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배달하는 방학동의 ‘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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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고 며칠이 지났을 무렵,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우체부였다.

“안녕하세요! 이웃이 되신 것을 환영도 하고, 선생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알아도 볼 겸 들렀습니다. 제게 선생님의 스케줄 표를 복사해 주시겠습니까? 집을 비우시는 동안 우편물을 따로 모아두었다가, 선생님이 댁에 계실 때 한꺼번에 갖다 드리겠습니다.”

“그냥 되는 대로 우편함에 넣어주세요.”

“우편함에 가득 쌓인 우편물은 지나가는 도둑을 부르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우편물만 우편함에 넣고 큰 우편물은 안 보이도록 현관문 아래로 밀어 넣겠습니다. 우편물이 많아 더 이상 밀어 넣을 수 없으면 선생님이 돌아오시는 날까지 제가 보관하겠습니다.”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샌번의 책 <우체부 프레드>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남의 집 안전을 주인보다 더 생각하는 우체부라니…, 믿기지 않겠지만 주인공 프레드(실명은 프레드 시어)는 실제 인물이다.

동네 할머니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서울도봉우체국 최덕보 집배원. 최 집배원의 꿈은 퇴직 후에도 홀몸 노인들을 보살피며 사는 것이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동네 할머니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서울도봉우체국 최덕보 집배원. 최 집배원의 꿈은 퇴직 후에도 홀몸 노인들을 보살피며 사는 것이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프레드의 헌신적인 서비스는 끝이 없다. 택배사가 잘못 배달한 소포를 보면 어떻게든 주인을 찾아주는가 하면, 비번 일에도 마을을 둘러보며 주민들의 안부를 묻는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우편배달 업무를 아주 특별한 일로 만든 우체부. 프레드는 우편물만 배달한 것이 아니라 감동까지 배달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그를 닮고 싶은 인물로 꼽고 있으며, 기업들은 앞다퉈 ‘프레드상’을 제정해 헌신적인 직원들을 시상하고 있다.

1만5000여명에 달하는 한국의 집배원들 중에도 ‘프레드’들이 많이 있다. 서울도봉우체국 최덕보 집배원(53)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집배원 생활 16년차인 그는 어려서 산사태로 인해 척추를 다쳤다. 치료를 제대로 못 받아 후천적 척추기형이라는 장애가 있지만 그는 직장에선 조율사로, 동네 주민들에겐 천사로 통한다.

옛날보다 복지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그의 눈엔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이웃들이 너무 많다. 홀로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빵 하나, 요구르트 하나, 계란 하나, 휴지 한 통에도 고마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보면 지나칠 수 없어 세수도 시켜드리고 머리도 감겨드린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하소연을 들어주다 보면 하루해가 짧다. 최 집배원이 한두 시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이유다.

일과 중에 해결 못한 일은 주말에 동료들과 함께 해결한다. 집배원 봉사단체인 ‘스마일 봉사단’ 단원으로 방학동, 미아동 일대의 고아원이나 독거노인 요양시설도 찾는다. 십시일반 거둔 회비로 홀몸 노인들의 목욕, 세탁, 청소를 돕고 장판 교체, 도배 등 집수리도 해드린다. 여름엔 음식을 장만해 대접하고 겨울엔 연탄이나 쌀 등 생필품을 전달한다. 형제처럼 가까워진 주민들의 결혼, 부고, 입학 등 경조사도 일일이 챙긴다. 몸도 불편한 박봉의 집배원이 굳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이 참 간결하다. “아주 보잘 것 없는 일인데요 뭘.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가진 게 있으면 나누는 게 당연하잖아요.”

지난 4월 21일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장. 교수, 과학자, 박사, CEO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90여명의 수상자들 사이에 왜소한 체구의 집배원 한 사람이 끼어 있었다. 서울 방학동의 ‘프레드’ 최덕보씨였다. 그는 이날 평범한 우편배달 일을 아주 특별한 일로 만든 공로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퇴직하면 작은 집을 한 칸 마련해서 갈 곳 없는 어른들을 모시며 살고 싶어요.”

그의 아름다운 소망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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