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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안철수 신당 호남쟁탈 불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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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지난해 연말 광주 방문 “지역독점 깨겠다” 선전포고…

당황한 민주 새해 업무 첫날 5ㆍ18묘지 찾아 “호남 없이 민주당 없다” 결의 다져

지난 12월 26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광주 방문은 이 지역의 터줏대감 민주당에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안 의원의 새정치추진위원회 설명회가 열린 광주시 NGO센터 대강당은 안 의원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일주일 전 안 의원이 고향인 부산과 대전을 방문했을 때와는 그 열기의 차원이 달랐다.

신당 지지율에 뒤진 민주당 위기감
안 의원은 지지자들의 열기 속에 깃들어 있는 의미를 읽을 줄 알았다.
그는 민주당의 지역 독점 구조를 깨겠다고 선언했다. 지방선거에서 절정을 이룰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 간 호남 공방전은 이렇게 막이 올랐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왼쪽)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지난 12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범정부적 대선개입 사안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대화하고 있다. | 박민규기자

민주당 김한길 대표(왼쪽)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지난 12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범정부적 대선개입 사안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대화하고 있다. | 박민규기자

민주당도 응답해야 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 등 지도부는 새해 업무 첫날인 1월 2일 광주 5·18묘지를 찾았다. 김 대표는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민주(是無民主)(호남이 없는 민주당은 생각할 수 없다)”라며 호남 수성의 의지를 다졌다. 4선의 추미애 의원은 조선대에서 가진 북 콘서트에서 “안철수 의원은 호남이 아닌 영남에 주력하라”며 포문을 열었다.

호남은 안철수 신당이나 민주당이나 놓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다. 안철수 신당에 호남은 ‘안풍’(安風)의 진원지다. 호남에서 바람을 일으켜야 영남과 충청, 강원, 그리고 수도권까지 그 바람을 몰고 올라올 수 있다. 민주당과 야권 주도권 싸움의 향방도 여기에 달려 있다.

민주당도 호남 수성에 사활이 걸려 있다. 전통적 기반인 호남을 안철수 신당에 내줄 경우의 타격과 후유증은 상상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어느 쪽이든 이 외나무다리 싸움에서 패하는 쪽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객관적인 전력만 보면 127명의 의원을 보유하고 있는 민주당이 단 2명(안철수·송호창)의 의원이 이끌고 있는 신당을 압도한다. 외형상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다. 하지만 전쟁은 의원들 머릿수만 갖고 하는 게 아닌 듯하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호남에서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은 민주당을 10%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다.

리얼미터의 12월 넷째 주 정당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이 17%, 민주당이 29.2%였고, 안철수 신당은 39.8%로 민주당을 압도했다. 한국갤럽의 조사(12월 셋째 주)에서도 안철수 신당은 호남에서 44%의 지지율을 기록해 민주당(13%)과 새누리당(9%)을 크게 제쳤다. 호남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지금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민주당의 홈그라운드에서 호남인들이 민주당에 대한 ‘묻지마 지지’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보인다. 정책컨설팅그룹 더 플랜의 양대웅 대표는 “호남인들은 민주당이 정권교체에 실패하고, 기득권화됐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민주당은 정당의 위기적 측면보다는 호남에서의 지지 철회에 더 큰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원래 지키는 쪽보다는 빼앗으려는 쪽의 공세가 더 거친 법이다. 안철수 신당의 행보에서도 민주당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결기가 읽혀진다. 특히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의 심장부인 광주를 직접 방문해서 민주당을 ‘낡은 정치세력’으로 규정한 뒤 열기는 더욱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안 의원의 신당 창당 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는 광주를 베이스캠프로 세력 확장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안철수 신당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 왔던 민주당도 소극적 방어전략에서 적극적 공격전략으로 바꿨다. 호남의 대표 정치인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현재 호남권에서는 안철수 신당의 태풍이 불고 있지만 실체는 없고 현상이 강할 뿐”이라며 “태풍은 계절에 따라서 강하게 오지만 오래 가지는 못한다”고 안철수 신당 돌풍을 깎아내렸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의 1차 대회전은 6월 지방선거다. 호남의 광역단체 세 곳 중 두 곳을 차지하는 쪽이 호남에 깃발을 꽂게 될 것으로 보인다.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는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호남에서 굉장히 치열한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민주당이 광주와 전남·북 중 세 곳을 모두 지켜내면 승리이고, 안철수 신당에 두 곳까지 빼앗기면 패배”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지지율 추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주당의 우위를 점치는 전문가도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의 안일원 대표는 “올해 지방선거는 과거와는 달리 국기문란 등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럴 경우 호남인들은 선거일로 다가갈수록 민주당 후보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 결과 따라 한쪽은 치명상
현재 판세를 보면 호남 3곳의 당 지지율에서 안철수 신당은 민주당을 월등히 앞서고 있다. 하지만 인물론으로 가면 분위기가 좀 달라진다. 거론되는 안철수 신당 후보들이 민주당 현역 광역단체장 또는 민주당 후보들을 확실하게 앞서는 곳은 없다. 당 지지율에서는 안철수 신당이 앞서지만 인물에서는 민주당이 앞서는 형국이다.

최대 관전 포인트는 민주화의 성지이자 호남 정치 1번지인 광주시장을 누가 가져가느냐다. 광주는 전통적으로 야당 표심의 향배를 좌우하는 풍향계 역할을 해왔다. 특히 지난 2002년 대선 경선에서 광주는 노무현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당시 대세론을 엎고 질주했던 이인제 후보를 쓰러뜨렸다.

민주당에서는 강운태 광주시장이 재선을 노리고 있으며, 4년 전에 민주당 광주시장 후보 경선에서 아깝게 탈락한 이용섭 의원과 강기정 의원도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안철수 신당에서는 ‘윤장현·장하성’ 카드가 거론된다. 윤장현 광주전남비전 21 이사장은 시민단체인 YMCA 이사장 출신이고.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 네트워크 내일’의 소장을 맡고 있다.

전남지사 선거에는 민주당에서 이낙연·주승용 의원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양보 없는 집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안철수 신당에선 나비축제를 성공시킨 이석형 전 함평군수와 신당 창당 준비기구인 새정치주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효석 전 의원 중 한 명이 전남지사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전북은 호남에서 ‘안풍’이 가장 거세게 불고 있는 지역이다. 김완주 현 지사가 불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민주당에서는 김춘진·유성엽 의원과 송하진 전 전주시장이 표밭갈이에 나서고 있다. 안철수 신당에서는 3선 의원을 지낸 강봉균 전 의원이 거론되는 가운데 안철수 신당 합류를 선언한 조배숙 전 의원도 ‘전북 최초 여성도지사’를 노리고 있다. 안철수 신당은 광주와 전북에서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의 호남벌 전투는 이미 막이 올랐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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