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디음악 지평 넓힌 쌍두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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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인디음악 20년을 바라보는 시점이다. 그 한가운데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메이저로 발돋움하려고 한 파스텔뮤직의 이응민 대표와 붕가붕가레코드의 고건혁 대표를 만났다.

펑크록 밴드 크라잉 넛은 1996년 “닥쳐”를 연발하며 넥타이 부대까지 홍대로 불러들였다. 노브레인은 줄곧 울부짖음으로 청춘의 난폭한 전진을 노래했다. 펑크의 시작, 인디음악의 시작이었다. 델리스파이스와 언니네 이발관을 제외하곤 펑크와 헤비메탈이 점령하던 인디음악계에 수상한 뮤지션들이 등장했다. 발원지는 2004년부터 인디레이블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파스텔뮤직과 이듬해 생긴 붕가붕가레코드였다.

두 레이블은 지난 10년 동안 인디음악의 장르적 지평을 넓히고 인디와 메이저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등 인디음악의 제2 전성기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붕가붕가레코드 소속이었던 장기하와 얼굴들은 2008년 ‘싸구려 커피’로 대성공을 거뒀다. 밴드는 홍대 클럽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주류 가수들처럼 TV와 신문 등 매스미디어에 자주 얼굴을 노출했다. 대형 연예기획사 소속 뮤지션 못지않은 인기였다. 더 이상 인디음악은 어두컴컴한 홍대 클럽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응민 파스텔뮤직 대표(왼쪽)와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 김정근 기자

이응민 파스텔뮤직 대표(왼쪽)와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 김정근 기자

홈레코딩에 가내수공업으로 음반을 제작하던 붕가붕가레코드는 이때 생긴 가시적인 수익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척박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10년을 버텼다. 최근에는 레이블 소속 뮤지션들의 곡으로 채운 10주년 기념 노래모음집 <믿거나 말거나>를 발매했다.

파스텔뮤직은 인디음악에 새로운 감수성을 이식했다. 2006년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귀여운 노랫말에 간질거리는 전자음이 돋보이는 댄스곡 ‘하와이안 커플’의 대중적 히트로 처음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요조, 타루, 한희정 등 ‘홍대 여신’이라 불리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다수 배출하며 강성 음악 일색이던 인디음악계에 변화를 몰고 왔다. 소소한 일상을 담은 노랫말과 아기자기한 사운드에 아이돌, 댄스음악계도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이 같은 접근방식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파스텔뮤직은 인디와 메이저의 경계에 서 있는 가장 대표적인 레이블로 꼽히게 되었다.

한국에서 인디 기준점은 방송활동 여부
얼추 인디음악 20년을 바라보는 시점이다. 그 한가운데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메이저로 발돋움하려고 한 파스텔뮤직의 이응민 대표와 붕가붕가레코드의 고건혁 대표를 최근 만났다. 한국 인디레이블의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이 땅에 진정 인디음악이 있긴 있는 건지 물었다. 대담은 인디음악의 사전적인 정의, 한국 음악시장의 특수성을 반영했을 때 새롭게 정의되는 인디음악의 개념을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산업적인 용어로 풀이하자면 인디는 세계 3대 음악기업으로 불리며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는 소니, 워너, 유니버설 뮤직그룹과 연관없이 활동하는 레이블과 뮤지션을 일컫는 말이다. 고건혁 대표는 “단순히 얼마나 많이 팔리느냐, 주류 음악이냐 아니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폴 매카트니에게 극찬을 받은 영국의 20대 싱어송라이터 아델도 인디레이블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소니, 워너, 유니버설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음악기업이 한국에 없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인디음악은 다시 규정되어야 한다.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하면 새로운 기준점이 되는 것은 방송활동 여부다.

