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이석기 사건’ 판결 이후

북한 추종 않는 혁명도 불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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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방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소위 ‘RO모임’에 나온 참가자들은 스스로를 ‘혁명가’로 생각했던 것 같다. 재판부는 RO모임이 실체가 있다며 이들을 “북한 대남혁명 전략을 추종하는 지하혁명조직”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혁명노선을 추종하지 않는 혁명조직이라면 어떨까.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다고 하긴 어렵지만 국내엔 자본주의체제 변혁을 이야기하는 사회주의 조직들이 여럿 활동하고 있다. 

내란음모 판결을 지켜본 사회주의 활동가들은 “현재 체제를 바꾸자고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보안법이나 내란음모로 기소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전했다.

사회주의 활동가 중에는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사람도 있다. 바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전 분회장이다. 현재 그는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추진위는 지난해 11월 정식으로 출범했다. 당시 출범식에서 이들은 “야만의 자본주의를 넘어 99% 노동자·민중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전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울러 추진위는 자본주의 체제 변혁, 현장 실천과 대중투쟁을 통한 노동자 민중권력 쟁취 등을 내걸었다. 현재 추진위는 실제 정당으로 전환해 6월 지방선거에 참여할지 여부를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김소연 무소속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경찰이 선거운동을 방해했다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2012년 대선 당시 김소연 무소속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경찰이 선거운동을 방해했다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김 대표는 내란음모 판결 이후 계속 진행중인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심판 과정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보는 논리를 그대로 가지고 오면 추진위의 향후 행보도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 대변 정당도 위헌 논란에
위헌정당 해산심판에서 정부 측 참고인으로 나온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통합진보당이 사회주의적이고 계급주의적인 색채를 가진 정당으로 보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 2월 3일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겠다는 진보당의 강령 자체가 헌법상 국민주권 원리를 위반한다고 봤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추진위처럼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겠다는 정치단체 역시 정당으로 전환될 경우 위헌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다만 김 교수는 “정치단체의 경우 정당해산 심판의 대상이 아니니 뭐라고 할 순 없다. 핵심은 계급정당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헌법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하는지 여부”라며 명확한 답은 주지 않았다.

김소연 대표는 “한국이 자살률 1위의 나라일 정도로 자본주의의 문제가 심각하다. 상위 1%를 대변하는 정치가 아니라 탄압받는 노동자 계급에서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인데 이것이 위헌적이라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그는 “내란음모 판결은 통합진보당만 노린 게 아니다. 세상을 바꿔보자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전반적인 탄압의 예고편”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와 함께 정부 측 참고인으로 나선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북한을 추종하는지 여부가 정당의 위헌성을 가르는 핵심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장 교수는 “정당이 추구하는 민주주의가 우리 헌법이 말하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느냐를 보려면 국민주권이나 대의제, 의회주의를 지키는지를 봐야 한다. 이걸 부정하고 있다면 NL(자주파)이나 PD(평등파)를 따질 것 없이 위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정당이 아닌 ‘정치단체’의 경우 법적으로 해산시키는 방법이 없다며 “그 부분은 ‘입법 공백’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계급주의를 내거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폭력혁명과 같은 것을 추구했는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현실의 수사기관은 사회주의 단체들의 불법성 여부를 어떻게 따지고 있을까. 황정규 노동해방실천연대(해방연대) 사무처장은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막무가내로 폭력혁명 집단으로 몰아가려 했다”고 말했다. 

해방연대 회원들은 국가보안법상 국가변란 선전선동혐의를 받았다가 지난해 9월 1심에서 무죄를판결받았다.

해방연대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함께 갈 수 없다”며 체제 변혁을 주장하는 단체다. 북한에 대해서는 “전체주의적인 야만”이라며 비판적 시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황 사무처장은 “해방연대는 민주적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라며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했다.

해방연대가 북한 정권에 비판적인 태도를 내놓은 만큼 재판은 해방연대의 친북성 여부가 아니라 ‘폭력혁명’을 주장하느냐 여부를 놓고 진행됐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실제로는 폭력혁명을 하려고 하는데 우회적으로 선거나 의회를 말하는 것”이라며 해방연대 회원들에게 5~7년의 징역형을 구형한 바 있다. 황 사무처장에 따르면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해방연대가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조차도 ‘좌파적 색채’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최근 내란음모 사건의 진행 경과를 보면서 황 사무처장과 해방연대 회원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성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든 내란세력, 폭력세력으로 몰릴 수 있는 두려움이 커졌다고 말했다. 재판에서 결국 무죄를 받아내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입은 상처도 너무 컸다.

“공안당국의 수사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단체활동에 심각한 타격이 온다.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단체에 대체 누가 와서 가입하려 하겠느냐. 심지어 피의자 지인의 직장에까지 경찰이 찾아가는 등 사실상 단체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혁명을 추구하는 사회주의 조직들은 몇 가지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 자본주의 체제자체에 문제점이 있으며, 이를 사회주의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다만 이들이 주장하는 ‘사회주의’는 유럽식 사민주의나 북한·소련식 사회주의와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당국 수사대상에 오르면 심각한 타격
이는 과거 민주노동당의 주장과 유사하다. 2011년 개정되기 전까지 민주노동당은 강령에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져온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발전시켜 새로운 해방공동체를 구현할 것”임을 명시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민주노동당의 후신이 바로 지금의 통합진보당이다.

법무부는 김상겸 교수와 비슷한 이유로 통합진보당의 강령 자체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통합진보당이 출범하기 직전 민주노동당은 위에 언급된 사회주의 관련 부분들을 강령에서 삭제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시절에도 없던 위헌 시비를 피할 순 없었다. 김인식 노동자연대다함께 운영위원은 “국민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고 노동자 계급이나 민중의 이름으로 이야기하면 위헌이라는 논리는 언제든 무한정 확장될 수 있다”며 “언제든 북한에 비판적인 사회주의 단체들도 겨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대표적 사회주의 단체 중 하나인 다함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한계가 있으며, ‘근본적 사회변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정기 간행물을 통해 마르크스나 레닌 등 과거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사상을 알리는 일도 하고 있다.

김 운영위원은 “국보법이 친북적 단체에 많이 적용되긴 했지만, 해방연대 사건에서도 볼수 있듯 NL만 겨냥해온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기 위해 NL들과 거리를 두거나 위축되기보다는 국보법이 모든 진보적 사상을 탄압하는 법이라는 점을 알리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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