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너에겐 설렘, 나에겐 설움 대학생 해외연수 희비쌍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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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취업 필수조건 아니라고 해도 식지 않는 해외연수 열기…

누구는 여윳돈으로 장기 연수를 떠나고, 누구는 빚을 내서 떠나고, 누구는 떠날 엄두도 못내는 등 빈익빈부익부 뚜렷

# 조용준씨(29)는 중국 베이징대 금융학과 졸업반이다. 한국의 금융 공기업 취직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그는 방학을 이용해 신촌의 한 어학원에서 영어를 수강했다. 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원하던 대학으로 진학을 못했다. 

하지만 재수를 하면서 중국 대학으로 방향을 튼 것이 결과적으로 괜찮은 선택이 됐다고 말한다. “선배들을 보면 한국 기업에 취직이 잘돼요. 외국 경험과 언어구사능력 덕분에 국내 대학 출신에 비해 평가도 좋구요. 저도 영어공부만 더 하면 취직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아요.”

# 모 대학 국제학부에 다니는 A씨(22)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볼리비아 여행을 가고 싶었다. 하늘이 바닥에 있는 우유니 소금사막을 두 눈으로 보고 두 발로 디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 4학년인 그녀에게 여행은 사치일 뿐이다. 

대학가에서 유학센터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대학생들의 해외 경험은 본인의 자발적 의사와 기업이나 주변의 시선 혹은 압박의 경계쯤에서 ‘필수화 시대’를 맞고 있다.

대학가에서 유학센터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대학생들의 해외 경험은 본인의 자발적 의사와 기업이나 주변의 시선 혹은 압박의 경계쯤에서 ‘필수화 시대’를 맞고 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며 남은 시간은 학과 공부하기에도 벅차다. 그녀는 근로장학생으로 학기 중 주당 20시간, 방학에는 주당 40시간 일한다. 

근로장학생을 해야 해 휴학은 꿈도 꿀 수 없다. “페이스북이나 SNS는 안 해요. 또래들 모습에 불안해요. 자기소개서를 쓰면 학교 수업과 과제, 근로장학생 경험밖에 없어서 눈앞이 깜깜해요.”

대학교에서 ‘있는 집’ 자식과 ‘없는 집’ 자식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가장 큰 단면 중 하나는 해외 경험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4년제 대학 졸업생 1만8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월 가구소득 500만원 이상 대학생의 31.4%는 어학연수를 경험했으나, 월 가구소득 200만원 이하의 가정은 그 절반인 15.7%만 해외연수를 경험했다.

있는 집 자식-없는 집 자식 가르는 잣대
가계 사정에 따른 차이가 나는 이유는 해외 경험을 위해서는 목돈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및 대졸 미취업자의 26.1%가 최소 3개월 이상 어학연수를 다녀왔으며, 1인당 평균 1423만원을 썼다. 

어학연수비는 목돈이기에 학생이 아닌 가계에서 감당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가계는 자녀의 해외연수 준비는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체감하는 부담이 훨씬 크다.

A씨는 지난해 교환학생 문제로 어머니의 눈물을 보게 됐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파트 중도금까지 빼서 2000만원을 마련해 주시며 미국에 다녀오라고 하셨다”며 “너무 부담스러워 ‘안 가겠다’고 말했더니 어머니가 우셨다”고 말했다.

여윳돈이 없는 중·저소득층 자녀들의 해외 경험은 설마했는데 눈앞에 다가온 등골브레이커다. 인천공항 출국장이 해외로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여윳돈이 없는 중·저소득층 자녀들의 해외 경험은 설마했는데 눈앞에 다가온 등골브레이커다. 인천공항 출국장이 해외로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지난해 딸을 독일 교환학생으로 보냈다는 권현숙씨(46)는 “등록금은 애가 어릴 때부터 준비했지만 교환학생 비용은 준비하지 못했다”며 “주변에는 급작스런 돈 마련을 위해 이사하거나 빚을 내면서 보내겠다는 부모도 있다”고 말했다.

해외연수비는 가계의 현재 상황에서 ‘여윳돈’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저소득층은 고소득층에 비해 그럴 여력이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소득계층별 소비여력과 시사점’에 따르면, 2012년 중·저소득층의 월평균 소비여력(가처분소득-소비지출, 저축이나 처분 가능한 돈)은 각각 73만원, -24만원으로 월 264만원의 고소득층과 차이가 컸다.
 
등록금이 꽤 익숙해진 등골브레이커라면, 해외연수는 설마했는데 눈앞에 다가온 신종 등골브레이커다.

