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철도파업 이후

“공공부문 민영화문제 중요한 계기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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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석 정의당 의원과 <철도의 눈물> 쓴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대담

22일간 진행됐던 철도노조 파업은 여야가 국회에 철도산업발전소위를 설치하면서 철회됐다. 하지만 철도노조 지도부가 “파업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현장투쟁’으로 바뀐 것”이라고 말했듯이,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나 손배가압류 문제 등이 당면한 문제이며, 아울러 지난 12월 28일 총파업에서 드러났던 민영화 반대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어떻게 반영해 나갈지에 대한 전망이나 계획 등도 남아 있는 숙제다.

<주간경향>에서는 철도 민영화 문제를 제기해온 정의당 박원석 의원과 <철도의 눈물>을 통해 철도 민영화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알려 왔던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의 대담을 마련했다.

지난 1월 2일 국회에서 박흥수 연구위원(왼쪽)과 박원석 의원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지난 1월 2일 국회에서 박흥수 연구위원(왼쪽)과 박원석 의원이 대담을 나누고 있다.

박원석 “철도 민영화 문제를 이슈화시키고 여기에 반대해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는 전체 과정에서 철도노조와 민주노총, 시민사회 및 전문가들의 네트워크가 굉장히 잘 작동했다. 여기에 정치인들까지 포함한 네트워크로 확장해 국회 철도산업발전소위에 제 역할을 요구하고 압박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는 갈등 해결 모델이라는 게 없었다. 특히 당사자들과 의사결정자들이 모여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 해결을 하는 선례는 거의 없었다. 

사실 국토위 산하에 소위를 두는 방식이 갈등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식이었나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이 틀의 중요성은 여전히 있다. 여기에서 작은 진전이라도 이루어낸다면 또다른 형태의 사회적 대화나 타협을 이어갈 수 있는 모멘텀이 형성될 수 있다. 그런 만큼 그 계기를 살려야 한다.”

박흥수 “지금껏 철도 민영화 정책은 국토부가 모든 걸 주관했다. 국토부 입장에서는 소위 구성으로 여야가 형식적으로나마 메인이 됐고, 그 속에 각 파트별로 국토부와 철도노조가 당사자로 들어와 있는 구도가 굉장히 불쾌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서 국민의 대표인 여야, 그리고 각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어떤 토론과 협의과정을 거쳐서 아주 작은 결과물이라도 내놓는다면 하나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차후에 이런 극단적인 사회갈등 문제가 빚어지면 이런 형태로 얼마든지 논의기구를 구성해 의견들을 취합하고 그 속에서 대안을 마련하는,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아주 중요한 대화와 타협의 과정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박원석 “우려되는 점은 국회가 불나방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론이 있으면 달려들어서 하다가, 여론이 식으면 금방 내려놓는 게 체질화돼 있다. 사실 민주당은 이번 철도 민영화 문제와 관련해 민주노총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물의를 일으키고, 그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여론이 따가워지니까 그제야 움직였다. 늦어도 한참 늦은 대응이었다. 민주당은 사회적 갈등 현안에 대해 중간층 여론의 역풍을 너무 의식해 소극적인 의사결정 태도를 보여 왔다. 이번에도 ‘불법파업에 동조한다’는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 것 같다.”

박흥수 “사실 이 문제를 실제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관리인으로서 여야 의원들의 실력이나 태도에 굉장히 많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철도 민영화 문제가 과거에는 언론에 메인 이슈로 계속 떠 있었지만 검색어에도 등장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리면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에서 철도 민영화 문제를 소멸하는 의제라고 생각할까봐 우려스럽다. 의제가 소멸된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의제가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정부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을 깨닫는 게 좋다.”-박원석

“정부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을 깨닫는 게 좋다.”-박원석

박원석 “그래서 국토위 산하에 만들어놓은 철도소위에만 의존하지 않는 전략을 세워서 조금 더 내용적으로 풍부하고 심화된 활동이 필요하다. 정부는 경쟁체제 도입이 효율성을 갖는다고 했지만 그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했다.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그냥 정부를 믿으라는 것뿐이었다.