이응민 대표는 아직도 한국에서는 방송활동만이 주요한 아티스트 홍보방식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사와 대형 연예기획사의 공고한 밀착관계가 구축되어 있어 이를 뚫고 들어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덧붙였다. 프로그램 섭외담당자를 움직일 수 있는 매니저를 고용하려면 한 달에만 1000만원 단위의 돈이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간혹 방송사 PD가 인디레이블의 뮤지션을 섭외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마저도 방송국 내부에서는 PD 개인의 일탈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대형 연예기획사의 제도화된 시스템 안에서 작곡가가 만들어 준 곡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곡을 쓰고 공연을 통해 팬과 직접 소통하는 싱어송라이터를 인디뮤지션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애매한 지점은 생긴다. 그렇다면 서태지와 유희열은 인디뮤지션인가 아닌가, 대형 연예기획사에 속해 있지만 자작곡으로 활동하는 일부 아이돌은 또 어떻게 볼 것이냐는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고건혁 대표는 이 질문에 뮤지션이 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 대표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싱어송라이터 지향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면서 본인 스스로 인디뮤지션으로 규정하면 그게 인디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작 붕가붕가레코드의 뮤지션들은 스스로를 인디뮤지션으로 규정하길 거부한다고 한다. 인디음악을 한다고 하면 퀄리티가 낮고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을 할 것이라는 일부 대중의 편견 탓이다. 레이블 소속 뮤지션의 의견을 반영해 붕가붕가레코드의 모든 앨범은 ‘대중음악 시리즈’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다. 고 대표는 “그렇다고 밖에 나가서 저희를 인디레이블이라고 소개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라며 웃었다.

붕가붕가레코드와 파스텔뮤직의 처음은 어땠을까. 출발은 가벼웠다. 파스텔뮤직은 2002년 10월 해외 음반 라이선스 업무를 하는 회사로 설립됐다. 직원 하나 없이 고시원에서 이응민 대표 혼자 시작했다. 이 대표는 “많은 돈을 대출받아서 한 일도 아니었고 의무감도 없었다”면서 “내 취향이 반영된 음악이 만들어지고 시기별로 하나씩 터져주는 뮤지션들이 계속 나와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하와이안 커플’은 각종 광고에 삽입되어 익숙해졌고 이는 휴대전화 벨소리, 컬러링, 미니홈피 배경음악 등으로 구매되며 수익을 냈다. 이후 요조, 타루 등 여성 싱어송라이터들까지 연달아 인기를 얻으면서 레이블은 기틀을 잡았다. 음악으로 생계수단을 삼는 소속 뮤지션들도 늘어났다. 현재 파스텔뮤직은 에피톤 프로젝트, 짙은, 캐스커 등 40여팀에 이르는 싱어송라이터군을 확보하고 있다.

서태지와 유희열은 인디 뮤지션인가
붕가붕가레코드는 2005년 서울대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던 고건혁 대표가 학교 친구들과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해보자는 제안에서 출발했다. 고 대표는 “당시 우리 음악이 좋다는 믿음은 있었다”면서 “그렇다고 잘 팔린다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돈을 안 들이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사무실 없이 패스트푸드점을 전전하며 기획회의를 하고, 컴퓨터 한 대에 스타킹을 씌운 마이크를 꽂은 채 노래를 불러 녹음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약했다. 자취방에서 수작업으로 음반을 찍은 것도 재고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소속 뮤지션들이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도록 음악 외에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을 허락하기도 했다.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 장기하와 얼굴들의 잇단 히트로 레이블은 규모가 커졌다. 앨범 제작도 가내수공업 방식을 벗어났다. 이제는 뮤지션들도 좋아서 하는 음악이 아니라 업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두 대표는 전업 뮤지션이 늘어난 지금이 위기라고 입을 모았다. 소속 뮤지션들의 방송활동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이들에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원을 보장해 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인디음악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인터넷 기술의 발달은 오히려 족쇄가 되었다. 현재 음원사이트들은 음반 단위가 아닌 개별곡 단위로 음원을 유통하고, 다운로드를 유도하는 방식이 아닌 월 몇천원의 이용료로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사실상 뮤지션에게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다.

수익이 날 수 있는 창구는 공연밖에 없다. 이응민 대표는 “공연이 유일한 수익원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뮤직페스티벌에도 쏠림현상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공연이 열리는 장소와 시기만 달리하고 비슷한 음악을 들려주는 페스티벌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관객들은 결국 이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서 “제살 깎아먹기가 되지 않도록 페스티벌 콘셉트에 차별화를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건혁 대표는 뮤지션의 자구책을 제시했다. 고 대표는 “미국에서는 공연 주관사들이 아예 뮤지션을 영입해 음반을 제작하는 형태도 등장했다”면서 “음반은 홍보용이고 진짜 수익은 공연을 통해서 얻는다는 인식이 잡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미 시스터즈라는 댄서를 동원했던 장기하와 얼굴들을 언급하며 “공연은 청각적이면서 동시에 시각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무대에서 관객들을 즐겁게 해줄 만한 부가요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효재 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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