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논란

박원순 시장 DDP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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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기조 위해 공공성보다 수익 강조… 내년부터 자립경영 목표 가능할까

“매표는 4층에서 하시면 됩니다.” 직원 안내를 듣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잘못 내렸다. 내리고 보니 2층이었다. 다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왜 착각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기자는 무료 개방이 이뤄지던 지난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방문, 내부를 둘러봤었다. 건물 내부의 각층은 거대한 나선을 그리며 하나의 통로로 이어져 있다. 디자인 둘레길이라는 이름이다. 엘리베이터의 어느 층에서 내리든 보이는 풍경은 얼추 비슷하다. 2층 주위를 둘러봤다. 2층임을 알려주는 표시가 눈에 안 띈다. 조금 더 유심히 보니 엘리베이터 입구 위쪽에 음각으로 작게 ‘2F’가 표시되어 있었다. 눈에 잘 안 들어오는 자리다. “사람들이 착각을 많이 하나요?”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도 답답해하는 눈치였다. “나이 드신 분이나 유모차를 끄는 분들 대하기가 쉽지 않네요. 격앙되어서 한 말씀씩 하는데….”

거대한 나선형 통로 길 잃기 십상
“유명한 건축학과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는데, 적응하려면 1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예측하더군요.” 이날 우연히 다시 만난 DDP 협력책임자의 말이다. 방문하기 전 인터뷰한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로부터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길을 잃으면 일단 건물 밖에 나가서 찾아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내부에서는 혼동을 일으켜도 바깥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의구심. 눈이나 비가 온다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라면?

DDP는 지난 3월 21일 개관했다. 이날 개관식에 참여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청중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DDP는 정말 행정이 낳은 졸작입니까, 아니면 서울의 자랑으로 남을 명작입니까.” 청중들은 환호하며 “명작”이라고 반응했다. ‘정체불명의 불시착한 우주선’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박 시장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우려가 있고 아쉬움도 깊었지만 ‘DDP 우주선’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지난 3월 21일 개장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설계작 채택 때부터 불거진 논란은 6년이 지난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 정용인 기자

지난 3월 21일 개장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설계작 채택 때부터 불거진 논란은 6년이 지난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 정용인 기자

이날 박 시장은 어떤 부분이 ‘우려’이고 ‘아쉬운 부분’인지 밝히지 않았다. 4월 2일 밤에 열린 한 간담회 자리에서 박 시장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DDP도 그렇습니다. 너무 안 어울리는 거예요. 특히 가슴 아픈 것은 한양도성터였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 지어진 동대문운동장을 허물고 땅을 파보니 한양도성, 이간수문이 나왔다는 거 아닙니까. (중략) 하지만 지금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뭐합니까. 짓는 데 5000여억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운영에 390억이 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말이 되냐, 무조건 흑자기조를 해야 한다, 그래서 창조산업의 전진기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세훈 시장 때부터 시작된 DDP프로젝트는 세 차례 연기되었다. 유구가 발굴되어 설계변경이 불가피했던 처음은 제외하더라도 원래 알려진 개장 예정일은 2013년 4월 5일이었다. 그게 2014년 3월 3일, 다시 패션위크가 열리는 3월 21일로 변경되었다. 왜였을까.

“오 시장 때부터 시작한 DDP를 두고 어떻게 할 것인가 내부에서 검토하는 자리가 있었다. 처음 우리는 비싸게 지어진 것만 알았는데, 1년 운영비가 390억이 든다는 것이었다. 경악할 만했다. 시장의 지시는 이것이었다. DDP 내에서 자체적으로 안을 만들어라. 다시 시의 돈이 들어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서울시 고위관계자가 전한 계획변경 배경이다. 박 시장 쪽의 ‘시각’은 DDP의 운영을 맡고 있는 디자인재단에서도 확인된다. DDP의 고위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박 시장이) 오자마자 우리에게 미션을 준 것이 디자인의 영역을 넓히고, 지역의 영역도 넓히는 동시에 100% 자립하라는 것 세 가지였다. 그것이 서울시 측의 일관된 요구였다.” 그는 “시장에 당선되기 전부터 명함에 ‘소셜 디자이너’로 박 시장이 직함을 표기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디자인을 중시했던 오세훈 전 시장과 공통분모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2015년 흑자 달성, 불가능한 미션”
하지만 이 ‘100% 자립’이라는 목표는 과연 제대로 된 설정이었을까. 오 시장 때 계획으로 현재 디자인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꾸며져 있는 ‘살림터’는 원래 도서관이었다. 100% 자립이라는 목표에 맞춰 수익을 내는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공공성 측면으로 봤을 때는 논란이 될 수 있다.

