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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독립국 남수단 ‘내전의 총성’ 뒤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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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분쟁의 중심에 선 것은 살바 키르 대통령과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이다.

아프리카 동쪽에 있는 남수단에서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군과 반정부군 모두 민간인들을 구분 없이 공격해 학살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12월 중순 600명 이상이 숨졌다고 했는데, 이후 열흘 남짓한 기간에 사망자 추정치는 수천명으로 늘었다. 평화유지활동을 하고 있는 유엔남수단임무(UNMISS)도 반군의 공격대상이다. 이 임무에 한국 파병부대 ‘한빛부대’도 들어가 있어, 한국에서도 남수단 사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이번 사태를 이해하려면 먼저 남수단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남수단은 수단의 남부에 있던 3개 주(州) 즉 바흐르 엘가잘, 그레이터 어퍼 타일, 에쿼토리아가 2011년 분리독립하면서 형성된 신생국이다. 독립국가가 된 지 이제 겨우 2년 남짓, 현재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다. 수도는 남쪽의 주바인데, 좀더 중심부에 있는 람시엘로 천도할 계획이다.

남수단의 살바 키르 대통령(맨 왼쪽).

남수단의 살바 키르 대통령(맨 왼쪽).

수단은 20세기 초 영국·이집트 공동통치 하에 들어갔다가 1956년 독립했다. 수단은 과거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블랙아프리카)로 분류되곤 했지만 지금은 아랍계가 커져 중동북아프리카(MENA)로 분류된다. 

반면 남수단은 명백한 블랙아프리카다. 수단인들이 대부분 무슬림인 것과 달리 남수단에는 기독교와 전통 종교가 섞여 있다. 수단의 공식언어는 아랍어인 반면, 남수단은 독립 이전부터 영어를 공식언어로 삼아왔다.

수단 북부는 홍해에 면해 있지만, 갈라져나온 남수단은 수단, 케냐,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 등에 둘러싸인 내륙국가다. 넓이는 62만㎢에 인구는 1100만명 정도다. 자원부국이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구매력 기준)은 지난해 1000달러 수준인 빈국이다. 주류 부족은 딩카, 누에르, 실루크, 아잔데 등이다.

2011년 수단에서 분리독립
남수단은 독립까지 기나긴 싸움을 거쳤다. 수단 중앙정부에 맞서 일어선 것은 1956년(1차 수단 내전)이었다. 그 결과 1972년 남부수단자치지역이 만들어졌다. 1983년 2차 내전이 일어났다. 대량살상 끝에 양측은 2005년 포괄적 평화협정(CPA)을 맺었다. 

2차 내전과 평화협상을 주도한 인물은 수단인민해방군(SPLA)의 존 가랑이었다. 가랑은 협상이 타결된 뒤 잠시 수단의 부통령을 지내기도 했으나, 한 달도 못돼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숨졌다. 그의 갑작스런 사망은 남수단의 국가건설에 큰 장애를 부른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남수단은 협정에 따라 2011년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98.83%가 독립에 찬성했다. 그 해 7월 9일 남수단이 탄생했다. 내전과 독립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 것은 석유였다. 수단이 석유 부국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유전의 80%가 남수단에 있다. 

수단과 남수단의 경계선 부근에 유전들이 몰려 있고, 수단은 이 유전들에서 석유를 끌어다 내다 판다. 다시 말해 남수단은 유전만 갖고 있고, 송유관과 정유시설과 수출항은 수단에 있는 상황이다. 수단은 잘 알려진 대로, 중국과 맹방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남수단의 독립을 물심양면 지원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 위키백과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 위키백과

남수단은 수단과 분리하면서 석유수출에 따른 수익을 반반씩 나눠갖기로 했지만 독립 이후 계속 자신들 지분을 늘려달라고 요구해왔다. 남수단 경제의 95%, 국가재정의 98%를 석유 수입이 차지하고 있으니, 사실상 석유 외에는 경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구글어스로 수도 주바를 확대해보면 잘 구획된 주거지들이 보이지만, 실은 모두 포장 없는 흙길이다. 

하지만 새로 출범한 남수단 정부는 인프라가 없고 성인 문자해독률이 27%밖에 안 되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금융재정부서 관리들이 유능한 덕에 재정계획을 잘 짜고 기반을 다져왔다. 수단과 남수단의 공동부채가 380억 달러에 이르지만 ‘다행히도’ 제3세계 빈국 망가뜨리기로 악명 높은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채권은 그중 53억 달러뿐이다. 그 대신 파리클럽(채권국 클럽)이나 그 외 나라들과 쌍무협정으로 빌려온 돈이 많다.

그런데 결국 리더십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현재 분쟁의 중심에 선 것은 살바 키르 대통령과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이다. 키르는 하급장교에서 출발해 반군의 2인자로 성장했고, 가랑과 함께 수단과의 분리독립 협상에 참여했다. 

키르는 주류인 딩카 부족 출신이며, 미국의 조지 W 부시가 준 모자를 상징처럼 쓰고 다닌다. 공학박사 학위를 가진 마차르는 누에르족이다. 미국에서 태어났고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독립투쟁 당시부터 수단과의 완전한 결별을 주장해온 강경파다. 한때 가랑에 맞서 별도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내전 이면에는 종족·지역 갈등
키르와 마차르는 독립 뒤 각기 대통령과 부통령을 맡았다. 그런데 지난 8월 대통령이 마차르를 부통령 자리에서 내쳤다. 이에 맞서 마차르가 쿠데타를 시도했고, 이것이 현재의 준 내전 상황으로 치달았다. 현지언론인 수단비전은 이번 싸움을 ‘독립투쟁을 이끌던 장군들의 전쟁’이라고 보도했다. 

[세계]신생 독립국 남수단 ‘내전의 총성’ 뒤덮나

키르는 가랑의 후계자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SPLA 내에서조차 ‘국가를 이끌기엔 카리스마가 없고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당초 마차르는 2015년 정권교체 때 권력을 물려받는 것을 꿈꿨는데, 위기감을 느낀 키르가 부통령에서 내쳐버리며 선제공격을 하자 쿠데타 기도로 반격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예측불허에 돌발행동을 잘 하는 마차르가 이 사태를 어디로 끌고갈지는 알수 없다.

이번 대립의 이면에는 두 사람의 갈등, 두 사람을 배출한 종족의 갈등과 함께 지역 갈등도 혼재한다. 마차르는 유전지대인 중북부 종글레이·유니티주에 둥지를 틀고 정부에 맞서고 있다. 마차르는 현 정권이 독재로 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면에는 유전 수입을 둘러싼 싸움이 자리잡고 있다.

남수단 석유에 의존하는 수단은 물론이고, 여러 나라가 이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말레이시아·인도가 합작기업을 만들어 남수단 유전을 개발하고 있고, 프랑스의 토탈도 석유를 캐내고 있다. 인도는 평화유지군 2200명을 파병한 최대기여국이기도 하다.

한국을 비롯해 55개국이 이 나라에 파병했고, 39개국은 경찰을 지원했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요청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남수단 평화유지 병력을 현재의 7000명 정도에서 총 1만2500명으로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제 남수단 문제는 ‘국제사회 개입’으로 향하고 있다. 내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분쟁 당사자들에게 ‘정치적 타협’을 압박하기 위한 군사배치다. 개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갓 태어난 남수단은 다시 내전에 들어가고 동아프리카 전체가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구정은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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