사실 국민들도 다 안다. 지금 철도 민영화 이슈를 바라보는 여론이 나쁘지 않다. 그런 만큼 철도 민영화를 비롯한 민영화 문제가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지거나 수면 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잘 유지하면서 국토위 소위가 역할을 할 수 있게 압박을 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소위에 참여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이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 수 있게 할 만큼 센 압박이 필요하다. 그런 각오가 아니라면 소위 구성은 여야 합작 사기다. 수천명의 철도노동자들이 자기 직업과 생계를 내걸고 22일이나 파업을 했는데 국회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국회가 정말 무책임하고 무능한 것이다.

아마 정부의 전략은 ‘우리가 합의한 것이 아니다.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것이고,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간다’는 식으로 법인 추진에 속도를 낼 것이다. 국회가 여기에 제동을 못건다면 역사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파업을 멈추게 하는 게 문제 해결이 아니라 실제 파업을 해야 했던 원인을 해결하는 게 문제 해결이다.”

박흥수 “여야가 합의서를 작성할 때 정부로부터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는 명시적으로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허 발급의 절차적 정당성과 면허 발급의 근원적 의미 등의 문제를 소위에서 다시 한 번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위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굉장히 단순화될 수밖에 없다. 민영화 방지법을 어떻게 만드느냐도 문제다. 여기에 대해서 새누리당은 국토부와의 협력과 연계 속에서 작정하고 들어올 게 분명하다. 그러다 보면 공전에 공전을 거듭하기가 쉬운데, 그렇다 하더라도 전체를 묶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철도파업 과정을 보면서 심각하게 느꼈던 게 정치의 부재였다. 철도 민영화는 중요한 사회 어젠다이다. 그런데 정치가 한국이 철도를 어떻게 운영할 건지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불법파업, 정쟁 이런 이야기만 하더라. 소위라는 합의의 결과가 사실 만족할 만한 건 아니다. 제대로 된 정치라면 여야, 다수당·소수당을 막론하고 의원들이 모여 원탁회의를 만들고, 협의를 하고, 강제력을 가진 기구를 만들었어야 한다.

여기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의원들이 모여 국토부나 철도공사를 설득하고 철도노조에는 ‘우리가 이렇게 논의구조를 만들었으니 당신들은 복귀해라’는 과정이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지금 소위 구성 과정은 새해를 시작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감과 정치적 고려만이 작동해서 나온 결과인 것 같다.”

박원석 “여전히 가장 중요한 건 정부의 태도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을 깨닫는 게 좋다. 철도노조가 22일 동안 파업을 하면서 정부도 사실은 대가와 비용을 지불했다. 정부가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과거처럼 국민의 발을 볼모로 한다는 식의 논리를 편다고 파업의 정당성이 무너지는 상황이 아니다.

민영화나 경쟁체제 도입에 대해 상당한 국민들이 합리적 의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론은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정부가 문제 해결을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은 국회를 통해 마련한 당사자들간 대화의 틀을 최대한 활용하고, 거기에서 문제 해결의 길을 찾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또 이런 비슷한 갈등이 재현될 수밖에 없다.”

“과거보다 훨씬 많은 파면, 해고 등의 중징계들이 남발될 거 같아 우려스럽다.” -박흥수

“과거보다 훨씬 많은 파면, 해고 등의 중징계들이 남발될 거 같아 우려스럽다.” -박흥수

박흥수 “징계나 손배가압류에 대한 정부의 태도 또한 문제다. 철도노조는 그동안 국토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에 대해 합리적 의심에 근거한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응답한 적이 없다. 파업은 이 불통구조 속에서 발생한 문제다. 그러나 징계나 손배가압류는 이를 한쪽에만 전가시키려는 것이다.