“321억으로 수입과 지출 균형을 맞춘 것인데, 억지로 끼워맞춘 것 아닌가. 2015년에 흑자를 달성하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보기엔 그건 불가능한 미션에 가깝다.” 전상봉 서울시민연대 대표의 말이다. 서울시민연대는 DDP 개관 하루 전 DDP의 문제점을 짚는 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그 ‘반향’은 그리 보이지 않는다. 전 대표는 덧붙였다. “박 시장이 경전철 재추진 입장을 밝혔을 때도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자회견을 했지만, 시민사회에서는 별다른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박 시장의 재선가도에 피해가 되지 않을까 의식해서인 듯 싶다.”

DDP 홍보팀 쪽에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실제 나온 결과물을 직접 보고 입장이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개한 이가 앞서 인용한 배형민 교수다. 그는 3월 12일 열린 ‘자하 하디드 포럼’의 사회를 맡았다. 배 교수는 “DDP가 명소가 될 것은 틀림없다. 자하의 건축에 그런 힘, 대중성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그램이 조금만 뒤받쳐준다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다. 자하가 만든 건축물 중에 이 정도로 완성도가 있는 건물도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도 ‘운영’과 관련해선 여전히 물음표가 찍힌다고 말했다. “DDP 쪽에서 당장 내년부터 독자적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은 무리한 이야기다. 박 시장의 ‘더 이상 시민의 세금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충정은 이해된다. 이왕에 몇천억 투자했는데, 조금 더 시에서 투자해서 정말 공공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주간경향>은 DDP 측에 321억원으로 수입과 지출을 맞춘 구체적 자료 내역을 요구해 계획의 타당성을 검증해봤다. 연간수입 321억원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대와 대관, 주차를 포함한 인프라 운영 수입이 189억원, 콘텐츠 수입이 66억원, 브랜드 수입이 66억원이다. 이 중 콘텐츠 수입 66억원은 유료 방문객으로부터 얻어진다. 관람료를 1인당 7000~8000원으로 잡아 연간 75만명이 다녀가면 얻을 수 있는 액수다. 산술적으로 365일로 나누면 일일 2055명이 유료로 입장해야 한다.

DDP는 4월 1일부터 유료로 전환했다. DDP 측은 “주간 단위로 통계가 작성되어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4월 첫 3일간 1일 3000~4000명이 유료로 방문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일단 3일간은 달성 목표를 채운 셈이다. 앞으로도 지속될까.

지난해 7월, DDP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백종원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와 서울시의원 사이에 이 수치를 둘러싼 설전이 있었다. 당시 제시된 목표치는 지금보다 낮았다. 74만명이 유료관람하여 61억원을 버는 것이었다. 백 대표는 “결코 무리한 수치가 아니며, 반대로 이 수치보다 낮으면 장소 자체가 노숙자나 이동상인에 의해 슬럼화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달성가능한 최소치라는 설명이다. 문제를 제기한 임형균 서울시의원은 현재 2개 구단이 있는 서울시 프로야구 입장 관객 수와 비교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쫓아다니는 ‘마니아’들을 거느린 프로야구도 연간 입장객이 100만명이 안 된다는 것이다.