한 개인이 해외에 나가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다. 특히 대학 시절은 젊고,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아 해외 경험의 적기로 여겨진다. 

실제로 인턴기자가 인터뷰한 많은 이들이 해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거나, 정체성을 돌아보거나, 어학능력이 느는 등 매우 값진 시간들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생의 해외 경험에 대한 열망은 과열된 측면이 있다. 분위기상 ‘해외를 나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강박감이 상존하는 것이다. 

[사회]너에겐 설렘, 나에겐 설움 대학생 해외연수 희비쌍곡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다는 중앙대 3학년 변문수씨(26)는 “대학 입학 때 봤던 선배들은 해외 경험 없이 토익 정도만 있어도 취업이 가능했다”며 “이제는 휴학하고 해외 나가는 것을 고민해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해외 경험을 부추기는 대표적 요인은 취업 스펙이다. 인터넷 취업사이트에는 각 기업의 합격자 평균 스펙이 공개된다. 해외연수는 ‘취업 스펙 7종’(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인턴, 봉사활동, 공모전 수상경력)에도 빠지지 않는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보유 중인 자료를 분석한 결과, 10대 대기업의 합격자 평균 스펙 중 어학연수 횟수가 평균 1회가 되지 않는 곳은 없었다. 

취업 준비생 장현정씨(23)는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다들 비슷한 수준이니 한 항목이 크게 빠지면 서류전형에서 떨어질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해외 경험이 없는 이들에 대해 차별적인 발언도 돈다. 실제로 서울 소재 한 학과에서는 고학년이 되어서 해외연수를 가지 못한 이들을 ‘롯동이 선배’(롯데, 동부, 이랜드에 취직할 선배)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값진 경험 열망ㆍ도태 불안감에 떠나
장씨와 같이 해외연수 비용이나 시간이 부족하면 해외 배낭여행이나 해외 자원봉사활동, 기업의 해외 탐방프로그램이란 ‘대체재’를 택해 해외를 경험하는 학생들도 많다. 

장씨는 “지원금을 주는 ‘장정’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을 다녀왔다”며 “중국에 대해 큰 관심은 없었으나 해외를 경험해볼 기회”였다고 말했다. 

2년 동안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다 기업 취직 준비로 돌아선 전보름씨(25)는 “마침 언니가 네팔에 봉사활동을 가 있어서 언니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산을 다녀왔다”며 “이 정도 경험은 있어야 기업에서 일 잘할 것 같다고 봐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해외 경험은 본인의 자발적 의사와 기업이나 주변의 시선(혹은 압박)의 경계쯤에서 ‘필수화 시대’를 맞고 있다.

해외 경험과 관련, 기업 분위기는 또 다르다. 해외연수가 취업의 필수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중장비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해외 법인에서 해외 주재 직원을 뽑는 경우는 있어도 국내 공채에서 해외 경험이 있는 지원자를 뽑는다든지 우대하지는 않는다”며 “해외 경험을 통해 본인의 이야깃거리가 많다면 면접에서 유리한 정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토리’ 있어야 면접 유리하다 판단도
기업의 채용 트렌드 역시 바뀌는 추세다. 최근의 경향을 요약하면 ‘탈(脫)스펙’이다. 현대자동차는 ‘더 에이치’(THE H) 전형을 통해 대학 도서관에 일찍 나오는 학생 등을 길거리에서 채용했고, SK는 오디션 형식의 바이킹 챌린지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했다. 

해외 경험, 어학 점수와 같이 정량화된 스펙을 보지 않고 지원자들의 다양한 재능과 열정, 직무역량을 보겠다는 것이다. 

잡코리아 좋은 일 연구소 정주희 연구원은 “해외연수가 일반적이지 않을 때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자기소개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너무 흔해졌다”며 “본인의 직무에 관련한 인턴이나 아르바이트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들은 여전히 해외 경험에 대한 환상을 떨치지 못한다. 정량화된 스펙이 아니더라도 기업이 원하는 도전적·창의적·글로벌한 스토리가 있는 지원자가 되기 위해서는 해외 경험이 국내 경험보다 낫다는 것이다. 

