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만화·영화가 알려준 ‘노동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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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노동’ 문제가 문화콘텐츠로 만들어지면서 대중의 호응 얻어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무지의 영역이자 금기의 영역이었다. 헌법에 보장돼 있는 노동3권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움직이는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1월.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무기계약직이 되면 노동3권이 보장된다. 툭 하면 파업할 텐데 어떻게 관리하려고 하느냐”고 발언했다. 즉각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에 대한 부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웹툰 ‘송곳’ㆍ영화 ‘또 하나의 약속’ 화제
제도는 노동자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노동자에게만 산재 입증 책임을 묻는 산재제도, 파업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손배가압류 제도 등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막아서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 경향신문

영화 <또 하나의 약속> | 경향신문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리라 해도 노동현장에서는 좀처럼 지켜지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노동의 권리보다 돈의 논리가 앞섰다. 최저임금제를 지키지 않는 사업장, 불법파견이 관행처럼 이루어지는 공장, 비정규직의 임금을 줄이기 위한 꼼수인 점오계약 등 자본은 법을 지키지 않거나 법망을 교묘히 비켜나갔다.

하지만 제도로는 좀처럼 지켜지지 않았던 노동의 권리가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2월 16일 네이버에는 만화가 최규석의 웹툰 송곳의 프롤로그가 선을 보였다. 

프롤로그에서는 한 청년이 중국집 아르바이트를 하다 오토바이를 망가뜨렸다는 이유로 6개월치 월급을 못받고 쫓겨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청년을 도와주기 위해 만화에는 구고신 부진노동상담소장이 나섰다. 구 소장은 욕설을 하는 중국집 사장을 상대로 각 회사 노동조합에 전화를 걸어 “신선각에서 시켜먹지 말라”고 전화를 건다. 

이에 위협을 느낀 중국집 사장은 결국 아르바이트생에게 체불된 임금을 돌려준다. ‘노동법’을 소재로 한 만화의 등장은 금세 화제가 됐다. 

만화가 최규석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프롤로그에서 임금체불 문제가 법이 아니라 힘으로 해결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많은 부분이 법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법이란 게 생기기 전에도 노동이 있었고 노동운동이 있지 않았겠나. 결국은 힘과 힘의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현실에서 법과 제도만으로는 노동문제를 제대로 풀어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송곳> 이전에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화제를 모았다. <또 하나의 약속>은 2월 19일 기준 관객 40만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문제를 조명하고 있는 이 영화는 <롯데시네마> 등에서 상영이 되지 않아 외압논란에 휩싸이면서도 대중들의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다.

과거 ‘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자칫 이념논쟁으로 치우치기 일쑤였다. 과거에는 금기시됐던‘노동’이 문화콘텐츠가 되면서 사람들에게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은 “청년실업이 워낙 심각해지니까 이런 것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쌍용차 문제처럼 한 사업장에서 24명이 죽을 정도로 노동자의 생존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어서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웹툰 <송곳>을 그린 만화가 최규석 | 경향신문

웹툰 <송곳>을 그린 만화가 최규석 | 경향신문

특히 쌍용차나 삼성 백혈병 문제처럼 일련의 노동 이슈들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과 얽히면서 대중들의 공감을 사게 됐다는 것이다. 하 소장은 “대중들이 ‘죽음’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일 때문에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다가, 이를 통해서 노동의 문제를 점차 자신의 일로 생각하게 된다”면서 “이러한 문화 콘텐츠들이 나오는 이면에는 제도권에서 해야 할 노동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은 물론 시장경제의 선봉에 서 있다고 하는 미국에서도 교육과정에서 ‘노동의 권리’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미국의 사회교과서에는 ‘청년실업’에 대해서만 교과서 16쪽 분량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청년실업 현상에 대해 교육을 받고 나온 유럽 및 미국의 노동자와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한국 노동자 사이에는 노동의 권리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제도교육 내에서 노동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교육청에서는 ‘민주시민 교과서’를 만들고 교과서 내에 노동 단원을 집어넣었다. 노동 단원에는 우리 사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문제가 들어가 있다. 

비정규직 확산으로 대표되는 노동 유연성 문제에서는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문제를 다룬다. ‘노동3권’을 다룬 ‘파업’에서는 ‘공무원의 파업’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룬다. 

마무리는 근로계약서 작성이다. 계약기간, 근무장소, 업무내용, 근무시간, 임금, 유급휴일 및 휴가 등 근로계약서에 들어가야 할 항목을 알려주며 학생들 각자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

새 흐름 분명하지만 아직은 작은 흐름
‘노동’을 다룬 교과서의 등장과 ‘노동’을 주제로 한 문화 콘텐츠의 등장은 노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변화된 시선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하지만 하 소장은 이러한 일련의 흐름들이 대세라고 말하기는 아직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송곳>이 네이버의 인기 웹툰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노동’을 소재로 한 웹툰이라는 점에서 화제는 됐지만 조회수가 적은 만화라는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이미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보는 것”이라며 “‘노동’에 대한 관심이 문화상품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그러한 관심들이 전반적인 대세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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