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라기 토양을 품은 테루아 와인 뱅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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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라는 비록 총면적 1700ha에서 겨우 8만hl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지만, 그들만의 전통 양조 방식과 전형으로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사부아 지방과 함께 프랑스 변방의 와인으로 유명한 쥐라 지방은 쥐라산맥 서쪽 고원에 위치한 산악지대다. 프랑스 국토의 가장 동북방에 자리잡고 있으며, 부르고뉴 지방과 스위스 국경의 중간 지점에 있다. 쥐라산맥은 알프스의 서북부에 위치하며 라인과 론강을 나누는 분기점이다. 

필자는 이 지역의 대표 와인 산지인 샤토 샬롱과 아르부아를 방문하기 위해 사부아에서 북쪽으로 쥐라산맥을 관통하는 지방도로를 타고 쥐라의 주도 롱르소니에로 향했다. 차창 밖에 펼쳐진 쥐라산맥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뭔가 생경한 모습이었다.

쥐라산맥은 쥐라기 초·중·말기의 지층인 청색 석회암, 모래점토의 응결석과 백악질의 토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Highway of the Titans’로 유명한 A40번 고속도로가 관통한 장대한 쥐라산맥의 협곡을 보면 이곳은 여전히 진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쥐라 지방 최고 품질의 ‘뱅존’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 샬롱’의 마을 전경. 12세기에 수도원으로 건설됐다.

쥐라 지방 최고 품질의 ‘뱅존’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 샬롱’의 마을 전경. 12세기에 수도원으로 건설됐다.

쥐라 지방의 명칭은 쥐라기의 지질층을 보여주는 쥐라산맥과 고대에 이곳에 살았던 켈트족의 언어인 ‘juria’(숲)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유래가 무엇이든 쥐라는 2억년 동안 지구의 지질학적 시간의 척도와 진화를 보여주는 자연유산임에 틀림없다.

쥐라는 변방이지만 프랑스 역사에 잊지 못할 두 사람의 유명인을 배출하였다. 롱르소니에 출신으로 프랑스 대혁명 때인 1792년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작곡한 루제 드 릴과 불세출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다. 

특히 파스퇴르는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아르부아시 근교에 포도원을 소유하였고, 그 포도원은 아직도 이 지역의 대표 와인메이커인 앙리 마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파스퇴르는 우유의 산화를 방지할 수 있는 저온살균법의 개발로 우리에게 더 알려져 있지만, 양질의 현대 와인의 생산을 가능케 한 사람이기도 하다. 지면 관계상 와인 산업에 공헌한 그의 업적을 일일이 소개할 수 없어 아쉽지만 모든 와인 애호가는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발효 이론을 정립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와인메이커들은 와인의 품질은 전적으로 신의 뜻에 달렸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살았던 맨션이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어 방문하였으나, 영문 설명서 하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쥐라 지방의 주요 와인 산지인 ‘아르부아’ 마을에 있는 루이 파스퇴르 박물관.

쥐라 지방의 주요 와인 산지인 ‘아르부아’ 마을에 있는 루이 파스퇴르 박물관.

와인산업에 공헌한 미생물학자 파스퇴르
역사적으로 프랑슈 콩테 지방의 쥐라는 부르고뉴의 자치지역이었다. 13세기 초부터 20세기까지 대부분의 이곳 주민들은 알프스 산악지대의 방언인 Arpitan 언어를 사용하였으니 이 지역이 얼마나 서유럽 문명으로부터 고립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1790년 대혁명 때 프랑스의 주가 되었고, 1815년 빈 회의 이후 한때 스위스의 베른주에 통합되었다. 그 후 독일어를 사용하는 베른주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쥐라 지방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아 1978년 9월 24일 국민투표에 의해 베른주에서 분리, 1979년 프랑스의 쥐라주(23번째)가 되었다.

포도가 지닌 향기를 뛰어넘는 풍미
대부분 고도 250~500m에서 발달한 포도원은 쥐라기의 지층을 반영하여 백악질의 눈부신 석회암, 흑갈색과 청색을 띠는 특이한 화강암과 진흙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후는 대류성 기후로 버건디와 유사하나 대체로 온도가 낮으며 특히 겨울이 매우 춥다. 

