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 어딘가 나만의 기억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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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런 일이 없는가. 술집에 술을 마시다 말고 벽에다 뭐라고 한 마디 써보는 취기와 객기의 흔적 말이다. 오래 전, 홍대 앞의 어느 술집 벽에는 “누군가 그녀를 진정시켜야 한다”고 써 있었다. 만약 오늘 밤 누군가 그런 상황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빨리 달려가서 그녀를 진정시켜야만 한다.

러시아워 때를 빼놓고는 그래도 시속 80㎞ 이상으로 달리게 되는, 때로는 한밤중에 급한 일로 보다 빠르게 달리곤 하는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에서 차를 세워두고 물끄러미 한강을 내려다보는 일은, 번잡한 일로 가득찬 대도시의 일상에서 거의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다. 

물론 차를 세운다는 것은 갓길이 아니라 둔치의 안전한 주차구역을 말한다. 아무튼, 급히 질주하다가 무심결에 둔치로 빠져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는 일, 흔치 않다.

내 사는 곳이 일산이라서 강변북로를 이용하여 귀가하는 도중에는 몇 번 그런 일을 해봤다. 한밤중에 귀가하다가 이제 막 1악장의 카덴차가 끝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집중해 듣기 위해 월드컵공원 쪽으로 빠져본 일이 있고, 장엄하게 저물어가는 한강 하류의 일몰을 보기 위해 행주산성 쪽으로 빠져 한참 서 있어본 일이 있다.

서울 청담도로공원 청담정에 낙서가 써 있다. | 정윤수

서울 청담도로공원 청담정에 낙서가 써 있다. | 정윤수

“잘가, 잘가” 누군가 써놓은 애틋한 낙서
올림픽대로 쪽은 그런 경험이 거의 없는데, 작년 가을에 하남 쪽으로 오다가 청담동 도로공원으로 빠져나가 잠시 쉬어본 적 있다. 너무 피곤해서였다. 새벽부터 시작한 강의 일정이 하남까지 이어졌고, 다시 오후의 꽉 막히는 올림픽대로를 관통하여 저녁에 홍대앞에서 또 뭔가를 해야 할 참이었다. 

배가 고팠고 피곤했으며 졸음이 오는가 싶어 혼잡한 대로를 잠시라도 피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청담 도로공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언제나 쏜살같이 질주하던 대로라서 그런 공원이 있는 줄도 몰랐다. 찾아보니, 지난 1986년에 한강종합개발을 기념하여 조성한 곳이다. 청담대교와 잠실대교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한강개발기념탑이 있고 청담정이라고 하는 팔각정 전망대가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 서울의 동과 서를 완상하여 보니, 따사로운 가을빛이 아니었더라면, 그리 황홀한 정경은 못되었다. 질주하는 차들과 회색의 건물들, 그 밖에 달리 전망할 만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내 눈에 띈 것은 누군가의 낙서였다. 아! 이렇게 낙서라고 불러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담벼락이나 기둥에 아무렇게나 써놓은 글자를 낙서라고 한다면, 내가 청담정에서 본 것은 낙서라고 말할 수는 없는, 애틋한 메시지였다. 

팔각정이니 여덟 개의 기둥이 있는데, 그 중 몇 개의 기둥에 누가 누굴 사랑한다느니 제 이름 석자 써놓고 여기 왔다 갔다느니 하는 싱거운 낙서가 있었는데, 난간의 글씨는 낙서라고 하기에는 너무 애틋했다.

“잘가 잘가 잘가 보고 싶을 거야 ㅠ.ㅠ”

이 글씨를 쓰면서, 글씨체로 봐서 아마도 스무살 푸릇푸릇한 여자였을 그 사람은 무심히 질주하는 차량과 저 멀리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펑펑 울었을 것이다.

당신은 그런 기억이 없는가. 관광지에 가서 자기 이름 써넣고 희희덕거리는 짓 말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깊은 상실감을 어디에라도 한 번 써본 일, 그런 일이 당신은 없는가.

10년 전 홍대 앞 술집 벽에 적힌 낙서가 생각났다. | 정윤수

10년 전 홍대 앞 술집 벽에 적힌 낙서가 생각났다. | 정윤수

당신이 새겨놓은 그 기억은 무엇인가
오래 전 수유리에 살 때, 그곳의 어느 아파트 상가 옥상에 담배를 피우러 올라간 일이 있었는데, 그 옥상 담벼락에는 어떤 학생이 써놓은 낙서가 있었다. 

가슴 깊이 맺힌 답답함 때문에 그 학생은 두려운 마음으로 낙서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적어놓은 글씨의 내용과 달리, 그 학생이 옥상에서 내려가 귀가를 하고, 마음 진정시키면서, 다시 자기 일상으로 돌아갔기를 바란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지금쯤 군 복무를 하고 있거나 취업을 위해 밤새 공부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제주도 여행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당신은, 또, 그런 일이 없는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말고 벽에다 뭐라고 한 마디 써보는 취기와 객기의 흔적 말이다. 오래 전, 홍대 앞의 어느 술집 벽에는 “누군가 그녀를 진정시켜야 한다”고 써 있었다. 만약 오늘 밤 누군가 그런 상황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빨리 달려가서 그녀를 진정시켜야만 한다.

“평화시장 앞에 줄지어 선 가로등들 중에서 동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등은 불이 켜 있지 않습니다.”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에 나오는 말이다. 1964년의 차가운 겨울, 주인공과 대학원생과 어느 가난뱅이 사내가 충동적으로 하룻밤을 보내는 과정을 다룬 이 소설에서, 인물들은 포장마차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자기만 알고 있는 이 거대한 도시의 작은 비밀 말이다. 다른 사람이 알고 있을 만한 사실은 말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자기만 알고 있는 대도시의 기억 말이다.

“단성사 옆 골목의 첫 번째 쓰레기통에는 초콜릿 포장지가 두 장 있습니다.”

“서대문 근처에서 서울역 쪽으로 가는 전차의 도로리가 내 시야 속에서 꼭 다섯 번 파란 불꽃을 튀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건 오늘 밤 일곱시 이십오분에 거길 지나가는 전차였습니다.”

“난, 종로 이가 쪽입니다. 영보빌딩 안에 있는 변소 문의 손잡이 조금 밑에는 약 이 센티미터가량의 손톱자국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런 기억이 없는가. 이 거대한 도시는 작은 개인의 기억을 집어삼킨다. 개별적인 취향과 기호와 성향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군홧발처럼 거대한 도시가 짓눌러도, 개인의 기억은, 그 군홧발 밑창에 끼어 있는 작은 돌처럼, 강건하다. 이 거대 도시의 한 구석에 당신만이 알고 있는, 아니 당신이 새겨놓은, 작지만 소중한 기억은 무엇인가. 

<정윤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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