취업 준비생 박민영씨(26)는 “호주에서 소젖을 짠 경험으로 다이내믹한 자신을 표현했던 다른 이의 자기소개서를 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며 “해외에서 경험한 일은 도전적이고, 스케일이 크고, 스펙터클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사회]너에겐 설렘, 나에겐 설움 대학생 해외연수 희비쌍곡

‘스펙 대신 스토리’는 취업시장에서 널리 통용되는 말이다. 해외 경험 스토리는 자기소개서에 ‘인생 최대의 위기’, ‘가장 도전적인 경험’, ‘해외연수 경험’ 등의 항목을 작성하기 좋고, 면접 때 질문 하나를 더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8개월 동안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조준우씨(26)는 “농장을 다니며 고생하며 돈을 벌어본 경험 자체가 중요했다”며 “영어 공부를 많이 못한 듯해 한국에 오기 전 필리핀에서 영어를 배우고 왔다”고 말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참가자의 연이은 피살사건에도 불구하고 참가자가 늘어났다. 호주 이민부에 따르면 2013년 전년보다 8.1% 많은 3만5220명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를 찾았다.

해외 경험은 자기계발 열풍의 정점이기도 하다. 어학능력은 낮은 대학 순위를 맞바꿀 수 있는 ‘제2의 학벌’이 됐고, 해외에서 접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과 경험 등은 평생의 자산이 된다. 해외 경험은 이 둘 모두를 잡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또한 그 투자 비용과 준비 기간을 고려하면 쉽게 잡을 수 없기에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캠퍼스 잡앤조이와 잡코리아, 알바몬이 대학생·취업 준비생 71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가장 참여하고 싶은 분야의 1위로 ‘해외탐방’이 꼽혔다. 

실제로 지난해 LG그룹의 대학생 해외탐방 프로그램인 글로벌챌린저에는 120명 모집에 28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 24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교환학생도 학비 부담과 해외 체류비가 비교적 적어 해외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하지만 저소득층 학생에게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본지가 전국 15개 대학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취재한 결과 한국외대, 부산대, 전남대만이 교환학생 선발 시 가계 형편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학기 215명의 학생을 해외에 파견한 서울대는 교환학생 선발 시 학업성적만을 기준으로 한다. 가계 형편을 고려해 가점을 주거나 따로 TO를 배당하지 않고, 선발된 학생에 한해 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장학금을 지급한다. 연간 1200명의 교환학생을 파견하는 연세대도 마찬가지다.

이에 비해 한국외대는 ‘교환학생제’와 ‘7+1파견학생제’ 선발 시 차상위계층 학생 등에게 가점을 부여한다. 부산대는 학생교류프로그램 참가자의 10% 정도를 별도 OT나 전형을 통해 모집하며, 전남대 역시 지원자의 경제적 수준을 고려해 가점을 주고 있다.

어학능력으로 줄 세우는 사회의 단면
전문가들은 대학가의 해외 경험 열풍이 외국어 실력으로 사람 능력을 줄 세우는 사회의 단면이라고 말한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오찬호 연구원은 “이 분위기가 만연되면 영어 잘하는 사람이 영어 못하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다”며 “돈 많고, 해외에서 태어난 이가 유리해지며, 세습까지 되는 비정상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평론가 한윤형씨는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합리적인 상황이 된 촘촘한 구조 속에서 청년층에 도드라진 문제”라며 “사회 전체로 봤을 때 청년층은 경쟁에서 승리해봐야 회사원이 되는 ‘아래칸’에 위치하지만, 그 칸 안에서 자신을 과시하는 매개가 해외 경험이 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때 가장 뜨거웠던 국내 뉴스는 한국과 프랑스가 어떤 외교관계를 맺느냐는 내용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몇 개 국어를 할 수 있으며, 발음이 얼마나 유창한지가 이슈가 됐다. 대통령부터 이미지 메이킹을 외국어로 하는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청년층의 문화와 관련이 높다는 의견도 있었다. 20대이자 해외연수를 경험했던 <월간잉여> 편집장 최서윤씨는 “어릴 때부터 외국 드라마나 영화를 접했고, 현재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 주변의 사람들이 외국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해외 경험에 대한 동경이 있지 않느냐”며 “그러나 본인의 소비문화 수준만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잉여이니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시적으로 기업과 사회가 지원자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찬호 연구원은 “입사원서를 보더라도 굳이 영어 성적이 기업 직무와 직접 관련이 없다면 삭제해도 되지 않느냐”며 “‘해외연수 경험’과 같은 항목 자체를 줄여 청년층과 가계에서 받는 압박감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윤형 평론가는 “영어를 잘하지 않더라도 이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대안적인 롤모델을 많이 발굴하는 게 중요할 것”이라며 “결국 거시적으로 제도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유학센터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대학생들의 해외 경험은 본인의 자발적 의사와 기업이나 주변의 시선 혹은 압박의 경계쯤에서 ‘필수화 시대’를 맞고 있다.

<글·사진 조창훈 인턴기자 mrjoch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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