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소득절벽

진보는 무심했고 보수는 배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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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절벽·소득불평등·노인 빈곤 문제에 대해 민주당은 대안을 내놓지 못했고, 새누리당은 기초노령연금 등 공약했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파기

소득절벽과 소득불평등, 그리고 노인 빈곤 현상이라는 세 개의 현상은 ‘고령화’라는 이름의 몸통을 공유한다. 현재진행형인 고령화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나왔다. 그럼에도 고령화에 잇따른 파급효과에 대해선 일치된 결론이 나오지 않는 데는 진보와 보수 진영의 시각차가 그 배경에 깔려 있다.

정책이 정치라는 필터를 거쳐 공약의 옷을 입을 때는 누구를 위한 공약인지와 공약을 꺼내든 효과에 대한 고민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12년 18대 대선과 박근혜 정부 집권 1년을 거치며 고령화로 인한 정치적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고령화가 보수화라는 결과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배경을 고령층 인구의 증가로 바라보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기초연금 여야정 협의체 회의가 열린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새누리당 김기현 정책위의장(앞줄 왼쪽)과 민주당 장병완 정책위 의장(앞줄 오른쪽)이 대화를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기초연금 여야정 협의체 회의가 열린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새누리당 김기현 정책위의장(앞줄 왼쪽)과 민주당 장병완 정책위 의장(앞줄 오른쪽)이 대화를 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저소득·고령층 유권자일수록 보수세력을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통설 역시 고령층의 소득불평등 확대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보면, 2012년 18대 대선에서 50대 이상 연령층 유권자 비율은 39.9%였다. 20대와 30대 유권자는 합해서 38.2%로 고령층 유권자 비율에 못미쳤다.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드러난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30대 이하 유권자가 전체의 48.3%를 차지했다. 반면 50대 이상 유권자는 지금보다 약 10%포인트 적은 29.3%였다. 20대와 30대의 인구 비중이 10%포인트 줄어든 반면 50대 이상 세대에서 그만큼의 비율을 가져간 것이다.

진보진영 정책 50대 마음 못얻어
그러나 한국에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과 유럽의 경우를 보면 고령화가 보수화로 직결된다는 공식은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최근 10년간의 정치상황을 살펴보면, 일본의 경우 고령화 추세는 멈추지 않았지만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경험한 바 있다.

고령인구의 비중이 높은 유럽의 경우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보수세력이 비교적 장기간 집권한 예가 있지만, 16~17%대의 고령인구 비율을 보이고 있는 북유럽 국가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건재한 것을 비롯해 프랑스나 그리스 등지에서도 고령화가 보수화로 직결된다는 가정과는 반대의 정치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고령화가 유발하는 경제적·문화적 요인도 고려해 해외의 경향을 참고해야 고령화와 보수화 움직임 사이의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노인 빈곤율이 OECD 최고 수준일 정도로 노후보장 정책이 미비한 한국에 비해 일본과 유럽은 비교적 오랜 공적 노후보장의 전통을 지니고 있어 단순비교는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가까운 일본의 공적연금 전통은 70년을 넘어선다. 1942년 노동자연금을 모태로 태동한 일본의 국민연금은 1985년에 와서 다양한 직종별 공적연금을 하나로 묶는 대수술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됐다.

유럽에서는 공적연금이 퇴직 전 과거 소득을 대체하는 비율이 높다. 연금소득대체율이 네덜란드(90.7%), 덴마크(78.5%), 오스트리아(76.6%) 등의 국가에서 7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난다. 39.6%인 한국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이다.

반면 노인 빈곤율은 50%에 육박하는 한국에 비해 10분의 1 이하 수준으로 관리된다. 이에 따라 노인 빈곤율이 네덜란드(2.1%), 체코(2.3%), 룩셈부르크(3.1%), 폴란드(4.8%) 등에서 5% 이하로 유지되고 있다.

김윤태 교수는 “현재의 50대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으로 직장을 떠나게 됐고 날로 소득이 줄어들어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가 되었다.

50대의 보수화는 경제 불안에서 시작됐고, 진보진영의 정책과 공약은 50대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단순히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고령층이 보수화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50대들은 소득절벽을 경험하기 시작하며 경제적 요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 정권에서 드러난 실책이 재연될 것을 우려했지만 민주당은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반면 박근혜 후보 진영에서 내건 ‘가계대출 해결’과 ‘70% 중산층’이라는 구호는 박정희의 신화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50대들 경제적 요인에 더 민감해져
진보세력은 소득절벽·소득불평등 현상과 같이 고령층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제점에 무관심했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반면 보수세력은 ‘정년 연장’과 ‘국민행복연금’과 같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정책을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 대선 당시 야권 내부에서도 정책 이슈 선점 전술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당시 민주당에서 정책분야에 몸 담은 한 관계자는 “50대와 60대 이상 노년 유권층을 공략할 정책이야 우리 진영에도 다 구비돼 있었지만 유세과정에서 그 정책들을 대상에 맞게 꺼내는 과정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대선이 종반으로 흐를수록 완전히 등을 돌린 고령층 유권자에게 정책을 어필할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관계자의 주장과는 달리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 진영에서 복지정책의 각론, 특히 고령층의 소득문제와 노후보장에 대해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했는지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문 후보 진영의 공약집에 나온 국민연금에 관한 부분도 국민연금의 향후 지속적인 사업방안에 대한 청사진만 제시돼 있을 뿐 정작 연금을 수령할 유권자 입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고령층 유권자의 시각에서 보면 국민연금이 유지되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당장 얼마를 받게 될 것인가의 문제가 빠진 셈이다.

반면 보수진영 역시 집권 초기부터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삐걱대는 모습을 노출했다. 대표적인 것이 기초노령연금 논란이다. 기초노령연금을 장애인연금과 통합해 모든 노인과 중증장애인에게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국민행복연금’ 안은 공약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공약 파기를 두고 애초에 실현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은 기획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오건호 위원장은 “당시 공약집에 쓰여 있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운영’이라는 문구는 일종의 암호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공약을 지키라는 요구에 맞서서 이 문구를 근거로 대면서 공약의 핵심은 처음부터 국민연금과의 연계를 통해 ‘20만원’을 만드는 데 있다고 주장할 여지를 남겨뒀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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