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수서발 KTX도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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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KTX 기장 양성기관을 이원화해 시설관리기관에서도 열차 운전 책임지는 기관사 키우겠다는 방침. 이는 문화체육부에서 의사 면허 발급하는 격.”

세월호 침몰사고는 대한민국이 지향했던 사회의 결과물이다. 이제 다음 차례는 어디인가? 불특정 다수가 언제든지 사지로 내몰릴 수 있는 환경이 곳곳에 만들어지는 현실을 보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처하는 운영회사와 정부 당국의 모습을 보면 평범한 시민들이 믿을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는 것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대형 철도사고가 나거나 원자력발전소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시민들의 생사는 전적으로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모든 공공분야는 그 서비스의 주체가 민간이든 정부든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한국 사회가 만들어온 체제는 수익과 효율성만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다른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로 만들었다.

깨진 유리창을 임시방편으로 투명 테이프로 보수한 채 운행되는 코레일 무궁화호. | 철도노조 제공

깨진 유리창을 임시방편으로 투명 테이프로 보수한 채 운행되는 코레일 무궁화호. | 철도노조 제공

영국 철도 민영화의 문제를 고발한 <탈선>의 저자 앤드루 머리가 인터뷰한 선로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만약 2명의 현장 감독이 있는데, 한 사람은 승객을 우선시해서 1년에 열차를 대여섯 번 멈춰 세우지만 다른 한 사람은 강심장이어서 그럴 때마다 열차를 통과시킨다고 해봐요. 그럼 연말에 성과급 받고 봉급 더 오르는 사람이 누굴 거 같아요? 자기 돈 벌려고 모험을 감행하는 녀석들이 천직을 얻은 셈이죠.”

위와 같은 이치로 평소에 이상이 없다는 이유로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노력하거나, 늦은 운항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한 운항을 감행하는 선박운영회사의 직원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는 위험을 상시적으로 감수해야 한다.

무리한 1인 승무 비상시 속수무책
현재 코레일에서는 2인승으로 운영되는 중앙선 화물열차에 대해 1인 승무를 추진하는데, 이를 통해 효율화시키는 인력이 28명이라고 한다. 철도노조에서는 신호체계와 선로의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 무리한 1인 승무 도입을 반대하고 있으나 효율화 실적을 내야 하는 코레일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중앙선 화물열차를 기관사 혼자 몰아도 평상시에는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수십 량의 화물차를 연결한 기관차가 급경사 언덕길에서 이상이 생기고 브레이크 기능을 감당하는 주공기가 누설되는 등 생각하기 싫은 비상 상황이 발생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관제실의 통제에 응답하고 기관차 고장을 처리하고 연결된 화차의 상태까지 단 한 명의 기관사가 점검해야 한다면 제대로 안전 확보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자동차에 각종 안전장치를 장착할 경우 차 값을 더 주어야 하듯 안전과 효율은 나란히 갈 수 없다. 사람과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 안전에 관한 비용은 경영자의 성과로 생색내기도 쉽지 않고 오랫동안 사고가 없을 경우에는 괜한 돈을 들였다는 생각도 갖게 한다. 그러나 유사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비용절감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한 번도 에어백을 쓴 일이 없으니 새로 교체할 때는 에어백이 장착되지 않은 차를 사서 그만큼 비용을 줄이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코레일은 내구연한이 다한 낡은 차량 교체를 위해 2조5000억원이라는 비용을 들였는데 이 돈은 지난해 철도민영화 논란 속에 비난받았던 막대한 코레일 적자의 한 부분이었다.