그래서 포도가 익는 것이 더디며, 다른 지역과 달리 10월 하순에야 수확이 이루어진다. 서리 피해를 막기 위해 충분한 햇빛과 공기의 순환이 용이한 캐노피 형태의 기요 방식으로 포도나무를 키운다. 이곳에서는 샤르도네, 피노누아 외에 토착 품종인 사바냥, 풀사르, 트루소가 유명하다. 

쥐라 와인의 등급체계(AOC)는 전체 지역을 아우르는 코트 드 쥐라와 마을 명칭인 아르부아, 샤토 샬롱과 에투알이 있다. 쥐라는 비록 총면적 1700ha에서 겨우 8만hl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지만, 그들만의 전통 양조 방식과 전형으로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쥐라의 최고 와인 산지 ‘샤토 샬롱’에 있는 유명한 와인메이커 ‘도멘 베르데 봉데’의 고색창연한 와이너리 입구.

쥐라의 최고 와인 산지 ‘샤토 샬롱’에 있는 유명한 와인메이커 ‘도멘 베르데 봉데’의 고색창연한 와이너리 입구.

흔히 노랑 와인으로 불리는 뱅존, 이듬해 1월까지 짚이나 선반 위에 포도를 말려서 만든 스트로 와인인 뱅드 파이유, 강화 와인인 막뱅, 그리고 전통 방식으로 생산한 발포성 와인 크레망이 대표적이다. 

이 중 쥐라를 대표하는 와인은 단연 뱅존이다. 뱅존은 이 지방 토착 품종인 사바냥 100%로, 양조법은 쉐리와 매우 유사하다. 발효를 거친 와인은 228리터의 부르고뉴 통에 장장 6년을 숙성시킨다. 숙성기간 중 표면에 흰 꽃 같은 ‘플로르’라는 효모막이 형성되어 독특한 풍미를 조성한다. 

6년 동안 와인의 약 38%가 증발하는데, 이것을 와인메이커들은 천사의 몫이라고 한다. 뱅존은 전통적으로 클라블랭이라 불리는 62cl(620)의 병을 쓰는데, 아마도 증발 후 잔액이 62%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닐까? 뱅존은 50년 이상 보관할 수 있으며 마실 때는 적어도 반나절 전에 오픈해야 한다.

필자는 오후 늦게 쥐라 최고 품질의 뱅존을 생산하는 샤토 샬롱의 도멘 베르데 봉데를 찾았다. 12세기의 수도원 유적지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중세마을 샤토 샬롱에 있는 이 와이너리는 16세기에 만들어진 고색창연한 건물과 셀라를 가지고 있었다. 

‘도멘 베르데 봉데’에서 시음한 와인들. 맨 왼쪽이 쥐라의 대표 와인 뱅존이고 맨오른쪽이 스트로 와인인 뱅드 파이유다.

‘도멘 베르데 봉데’에서 시음한 와인들. 맨 왼쪽이 쥐라의 대표 와인 뱅존이고 맨오른쪽이 스트로 와인인 뱅드 파이유다.

바쁜 수확기여서 남편을 대신해서 농학자인 부인 샨탈 여사가 친절하게 값 비싼 뱅존 2006년산을 포함해 총 9가지 와인을 시음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일찍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외상 메테르니히가 나폴레옹에게 세계 최고의 와인이라고 극찬하였던 뱅존의 황금 빛깔이 찬란하였다. 신선한 야생의 포도향과 함께 드라이하면서도 버섯과 견과류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미묘한 미네랄의 잔향이 입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세계의 와인은 크게 두 가지 스타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포도품종 자체의 성격과 맛을 충실하게 표현하는 와인이고, 다른 하나는 그 포도가 자란 토양의 성격을 함께 표현하는 테루아 와인이다. 

어떤 와인이 더 좋은지는 전적으로 와인애호가들의 몫이다. 필자는 뱅존을 음미하면서 포도가 가지고 있는 향기를 뛰어넘어 표현할 수 없는 풍미를 체감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쥐라기의 토양을 표현한 것이라면, 뱅존은 억만년의 토양의 향기를 품은 테루아 와인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었다.

<글·사진 송점종 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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