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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할 뜻은 없고 세수 확보할 방법도 없고… 서민 주머니 터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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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1년 동안 곳곳에서 각종 단속에 걸려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물었다는 소리가 늘고있다. 위법행위를 정당하게 단속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들은 범칙금이나 과태료가 급증하는 원인이 세수 확보에 있다고 의심한다. 이른바 ‘노력 세수’라 불리는 과징금 부과 중심 정책이 고소득자와 대기업 대신 서민들의 주머니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민과 중산층의 지갑을 얇게 하는 부분에 대해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 달라.”

지난해 8월 정부 세법개정안이 들끓는 반대 여론에 부딪힌 뒤 박근혜 대통령이 수정안을 낼 것을 지시하며 한 말이다.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유지해 왔던 박근혜 정부가 처음으로 개인소득세 부문부터 손을 대기로 한 개정안이었으나 결국 거센 조세저항 물결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정권 출범 1년을 넘긴 현재까지 증세 논의는 수면 아래 가라앉아 다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표지이야기]증세할 뜻은 없고 세수 확보할 방법도 없고… 서민 주머니 터는 나라

증세 논의가 사라진 마당에 복지분야를 비롯한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한 세수 확보는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그마저 박 대통령의 발언과는 정반대로 서민과 중산층을 향한 범칙금과 과태료 수입에 기대는 실정이다. 

이른바 ‘노력 세수’라 불리는 정부기관의 과징금 부과 중심 정책이 고소득자와 대기업 대신 평범한 시민들의 주머니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현장 단속 범칙금 1000억 넘어
직장인 박상균씨(33)가 뗀 ‘딱지’도 경찰의 ‘노력’의 결과다. 박씨는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부근에 있는 회사로 서둘러 출근하다 횡단보도 없는 도로를 무단횡단한 것이 적발됐다. 

2만원짜리 범칙금 고지서를 받은 박씨는 억울했다.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이야 부인할 수 없지만, 적발될 당시 박씨와 함께 길을 건너던 인파가 줄잡아 스무명은 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왜 내가 걸렸나 생각해도, 재수없이 뭐 밟았다고 넘길 수는 있다. 그런데 (단속 경찰이) 참 치사하다고 느낀 건, 보이는 곳에 서서 무단횡단하지 못하게 막지는 않고 잘 안 보이는 곳에 있다 다들 건너가니까 튀어나왔다는 점이다.”

박씨의 경우처럼 교통경찰이 현장에서 ‘딱지’를 떼는 통고처분은 전년 동기에 비해 크게 늘었다. 2013년 한 해 동안의 현장 단속을 통한 통고처분 범칙금 액수는 최초로 연간 1000억원을 돌파한 1096억원을 기록했다. 

2012년의 636억원에 비교하면 약 460억원(72.3%)이나 증가한 것이다. 경찰의 통고처분을 건수로 보면 박근혜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기 직전인 1·2월에는 월 평균 약 10만건에 그친 데 비해, 정권 출범 직후인 3월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해 나머지 10개월간 월 평균 약 24만건을 단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이 액수는 경찰이 거둔 전체 과태료 가운데 일부분이다. 경찰청이 2013년 부과한 전체 과태료는 6379억원으로 2012년에 거둔 5543억원에 비해 836억원(15.1%) 늘어났다. 무인단속 카메라나 이동식 카메라를 활용한 신호위반·속도위반 등의 단속 사례가 전체 과태료 부과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서울에서만도 시내 곳곳에서 이른바 ‘함정단속’이라 비난받는 이동식 카메라 단속구간이 급증했다. 대표적으로 도심 내 고속화도로에서 정체 및 서행이 풀리고 차량들이 속도를 높이는 구간들이 주요 단속구간으로 자리잡았다. 서울의 강변북로 잠실철교~원효대교 사이 구간에서 기자가 직접 확인한 이동식 카메라 단속 지점만 해도 세 곳이나 됐다.

박근혜 정부 1년 동안 곳곳에서 각종 단속에 걸려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는 소리가 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위법행위를 정당하게 단속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범칙금·과태료 급증 원인이 세수 확보에 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만큼의 부담이 서민과 중산층 위주로 전가되는 데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과태료 등 노력 세수 증가분에 비해 전체 세입이 이전 연도에 비해서도 줄어드는 적자재정으로 2013년 한 해가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법인세 등 국세수입 8조5000억 덜 걷혀
기획재정부는 ‘2013 세입·세출 마감 결과’를 밝히면서 2013년 국세수입이 예산 대비 8조5000억원 부족한 201조9000억원에 그쳤다고 밝혔다. 경찰청 과태료 증가분 836억원의 100배 이상이 걷히지 않은 셈이다. 소득세와 부가가치세가 늘었음에도 전체 세수가 감소한 주된 이유로 법인세가 전년 대비 2조1000억원 줄어든 사실이 지목된다. 