안전한 철도를 위해 새로운 차량을 구입하는 일이 비효율과 적자 양산이라면 시민들은 코레일의 경영정상화를 위해서 낡고 위험한 객차를 이용해야 하는 것인가? 지금 정부가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루겠다고 공공부문에서 추진하는 일 중의 상당수는 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정상화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비용을 줄이라는 지상명령이라면, 공기업이 효율화될수록 시민들은 사지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은 정부나 공기업이 아니라 시민 각자가 책임지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수백명의 생명이 달린 일에는 아주 작은 이상에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상하는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 항공기나 열차, 선박 등의 승무원은 사고 발생 시 몸이 무조건 반사할 수 있을 정도로 응급 대처 매뉴얼을 훈련해야 한다. 또한 평상시에도 완벽한 정비와 안전 관련 조치를 정확하게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대충 관행과 편법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어떤가? 화물을 결박하는 로프를 규정대로 강력하게 체결하지 않거나 일부만 체결하고 움직이는 일이 허다하다. 컨테이너를 고정하는 장치가 있음에도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도 별다른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규정대로 할 경우 시간과 노력을 더 들여야 하는데 굳이 그런 수고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이것이 관행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무지한 탁상정책이 끔찍한 결과 낳아
한국 사회가 안전 문제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 대형 사고는 수서발 KTX에서 날 가능성이 크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28일 KTX 기장 양성기관을 이원화해 시설공단에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십수년간 철도 분야를 공부해온 입장에서 시설관리기관이 열차 운전을 책임지는 기관사를 양성한다는 소리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의사 면허를 발급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국토부가 추진하는 수서발 KTX 분리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나섰던 산하기관에 새로운 기구가 생기고 이것을 책임질 관리직 자리들이 늘어나는 것이 창조경제이고 일자리 창출인가? 동일노선에서 서로 다른 운영기관이 경쟁하고 기관사 양성조차 비전문 신생기구가 맡게 한다는 계획 속에서 안전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토부가 밝힌 이유 중의 하나는 코레일이 담당하고 있는 기관사 양성이 노조의 파업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전을 노무관리의 하위범주로 취급하는 관료들이 자리 잡고 있는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끔찍할 따름이다. 열차 운전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국토부 철도 정책 담당자들은 시뮬레이터 교육과 시험을 통한 면허 발급만 되면 고속철도를 운전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고속열차 운전을 기능적인 면으로만 이해하는 전형적인 책상머리 정책이다. 초기의 수서발 KTX는 운전 경력이 확보된 코레일 출신 기관사들이 담당하겠지만 제2 양성기관이 발급한 면허를 취득한 무경력 기관사들이 다량 배출될 경우 이들이 열차 안전의 최일선 책임자가 된다.

KTX 기장이 되기 위해서는 일반 열차에서 상당기간 기관사 경력을 쌓아야 한다. 열차 운전 기능이야 시뮬레이터 교육을 통해서도 습득할 수 있지만 실제 열차 운전은 컴퓨터로 입력된 상황을 뛰어넘는 복잡한 현실이다. 때문에 장기간의 운전 경력을 통해 배우는 여러 가지 상황 대처법이나 고장에 대한 조치, 신호와 선로에 대한 숙달 등 하루 아침에 확보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노하우가 필수적이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KTX 기장을 단순히 면허를 발급하면 되는 인력으로 간주하고 제2 양성기관을 만들어 수서발 KTX 운영인력으로 배출하겠다는 발상은 국토부가 철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안전 불감증에 따른 인재는 갑자기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부 정책에서, 기업 관행에서,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조금씩 쌓였다가 주기적으로 폭발한다. 현재 관료들의 책상머리에서 추진되는 정책의 결과가 몇 년 후에는 시민들의 소중한 생명을 위협하는 끔찍한 흉기가 될 수 있다.

국토부는 제2의 KTX 기장 양성기관 설치를 위해 50억원을 책정하고 2015년 예산에 반영하여 기획재정부에 제출하겠다고 한다. 틈만 나면 문어발처럼 산하기관을 늘려 몸집을 키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괴물들에게 누군가는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정부와 국회에 부탁하건대 이 험한 세상, 서민들은 어떻게든지 생활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제발 생존은 할 수 있게 해 달라.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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