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구미-인천-안산-산양공단 20대 떠돌이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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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노동을 파견직으로 시작하는 청년들, 최저시급 주는 공장들 전전…

일감 줄면 예고 없는 해고, 비정규직법 개정 이후 ‘소속 없는 노동’에 익숙해져

3개월도 길었다. 고 유승우씨가 ㈜장원테크에서 일한 기간은 3개월 남짓.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모두 유씨가 오래 일한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보통은 한두달 만에 다른 공단 내 다른 공장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것이다. 

좀 더 처우가 좋다면 다른 지역의 공단으로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주거는 따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공장을 알선해주는 대개의 용역회사들이 지역 공단 내 기숙사를 가지고 있어서 얼마의 기숙사비만 내면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큰 부담은 없었다.

3~4개월 근무는 오래한 편에 속해
유씨가 장원테크에 근무했던 기간은 2013년 6월 20일부터 2013년 10월 5일까지였다. 이 기간에 유씨와 같이 일한 적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현재 다른 공장이나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수원 인근의 한 휴대폰 부품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가 집으로 향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수원 인근의 한 휴대폰 부품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가 집으로 향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윤영미씨(가명)는 장원테크에서 4개월 정도 일했다. 윤씨는 “나도 거기에서 오래 일한 편에 속한다”며 “구미에는 공장이 많으니까 안 맞겠다 싶으면 빨리빨리 그만두고 다른 공장을 알아본다”고 말했다. 

윤씨가 구미공단에 들어온 것은 2013년 1월이었다. 장원테크는 윤씨가 구미공단에서 일했던 세 번째 공장이었다. 반년 사이에 공장을 세 군데나 옮긴 셈이다. 

윤씨는 구미공단에서 일하기 전 인천에서 일했다. 장원테크를 마지막으로 구미공단을 떠난 양씨는 지금은 경남 양산에서 사무직을 보고 있다. 그러나 공장에 비해 근무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다보니 벌이가 공단에서 일할 때의 절반도 못된다. 현재 윤씨는 다시 공단에서 일을 시작할까 고민 중이다.

유씨와 함께 일했던 이지영씨(가명)도 구미공단을 떠나 현재는 인천공단에서 일을 하고 있다. 신준기씨(가명)는 잠깐 경기도 안산으로 일을 하러 갔다가 얼마 전 구미로 다시 돌아와 구미공단에서 일할 곳을 찾고 있는 중이다. 

유씨의 고향 친구인 강민하씨(가명)는 대학을 휴학하고 안산 공단에서 공장일을 시작했다. 가까운 구미공단보다 안산을 택한 것은 구미보다는 안산의 상여금이 조금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느라 쓰는 돈을 셈하니 집 근처의 공단을 다니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강씨는 3개월 만에 안산에서의 생활을 접고 경북 문경 근처의 산양공단으로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내려왔다.

공단에서 파견직으로 일하는 20대들의 이직 속도는 빨랐다.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스스로 회사를 나가기도 하고 원청의 도급이 줄어드는 비수기에는 회사에서 잘리기도 했다. 

더 좋은 조건이라야 사실 별로 큰 차이는 없다. 공단 내 파견직은 대부분이 최저 시급으로 계산되고 상여금이 조금 차이가 나는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의 작업장이 있다고 소문이 나면 금세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경기 화성시의 공단에서 휴대폰을 제조하는 하청업체에서 일했던 김유미씨는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돈이 조금이라도 되는 곳을 찾아다니면 한두달 만에 공장을 바꾸기도 한다. 인천이든 수원이든 입소문이 나서 좋다는 지역으로 옮겨가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보통 용역업체에서는 대여섯 군데의 공장을 끼고 있다. 공장을 옮기는 건 쉬운 일이었다. 만약 속해 있는 용역회사가 소개해준 공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터넷으로 다른 용역업체에 바로 등록하면 된다. 

물량에 따라 회사에서 잘리는 경우도 있다. 가령 휴대폰은 겨울철에 물량이 적은 편이다. 김씨는 “어떤 휴대폰 제조공장에서는 갑자기 어느날 이번주에 정리하는 명단 발표한다고 말한 후에 정리할 사람 이름에 쫙 표시를 하더라. 그런 식으로 사람을 잘라버린다. 그러면 또 잘린 사람들은 용역업체에 부탁해 다른 공장을 찾아간다”고 말했다.

잘리면 다른 용역업체 통해 또 유랑
파견 노동자들의 이직 속도가 빨라진 것은 2007년 비정규직법이 개정되면서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김수현 연구원은 “공단 내의 상황을 좀 더 따져봐야 하지만,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것으로 비정규직법이 개정되면서 이직 속도가 빨라진 부분이 있다. 그러한 경향성은 앞으로 점점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26개로 제한됐던 파견직이 전 업종에 허용되면서 파견직 노동자가 늘어난 것도 이직 속도가 빨라진 원인 중 하나다.

문제는 무엇보다 처음 노동을 시작하는 20대가 파견직 노동환경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빠른 이직으로 조직화되지 않은 파편화된 노동현실에 익숙해지다 보니 자신의 권리에 대해 의식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은 “파견직에서 노동조합이 생기기는 상당히 어렵다. 제도권 교육에서 노동의 권리에 대해서 배우지 못한 노동자가 자기를 노동자라고 생각하기 어렵고, 노동 과정에서 정당한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 파견직이라도 정규직을 경험한 노동자와 처음부터 파견직으로 노동을 시작한 젊은 층은 다르다. 김수현 연구원은 “제도적으로는 상당수 파견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을 못한다. 노조에 가입할 기회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파견 노동자들은 금방 금방 이동을 하기 때문에 조직화되기 힘들다”면서 “과거에 정규직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파견직으로 빠르게 움직이더라도 그 공간 내에 조직을 만들려고 시도할 수 있지만, 그런 경험조차 없이 바로 파견직으로 들어온 젊은 친구들의 경우는 그런 고민조차 하기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일을 하다 작업장 휴게실에서 숨진 고 유성우씨 같은 사례가 정규직 사업장에서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경호 노무사는 “대기업이나 원청 정규직 직원에게 이런 일이 있어났다면 회사 측이 이렇게 대놓고 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동료들 간의 유대감이 있었기 때문에 노조가 없더라도 동료들 안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목소리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씨가 사망했을 당시 유씨의 사망에 대해 공장 내에서 문제를 제기한 동료는 없었다. 빠르게 이동하는 파견직 노동자들의 소속 없는 노동이 동료들을 이어주던 연대감의 고리마저 끊어낸 셈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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