과거보다 훨씬 많은 파면, 해고 등의 중징계들이 남발될 거 같아 우려스럽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쟁의가 이런 식의 반복된 결과를 낳는 현실이 참담하다. 2008년 독일 철도노조가 10개월 동안 파업을 했는데 그 기간 중 노동조합 간부가 구속되거나 손해배상을 하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한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그 사회의 성숙도를 진단할 수 있다.

갈등은 갈등 주체들 상호간의 문제이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런 파장이 일어나면 이는 그 사회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런데 재정적 문제를 포함한 그 파장의 모든 책임을 그 당사자의 극히 일부에게 전가해버린다면 그 사회는 굉장히 비극적인 사회일 수밖에 없다. 국토부는 내심 철도노조를 손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국토부를 비롯해 정부 및 공안라인의 생각은 강성노조인 철도노조를 제대로 손봐야 향후 공기업 다른 노조에 본보기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철도노조를 정리하면서 사회적 갈등구조에서 노동문제를 중요한 쟁점으로 형성할 수 있는 세력 자체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박원석 “징계 및 손해배상소송은 소위 ‘원칙’대로 하면서 또 한쪽에서는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되는 말이다. 한쪽에서는 총을 들이대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대화한다는 것 아닌가. 국회의 중재에 의해서 파업이 멈춘 상황이라면 이 문제를 더 이상의 큰 갈등을 초래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정상적이고, 이걸 최소화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맞다.

지금 말했듯, 정부는 ‘이 참에 노조를 손보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이는 민영화 반대에 힘을 빼기 위한 목적도 있다. 과거에 영국에서 대처 총리가 민영화를 강력히 추진할 때도 노조를 공공의 적으로 삼아서 노조를 깨부수면서 추진했다. 현 정부가 이 모델을 여기서 해보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성공 못한다. 파업과정에서 누가 명분을 가졌고, 누구의 설명이 더 설득력 있게 국민의 여론을 움직였느냐를 따져본다면 정부가 완패했다.”

박흥수 “여론의 거대한 흐름이 바뀌고 있다. 사회의 모멘텀이 바뀌고 있는데 정부·여당은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 민심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철도노조가 2003년, 2009년 두 차례 파업을 했었는데 그때 언론 보도도 지금과 똑같았다. ‘귀족노조’, ‘철밥통’ 이런 프레임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시민들이 언론 보도에 동의하며 파업을 비난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조합원들 또한 달라졌다. 과거 파업할 때 민주노총과 연계하면 ‘우리가 민주노총 전위부대냐,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들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그런 게 없었다. 민주노총이 침탈당하면 막으러 가야 하고, 위원장을 구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들을 했다.

한국 사회가 지난 10년 동안 끔찍하게 변하면서 노동자와 시민들의 생각도 변화한 것이다. 그러나 유독 언론과 정치인들만 10년 전 녹음기를 계속 틀어놓고 있다. 민영화 문제에 대해서는 이번에 철도노조가 우리 사회에 의제를 던진 셈인데, 파업이 종료됐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향후 한국 사회에 작동할 여러 민영화 전선을 포괄하면서 이번에 모인 힘들이 앞으로도 계속 발현될 것으로 본다.”

박원석 “철도 민영화 문제는 이후에 공공부문에 연이어서 닥칠 문제들이기도 하다. 지금 의료산업, 물산업을 비롯한 공공성이 강한 산업에 시장주의적 요소들을 도입하려는 움직임들이 많아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5년 내내 기간산업이나 공공부문을 매각해 민영화하고 영리화하려고 할 것이고, 이를 둘러싼 충돌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민영화가 과거에는 국민들에게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진 적이 있지만, 이제는 민영화가 삶의 질을 더 떨어뜨릴 수 있는 잘못된 정책이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다른 공공부문에도 들이닥칠 수 있는 민영화 문제에 대해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이 상당히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사진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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