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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어마무시한 개발공약 재원마련 방안엔 ‘말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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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뱃길·한강백사장 등 오세훈 전 시장 때 사업타당성 없어 중단된 사업 다시 꺼내고, 동부간선도로 일부 지하화 등 핵심 공약사업 천문학적 재원 어떻게 할지 묵묵부답

서울에 개발 만능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고 있는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을 통해서다. 정 후보는 현재 새누리당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서울시장 후보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정 후보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월 31일 정 후보는 비전선포식을 갖고 ‘33한 서울 88한 경제만들기’ 구상을 발표했다. ‘안전’ ‘친환경’ ‘일자리’를 키워드로 잡고, ‘사다리’ ‘일자리’ ‘울타리’ 등 복지의 3축을 달성해 ‘33한 서울’을 만들겠다는 약속이었다. 그 구체화 전략으로 내건 ‘88한 경제’의 내용은 개발공약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개발공약들 중에는 오세훈 전 시장 때 사업 타당성 등의 이유로 중도하차한 개발공약들도 제시돼 논란을 빚고 있다. 사업 타당성을 이유로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7000억원 규모의 서해뱃길 사업과 환경적 요인으로 오세훈 전 시장 때 시도됐다 중단된 뚝섬, 여의도, 광나루, 반포 백사장 만들기 사업이 그것이다. 

3월 2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서울 남산 백범광장 김구선생의 동상 앞에서 가진 서울시장 출마선언 기자회견도중 어린시절 가족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 서성일 기자

3월 2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서울 남산 백범광장 김구선생의 동상 앞에서 가진 서울시장 출마선언 기자회견도중 어린시절 가족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이들 개발사업은 오세훈 전 시장 때 경제성과 안전성에 늘 물음표가 찍혔던 사업이었다. 정 후보는 각종 개발공약을 제시하고 있지만, 여기에 대한 재원대책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정 후보 측에 공약에 대한 예산 소요액 추정이나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 문의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 재정 전문가에게 정 후보 공약에 소요될 예산의 규모를 물었지만, “공약이 너무 막연해 현재로서는 예산 소요액을 추정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 취약지구인 강북개발에 초점
정 후보는 오세훈 전 시장의 개발사업을 차용한 데 이어 강북 개발공약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새누리당 취약지구인 강북만 잡으면 이길 수 있다는 계산 아래 강북에 대한 대대적인 개발공약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88한 경제’의 8가지 주제 중 맨 앞에 놓인 제1주제도 ‘활기찬 강북 만들기’다. 그 아래 각종 장밋빛 개발공약들이 펼쳐져 있다.

선거에서 개발공약은 유권자의 관심을 끄는 데 유효한 수단이다. 기본적으로 개발을 싫어할 유권자는 없다.

그러나 정 후보의 개발공약을 뜯어보면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게 되는 공약들이 적잖이 눈에 띈다.

예산에 대한 물음표가 달려 있는 공약의 대표적 사례는 ‘동부간선도로 일부 지하화’ 사업이다. ‘동부간선도로 일부 지하화’는 정 후보가 64개 전략과제 중 첫 번째로 꼽을 만큼 역점을 두고 있다. 원래 오세훈 전 시장 때 ‘뉴스마트웨이’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에서 검토했던 사업이었다. 그러나 1조50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라 재원 여건상 추진하지 못했다. 서울시 한 해 예산은 약 24조원인데, 한 해 예산의 5%에 맞먹는 규모를 ‘동부간선도로 일부 지하화’ 사업에 쏟아부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간 서울시에서는 일부를 지원하고, 일부는 민자사업으로 추진한 후 통행료를 받는 방안도 검토했다. 그러나 요금을 내지 않고 다니던 길에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고, 또다시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라 주민들에게 요금을 걷는다면 주민들 반발이 불 보듯 뻔했다.

