기 전에 골문을 공략했다. 때로는 측면 수비까지 과감하게 공격에 가담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슈팅 기회를 만든다. 속공으로 얻어낸 골이 이번 시즌에만 8골. 페널티킥 득점(6골)도 대부분이 속공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아틀레티코의 또 다른 무기는 선수들의 약속된 움직임에서 나오는 프리킥과 코너킥 등의 세트피스 플레이다. 아틀레티코는 이번 시즌 세트피스로만 18골을 터뜨렸다. 팀 전체 득점인 77골에서 23%가 세트피스로 나왔다. 우승이 걸렸던 18일 바르셀로나전 득점도 세트피스 상황이었다. 0-1로 뒤진 후반 4분 중앙수비수 고딘이 가비가 올린 코너킥을 헤딩골로 만들었다.

여기에 이번 시즌 제2의 드로그바로 각광받은 코스타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번 시즌 슈팅(평균 3.1개)을 아꼈지만 27골을 넣었다. 만약 후반기 부상으로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호날두(31골)에게 넘긴 득점왕도 그의 몫이 될 수 있었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과 스페인이 코스타 차출을 놓고 다툰 배경이기도 하다.

성공의 그림자
성공에는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아틀레티코도 그렇다. 현지 언론은 아틀레티코의 성공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그 속살을 살펴보면 상처투성이라고 말한다. 우승을 노리는 과정에서 재정에 큰 손실을 입은 탓이다. 지난 1월 바르셀로나대학 조세 마리아 게이 교수는 아틀레티코의 총부채가 5억 유로(약 6991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부채가 많으면 차근차근 갚아나가겠지만, 수입의 90%가 인건비로 나가는 게 문제다. 스페인 정부가 세금 1억 유로(약 1398억원)를 유예해주지 않았다면 당장 파산했을 것이라는 게 게이 교수의 견해다.

전례도 있다. 꼭 10년 전인 2003~2004시즌 신계를 무너뜨렸던 또 다른 우승팀 발렌시아가 이후 재정 파탄을 견디지 못한 끝에 싱가포르 출신의 갑부 피터 림의 손에 넘어갔다. 아틀레티코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올 여름 초일류로 거듭난 선수들을 내보내는 수밖에 없다. 아틀레티코 선수 7명이 프리메라리가 사무국이 선정한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렸기에 이적료 수입을 올릴 적기이기도 하다. 특히 코스타는 이미 첼시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결국 올 여름에 스페인 축구의 향방이 걸린 셈이다. 스페인 팬들은 과거 페르난도 토레스(첼시)·세르히오 아구에로(맨체스터 시티)·라다멜 팔카오(AS모나코) 등의 특급 골잡이들을 매시즌 팔았지만 그 공백을 훌륭히 메웠던 아틀레티코의 마법이 재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황민국 경향신문 체육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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