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비정상 바로잡는 ‘체육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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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시민연대는 한국 최초의 체육분야 전문 시민단체다.
창립 초기 ‘공부하는 학생선수, 운동하는 일반학생’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체육계의 고질병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제는 지친다. 최근 터진 사건만 해도 한둘이 아니다. 체육계를 잘 모르는 사람도 문대성 의원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빙상연맹 파벌 논란, 체대 내의 ‘군기잡기’ 문제 정도는 다 알고 있다.

심각한 증상이 드러난 지 오래됐음에도 병이 고쳐지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2002년 창립한 체육시민연대는 비정상적 관행을 고치는 데 있어 시민의 감시와 견제만한 특효약이 없다고 보고 있다.

체육시민연대는 한국 최초의 체육분야 전문 시민단체다. 창립 초기 이들이 내걸었던 ‘공부하는 학생선수, 운동하는 일반학생’이란 슬로건은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서서히 전파되고 있다. 

허정훈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중앙대 체육대 교수)은 “현재 시스템에선 극히 일부 학생 선수들만 프로 진입에 성공하고 나머지는 조연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학생선수 출신이 조폭 등 나쁜 길로 빠지는 사례도 나오는 등 운동을 열심히 했던 것이 삶의 질곡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열린 반전반핵평화 마라톤 대회에서 체육시민연대 회원들과 참가자들이 미소를 짓고 있다. | 체육시민연대 제공

지난해 열린 반전반핵평화 마라톤 대회에서 체육시민연대 회원들과 참가자들이 미소를 짓고 있다. | 체육시민연대 제공

허 위원장에 따르면 체육시민연대가 생기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0년 ‘장희진 파동’이었다. 당시 중학생으로 시드니 올림픽 수영 국가대표가 된 장희진 선수는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겠다며 태릉선수촌을 나왔다. 

이에 대한체육회와 수영연맹은 “국가대표로서 개인이 희생을 감수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장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했다. 

장 선수 징계 철회 서명운동에 전국에서 200여명의 교수들이 참여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수영연맹은 결국 징계를 거둬들였다. 당시 모였던 교수, 체육 지도자들은 지속적인 감시와 비판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으고 2002년 5월에 단체를 만들었다.

전문가들이 많이 소속돼 있다는 것이 체육시민연대의 큰 장점이다. 공동대표인 주원홍 전 감독은 현재 대한테니스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다른 공동대표 강신욱 단국대 교수는 2012년 문대성 의원의 논문 표절 논란 당시 이원희, 김두현 같은 다른 올림픽 스타들의 논문 표절 의혹을 폭로하기도 했다. 

인맥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기에 이들은 기자회견 때 뜻을 함께하는 스포츠 스타들을 모을 수 있었고, 전문가 자격으로 여러 언론에 출연해 체육계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었다. 

허정훈 집행위원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활동도 많았다고 말했다. 일례로 들 수 있는 것이 체육대학 내의 군기잡기 문화 개선작업이다. 허 위원장에 따르면 학부모나 학생들이 체대 내의 폭력, 비정상적 규율 등 문제점을 이따금 제보해 온다고 한다. 이어 체육시민연대에 있는 전문가들이 해당 대학에 직접 연락을 해 불상사를 미리 막은 경우도 몇 차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창립 10주년이 넘도록 ‘전문가 조직’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창립 때나 지금이나 체육시민연대 회원은 300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광범위한 참여가 있을 때 시민단체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폐쇄적인 분야로 알려진 체육과 시민 참여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체육시민연대가 시작한 사업 중 하나가 2011년부터 격년으로 열리는 반전·반핵·평화 마라톤 대회다. 

릴레이 마라톤으로 노근리 평화공원 등 전쟁의 아픔이 남아 있는 장소를 방문해 전쟁 반대와 평화통일의 메시지를 알리겠다는 것이 대회의 목적이다. 아직은 참가자가 50여명 선이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체육시민운동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 위원장은 체육계의 ‘비정상’에 대한 불만이 높은 만큼 체육시민운동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고 말했다.

“그동안 체육시민운동이 재생산되는 구조를 만들지 못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체육시민단체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문의는 꾸준히 들어와요. 저도 제자들을 마라톤 행사에 초대하기도 하고, 뜻이 있는 친구들은 단체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고 있어요. 아직 주류는 아니지만 학생들을 중심으로 체육계를 바꿔보자는 새로운 기류도 감지되고 있어요.”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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