정 후보는 삼키기엔 너무 뜨거운 감자였던 ‘동부간선도로 일부 지하화’를 과감히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승부수를 던진 격인데, 정작 정 후보는 사업비 조달에 대한 구체적 재원 마련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창동 차량기지 이전 부지에 공항터미널과 복합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은 지역 특성에 대한 세밀한 고려나 이해 없이 개발만을 앞세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공약은 정 후보가 ‘동부 간선도로 일부 지하화’에 이어 두 번째로 제시하고 있는 공약이다. 창동 차량기지를 개발하는 것 또한 이 지역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다. 그러나 그 지역에 공항터미널과 삼성동 코엑스와 같은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개발이 지역 주민들의 실제 삶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역특수성ㆍ실현 가능성 고려 안 해
강남과 강북의 소득수준 차이는 크다. 그런 만큼 강남의 ‘코엑스’ 개발 모델을 강북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창동 차량기지 개발에 영향을 받는 구는 도봉구, 성북구, 강북구, 노원구다. 지역 주민들의 소득수준은 각 지역의 지방세 수익인 자체조달수익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25개구 중 노원구는 23위, 도봉구는 21위, 성북구는 17위, 강북구는 16위로 모두 소득수준이 낮다. ‘소비’보다는 ‘소득 증대’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배경이다.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창동 차량기지 터를 활용하는 방안을 두고 이 지역 주민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만약, 동북권 지역에 규모가 큰 공공용지가 확보돼 새롭게 개발할 수 있다면 어떤 곳으로 활용되길 바라십니까”라는 질문에 4개구 지역의 평균 33%의 주민이 연구개발단지·디지털산업단지·아파트형산업단지 등 산업단지가 조성되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 대규모 녹지 생태공원(25.8%)을 바란다는 응답이 그 뒤를 이었고, 복합상업시설을 바란다는 응답은 18.1%에 그쳤다. 조사를 진행한 이 교수는 “서울 동북권의 인구가 350만명이고 경기 북부까지 합하면 500만이다. 이쪽이 소득수준이 낮은 낙후지역인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이 가장 중요하다. 일자리 창출을 하려면 산업을 유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3월 21일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과 정몽준 서울시장 예비후보(왼쪽)가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개관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3월 21일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과 정몽준 서울시장 예비후보(왼쪽)가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개관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산업단지가 아닌 복합상업시설이 들어설 경우, 지역의 골목상권이 위협을 받아 지역경제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 교수는 “대형 자본의 상업 기능이 들어오게 되면 골목상권이나 기존 상권이 망하게 될 수 있다. 이 지역은 상업 기능은 이미 충족돼 있고, 업무 기능이 부족하다”면서 “상업시설이 들어오는 것이 과연 지역 발전에 좋을까. 잘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법 때문에 추진할 수 없는 정책도 개발공약으로 제시했다. 은평-강북-도봉 등 북한산벨트에 친환경 관광특구를 지정하겠다는 공약이다. 북한산에 친환경 관광특구를 만들겠다는 공약은 선거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왔다는 것이 서울시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관광특구는 관광진흥법에 따라 지정되는 만큼 북한산벨트 관광특구 지정은 시장의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현재 서울에는 5개의 관광특구가 지정돼 있다. 이태원, 명동·남대문·북창동·다동·무교동, 동대문패션타운, 종로·청계, 잠실 5개 지역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관광특구 중 산은 ‘당연히’ 없다”고 말했다.