세원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3대 세원인 부가가치세와 법인세, 소득세를 두고 세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 가운데 조세전문가들이 특히 법인세를 지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세청은 2월 28일 인천공항세관 수출입화물통관청사에서 ‘2014년 제1회 전국세관장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관세청은 2월 28일 인천공항세관 수출입화물통관청사에서 ‘2014년 제1회 전국세관장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인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기업소득에 비해 가계소득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가계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지금의 조세정책 방향이 걱정스럽다”면서 “공평과세를 위해선 법인세제 개편을 강력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세를 포함한 법인세 법정 최고세율을 보면 2013년 현재 한국은 24.2%로 영국(23.0%)과 스웨덴(22.0%)보다는 다소 높지만 일본(37.0%), 미국(39.1%), 독일(30.2%), 프랑스(34.4%)에 비해서는 크게 낮다. 또 기업들이 부담하는 사회보장기여금 역시 낮은 수준이어서 총조세비용으로 본 기업들의 부담은 국제적으로도 크지 않은 편이다. 세계은행 발표에 따르면 2011년 한국 기업의 법인세와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은 이윤 규모 대비 29.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42.5%)은 물론 가까운 일본(50.0%)과 중국(63.7%), 그리고 미국(46.7%)이나 프랑스(65.7%) 등 주요국에 비할 때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반면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법인세율이 인하되면서 대기업은 비과세 감면제도의 혜택까지 톡톡히 봤다. 국세청 자료를 보면 법인세 공제감면총액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62%에서 2011년 71%로 증가했다. 

또 2012년 기업에 공제감면된 세액 9조3000억원 중에서 78.1%를 상위 1%에 해당하는 대기업들이 독식한 사실도 밝혀졌다. 현재 정부가 겪고 있는 세수 확보 위기에 대해 대기업들에 일정 부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세수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침체된 경기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음에도 정부로서는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낙수효과’를 내세운 지난 정권의 주장과는 달리 대기업에 집중된 감세혜택이 투자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다. 2012년 기준으로 10대 재벌집단의 사내유보금은 한 해 국가 예산에 필적할 만큼 증가한 183조원에 달하고 있다.

실물경제의 침체를 겪는 영세자영업자 입장에서는 현 정부가 내놓는 조세정책을 걱정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피부 마사지숍을 열고 있는 백효원씨(가명·43)는 정부가 최근 발표한 현금영수증 발급 사업장 확대 방침을 보며 “결국 올 게 오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소득세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백씨가 운영하는 피부미용업을 비롯해 예식장, 결혼사진 상담업, 관광숙박업, 운전학원 등 10개 업종이 소비자가 요구하지 않더라도 의무적으로 현금영수증을 발행해야 한다. 매출을 축소 신고하는 관행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 업종들이 포함된 것이다.

“작은 가게서 세금 걷는 데만 온 신경”
백씨는 “물론 세금을 100% 다 냈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내야 할 몫을 낸다는 데에는 동의한다”면서도 “피부관리처럼 큰 자본 없이 작은 규모로 여는 업종은 그만큼 (시장에) 들어오기가 쉬워 어느 동네나 금방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에 세금 덜 내온 이점이 사라지면 문 닫기 딱 좋다”고 한탄했다. 

인천세관에 압류된 명품가방들. | 경향신문 자료

인천세관에 압류된 명품가방들. | 경향신문 자료

백씨의 가게 종업원 유경옥씨(가명·41)도 “작은 가게에서 세금 잘 걷는 것도 중요하긴 하겠지만, 큰 회사들이랑 재벌들 떼먹는 것부터 더 세게 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 가게 망하면 직원들 일자리 잃는 것도 생각해줘야 된다”고 말했다.

결국 세수 감소로 인한 피해는 복지정책의 주요 대상인 저소득층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올해 예산안에서 기초생활보장 예산의 경우 전년에 비해 자연증가분에도 미치지 못하는 3%(2600억원)만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지난해 증가율 8.2%(6500억원 증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사실상 예산이 축소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수급자 규모가 30% 늘어난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 정책을 홍보했다. 가장 열악한 상황에 있는 취약계층의 혜택이 축소된 만큼 미약한 수준을 보장받는 수급자 수를 늘리는 데 치중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반면 올해 예산안에서 사회간접자본 분야의 경우 최초 기획재정부 안 23조3000억원에서 약 4397억원이 증액되었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한 수도권광역급행철도 사업에 10억원이 추가 편성되고, 국토교통부 계획에 없던 제2서해안고속도로 설계비가 반영되는 등 도로·철도분야에서만 3000억원이 늘었다. 지방선거를 앞둔 선심성 예산이란 지적에도 증액분은 예산 심의를 통과했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유리지갑이라 불리는 일반적인 월급쟁이들 같은 서민·중산층이 느끼는 불만은 세금부담이 늘어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대기업이나 자산가, 고소득 자영업자와 조세 형평이 맞지 않은 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며 “비과세 감면을 줄인다는 큰 방향성에서는 정부의 대책이 좋았지만 대기업 부담이 부족하고 구체적 방안이 불투명해 그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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