DDP는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나
서울시의회에서 DDP의 운영계획을 둘러싼 논란은 최근까지 지속됐다. 왜일까. 서정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공학박사)는 프로젝트 시작 전부터 이 장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계획이 계속 바뀌어왔다고 말했다. “1990년대는 서울시청사를 여기로 옮겨 짓는 논의도 있었다. 2000년대 초에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이 본격 논의되었다. 오 시장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공원의 성격이 강했다.” 문화관광에 ‘디자인’을 더해 오세훈 시장의 서울 강북권 도심재생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운명은 달라졌다. “도심재생 르네상스계획과 결합하여 점차 랜드마크 성격의 디자인플라자를 건립하자는 쪽으로 갔고, 규모와 함께 건축사업비도 대폭 늘어났다.”

서울시 디자인정책과 관계자는 끊이지 않는 DDP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DDP는 아기입니다. 아직 제대로 기지도 못하는 아기에게 ‘왜 뛰지 못하냐’고 이야기하면 안 되지 않나요.” 일면 타당한 지적이다. DDP 홍보팀에서는 자하 하디드 설계에 대해 호평한 한 유명 디자인 전문지의 기사를 알려줬다. 호평 일색인 본문과 달리 댓글을 보면 자하 하디드 작품에 대한 논란은 한국 내 구도와 비슷했다. 기자의 눈에 띄는 것은 댓글에서 거론된 호주 빅토리아주의 멜버른 플라인더역 디자인 리뉴얼경쟁 공모 사례였다. 관련 공모 홈페이지에는 어떤 절차를 거쳐 공모작이 선정되었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다. 

2012년 2월 시작된 공모접수에는 총 118개 프로젝트가 응모했다. 2013년 4월까지 응모작은 6개 후보로 압축되었는데, 자하 하디드 작품 역시 그 6개 후보 중 하나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최종 선정에 앞서 시민의 선택(people’s choice)이라는 과정이 있다는 점이었다. 건축가를 비롯해 여러 전문가가 한 달 뒤 내린 최종 결론은 ‘시민의 선택’과 달랐다. 자하 하디드의 작품은 시민 선택이나 전문가 선정에 모두 뽑히지 못했다. 시민의 선택이나 그 후 전문가 선정 모두 그 이유와 과정을 밝힌 보고서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어 있다. 만약 누군가 ‘왜 특정인의 작품이 선정되었는지’ 의문을 갖는다면 ‘판단의 근거’인 보고서를 다운로드해서 검토하면 된다.

DDP는 다르다. 지금도 많은 정보가 불투명하다. DDP 홈페이지나 서울시 어디에서도 왜 자하 하디드였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DDP가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프로젝트 선정 경위부터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서 박사는 오세훈 시장 당시 DDP의 홍보 근거였던 “향후 20년간 생산유발효과 23조원, 일자리 창출 20만명, 외국인 관광객 280만명”의 수치가 나왔던 보고서를 예로 들었다. 2007년 9월 서울산업통상진흥원이 만든 ‘월드디자인플라자 건립 타당성 조사 및 운영방안 연구’다. 하지만 이 자료는 현재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도서관에도 남아 있지 않다. 서울연구원(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딱 한 권 남아있는 자료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가 현재 밝히고 있는 생산유발효과 13억원 등의 조정된 수치는 2010년 연구 결과다. 이 수치의 근거도 서울시 홈페이지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기자는 서울시 디자인정책과를 방문해 보관되어 있는 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다.

심지어 가장 최근 자료도 없다. 앞서 언급한 3월 12일 열린 ‘자하 하디드 포럼’과 관련, 그날 자하 하디드와 참석자 사이에 오간 대화 전체 내용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DDP 쪽은 “자하 하디드 쪽에서 초상권을 민감하게 여겨 사진 이외에 전체 과정을 녹취하거나 정리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제외하곤, 이날 토론 내용은 참석자들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배형민 교수는 “과거에 실제 잘못이 있었는지 논란을 떠나 관련 자료는 지금이라도 공개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3월 21일 개관식에서 “세계적인 건축가의 위대한 건축물이 우리에게 선물처럼 와 주었다”고 말했다. DDP에 대해 그동안 제기되었던 ‘비판’과는 거리가 먼 인식이다.

기자나 DDP를 방문한 시민들만 길을 잃었을까. 박원순 시장은 DDP와 관련해 과연 제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는 걸까. 짙은 의문이 남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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