관광진흥법에 따르면 관광특구 지정요건은 꽤 까다롭다. 관광안내시설, 공공편익시설, 숙박시설이 갖춰져야 하는데,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더 까다롭다. 전기시설·통신시설·상하수도 시설이 갖춰져야 하고, 관광호텔·한국전통호텔·가족호텔·휴양콘도미니엄 중 한 종류 이상이 있어야 한다. 또 식물원·동물원·박물관·미술관이 두 종류 이상 있어야 하고, 관광기념품점·면세점·재래시장 등이 한 개소 이상은 있어야 한다. 관광공연장이나 유흥음식점·관광식당 등도 충분히 있어야 한다. 모두 산에는 적합하지 않은 지정요건인 셈인데, 지정요건이 까다로워서 이 법을 완화하는 입법예고는 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정요건이 완화되더라도 북한산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신촌이나 홍대도 지정요건 중 한두 개가 부족해 관광특구로 지정이 안 된 상태인데, 지정요건이 완화된다고 해도 신촌·홍대 정도가 새로 지정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촌·홍대는 지정요건 중 한두 개가 부족해 자치구와 어떤 점이 부족한지 세밀하게 검토해본 적은 있다”면서 “그러나 북한산은 당연히 확인도 안 했다. 법이 완화돼도 지정요건에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예산에 대한 고려, 지역 특수성에 대한 이해, 공약 현실성에 대한 검증 없이 개발만 약속한다고 ‘활기찬 강북’이 만들어질 리 없다. 이렇게 엄밀하게 검증되지 않은 공약이 제시되는 이유는 애초에 정 후보가 ‘예측 가능성’보다는 ‘당선 가능성’에만 방점을 찍고 출마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2월 새누리당에서는 정 후보의 서울시장 출마설을 둘러싸고 “본심을 모르겠다. 간 보는 중인 것 같다” “꽃가마 태워주기를 기다리는 것 아닐까” 등의 설왕설래가 오고 갔다. 당시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당선 가능성만 저울질하다 보니 정치의 ‘예측 가능성’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박심이 어디로 향했나’ ‘당선 가능성은 얼마인가’ ‘혹시 전략공천이 되지 않을까’만을 저울질하며 출마 시기를 최대한 늦추다 보니 정작 시민들이 후보를 검증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권자들은 ‘이 사람이 서울시장이 되면 서울시의 모습은 어떻겠다’라는 예측이 불가능해진다.

출마선언 후 한 달 만에 공약 뚝딱
이 관계자의 우려는 정 후보의 공약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공약은 3월 2일 출마 선언 이후, 한 달도 채 안 돼 뚝딱 만들어졌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준비가 안 된 게 맞는 것 같다. 중앙당 차원에서 각 후보들 공약을 만드는 내부적 시스템도 없고, 그저 당선될 ‘후보 만들기’에만 급급할 뿐”이라며 “그간 서울시 공약 만든 것을 짜깁기한 것일 텐데, 그나마 정 후보는 재력이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인데 그 정도”라고 말했다.

무리한 개발공약의 배경에는 정 후보의 정치적 생명력이 불투명해지면서 서울시장직에 승부수를 던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 후보 측 관계자에 따르면 친박도 아니고 이미 선수가 7선인 정 후보가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장직이 정 후보에게는 정치생명의 배수진인 만큼 무리한 개발공약들을 총동원해서라도 올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좌초된 오세훈 전 시장의 개발공약을 비롯해 사업 타당성, 예산 현실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마구잡이 개발공약들이 무분별하게 나열된 배경이다.

설득력 없는 개발공약이지만, 정 후보의 재력은 이러한 개발공약에 그럴 듯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정몽준 후보와 같은 지역구인 동작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종철 노동당 전 부대표는 정 후보의 공약을 보며 2008년 ‘뉴타운 총선’을 회고했다. 김 전 부대표는 “18대 총선에서 정 후보가 동작구에 뉴타운을 지정한다고 하니 주민들이 재력 있는 후보니까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오해했다”면서 “이제 누가 개발공약을 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상황이 되었지만, 정 후보는 조 단위의 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인식하니까 그런 재력을 통해 개발이 가능할 것 같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2008년 총선 서울 동작 을에서 뉴타운 공약을 전면에 내세워 당선됐지만 다음해 허위사실 공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 뉴타운은 개발되지 않았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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