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올해의 걸림돌 판결

‘플래시 몹’ 예술표현의 자유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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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판결’로 선정, 안도현 시인에 대한 배심원 무죄 평결 뒤집은 것도 나쁜 판결

‘플래시 몹’(flash mob)은 불특정 다수가 특정 장소에 모여 짧은 시간 약속된 행동을 한 뒤 순식간에 흩어지는 행위로 일종의 문화예술적 표현으로 인식된다.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형태의 플래시 몹이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파업만류 설명회 판결은 사용자 편향
대법원 2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고용노동부의 청년유니온 노조설립 신고 반려를 규탄하기 위해 플래시 몹 퍼포먼스를 한 청년유니온 준비위원회 위원장인 김영경씨(33)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플래시 몹의 방식을 취했더라도 정치·사회적 주장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형태를 띠었다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전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지만 대법원은 이 플래시 몹을 집시법상 신고대상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이 청년유니온의 플래시 몹을 불법집회로 판결한 데 대한 항의의 의미로 문화연대 회원들이 플래시 몹을 보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대법원이 청년유니온의 플래시 몹을 불법집회로 판결한 데 대한 항의의 의미로 문화연대 회원들이 플래시 몹을 보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올해의 판결’ 선정위원단은 이 판결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반 시민들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권리인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심각하게 축소시켰다며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선정했다. 집시법 제15조는 예술 등에 관한 집회의 경우 사전신고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김씨의 플래시 몹을 ‘실질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정치·사회적 구호를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는 의도로 개최된 집회’라며 미신고집회 대상에서 배제했다.

이 판결이 정치를 소재로 삼았거나 정치적 요소를 담은 예술 및 표현의 자유의 보장범위를 심각하게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선정위원단의 판단이다. 선정위원단은 “장차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소지가 큰 판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사용자 측이 노동조합 조합원을 상대로 파업만류 설명회를 개최한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도 사용자 편향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사측의 파업만류 설명회를 저지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전모씨 등 전국철도노동조합 조합원 10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파업을 하루 앞둔 날 사측 간부가 파업만류 설명회를 하는 것은 명백히 노조활동을 방해하는 행위임에도 대법원은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2부(주심 김소영 대법관)가 (주)효성의 울산화학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근로자 김모씨(32) 등 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한 것도 남녀고용평등법상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법원은 회사가 기능직 근로자와 생산직 근로자에 대한 임금기준을 다르게 설정함으로써 그 결과 같은 공정단계에서 근무하는 여성근로자와 남성근로자의 임금에 차등이 생겼더라도 남녀차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진도 민간인 희생자 고도 입증책임 요구
집단 괴롭힘을 당한 동성애자 고교생의 자살에 대해 학교의 책임을 부정한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의 판결도 걸림돌 판결로 꼽혔다. 학우들로부터 “뚱녀” “걸레X” 등의 욕설과 폭행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에 대해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그 경우 학교에 보호감독의무 위반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안도현 시인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전원일치의 무죄평결을 뒤집고 ‘배심원의 의견은 법관의 직업적 양심과 근본적으로 충돌할 경우 기속력이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 전주지법 형사2부(은택 부장판사)의 판결도 걸림돌 판결로 선정됐다.

판결문에 ‘법률전문가가 아닌 배심원이 유무죄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다소 지역적·감성적으로 보이고, 때로는 정치적 색채가 짙어보이더라도 존중해야 한다’는 표현을 명시한 것은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원의 판단을 폄훼하고 재판부의 판단을 정당화한 최악의 판결문으로도 꼽혔다.

올해의 10대 걸림돌 판결 한줄평

(자료: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무순)

●<최악의 걸림돌 판결> 정치성 띤 플래시 몹 예술행사는 집시법상 사전신고 대상인 집회에 해당(대법원)
“정치적 예술 표현은 예술이 아니라는 것인가?”

●사용자 측이 노조원을 상대로 파업만류 설명회를 개최한 행위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사용자 여러분! 앞으로는 설명회만 개최하면 부당노동행위는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위반에 따른 남녀차별을 매우 협소하게 인정(대법원)
 “여성노동자들은 이래저래 힘들다. 심지어 여성대법관도 이해 못한다”

●진도 민간인 희생에 대한 국가배상청구 사건에서 고도의 입증책임을 요구(대법원)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인 판결”

●환경운동연합의 산양분유 세슘검출 보도에 대한 일동후디스의 손해배상청구 인정(서울중앙지법)
 “시민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알 권리를 무시한 판결”

●국가보안법 위반 ‘왕재산 사건‘ 국가기밀 누설죄 인정(대법원)
 “국가보안법은 증거법칙이 통하지 않는 대단한 영역인가”

●동성애혐오적 집단괴롭힘으로 인한 학생 자살에 있어 학교 측의 책임을 부정(대법원)
 “폭력으로 인한 자살의 몰이해에 기반을 둔 기계적 판결”

●독신자가 친양자 입양을 할 수 없도록 한 민법조항 합헌 결정(헌법재판소)
 “가족관계에 대한 보수성을 드러낸 헌법재판소”

●안도현 시인 사건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전원일치 무죄평결을 뒤집은 판결(전주지법)
 “배심원들을 무시하려면 확실하게 무시하던가…선고유예는 또 뭡니까?”

●형기를 마친 사람에게도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규정 합헌 결정(헌법재판소)
 “보안처분제도의 망령이 다시금 떠오른다”


<류인하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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