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뉴 와인의 꽃, 코트 드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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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1월 셋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 와인경매 행사는 오텔디외를 부르고뉴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부르고뉴의 와인 중심 지역 코트 도르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코트 드 본은 북쪽 황금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코트 드 뉘 지역보다는 전반적으로 한 등급 아래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랑 크뤼급 와인을 생산하는 본의 북쪽 인근에 위치한 코르통, 남쪽 근교의 몽라세는 코트 드 뉘 지역을 능가하는 개성 있는 와인으로 유명하지만, 대부분 지역이 프르미에급이나 빌라주급의 와인을 생산한다.

그러나 이 지역이 코트 드 뉘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있다. 본을 중심으로 하여 부르고뉴 와인산업을 이끌고 있는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본에 본사를 두고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네고시앙(와인상)과 한때 부르고뉴의 부와 영광을 상징한 오텔디외(병원)의 와인경매 행사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석회암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특이한 경관의 생 로맹 와인 마을. 가볍고 산뜻한 화이트와 레드를 생산한다.

석회암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특이한 경관의 생 로맹 와인 마을. 가볍고 산뜻한 화이트와 레드를 생산한다.

필자는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는 일요일 아침 아직도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색창연한 중세도시 본의 중심지에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인 오텔디외를 찾았다. 

오텔디외는 영국의 동맹국가로 중세에 프랑스 왕국과 자웅을 겨루었던 막강한 부르고뉴 공국의 재상 니콜라 롤랭과 그의 세 번째 부인 기곤 드 살랭이 재산을 기부하여 1443년에 설립한 사회복지시설로, 가난하고 병든 자를 위해 세워진 일종의 자선병원이었다.

부르고뉴의 전통양식인 기하학적인 모자이크 타일의 지붕으로도 유명한 이 병원은 1988년까지 장장 550년 동안 운영되어 오다 현재는 일반인에게 유료로 개방되고 있다. 매년 11월 셋째 주 일요일, 이곳에서 열리는 와인경매 행사는 오텔디외를 부르고뉴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오텔디외 와인경매는 병원의 자생적인 운영을 위해 병원이 소유하고 있는 60ha의 포도원에서 생산된 와인 판매를 목적으로 1851년에 시작되어, 2005년부터는 세계적인 경매전문회사 크리스티에 의해 150회 넘게 진행되고 있다.

전세계에서 모여드는 와인축제
이 와인경매가 중요한 이유는 이곳에서 결정된 가격이 그 해의 부르고뉴 전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 가격과 품질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빈티지가 좋지 않았던 1956년과 1968년에는 경매가 실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경매에 더욱 신뢰를 갖게 한다. 또한 이 경매는 병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고 228리터(288병)의 배럴 단위로 판매하기 때문에 개인은 경매에 참석하기가 쉽지 않다.

경매가 있기 전 금요일부터 3일 동안 열리는 와인축제인 레 트루아 글로리외즈는 본의 또 다른 관광 상품으로 유명하며, 세계의 와인거상들과 와인애호가들이 모여든다. 단순히 자선병원의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판매방법이 병원이 문을 닫은 후에도 부르고뉴의 와인산업을 꽃 피우게 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는 온통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오텔디외를 떠나면서 와인이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롤랭의 숭고한 박애정신은 계속될 것이라고 느꼈다. 실제로 1457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만㎡ 이상의 포도원이 오텔디외에 계속 기부되고 있다.

부르고뉴의 부와 영광을 상징한 오텔디외. 기하학적인 모자이크 타일의 지붕과 이곳에서 열리는 자선 와인경매로 유명하다.

부르고뉴의 부와 영광을 상징한 오텔디외. 기하학적인 모자이크 타일의 지붕과 이곳에서 열리는 자선 와인경매로 유명하다.

부르고뉴의 와인산업을 꽃 피우게 한 또 다른 축은 네고시앙 제도이다. 원래 네고시앙은 상거래에서 중개인을 말하지만 와인산업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에서의 와인산업은 크게 포도 재배자, 와인 생산자, 그리고 판매자(네고시앙)로 그 역할이 오랫동안 나뉘어져 왔다. 현재는 네고시앙의 역할이 점점 축소되어 포도 재배자가 직접 와인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대단위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는 보르도의 유명한 샤토들과는 달리 부르고뉴에서는 소규모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어 이를 일관된 품질의 지역와인(AOC등급)으로 통합·생산할 수 있는 네고시앙의 역할이 필요하였다. 대형 네고시앙들은 직접 포도밭을 소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농가로부터 포도나 와인을 구매하여 자신들의 양조장에서 와인을 배합하거나 제조한 뒤 자신들의 브랜드로 판매한다.

따라서 한 와인메이커가 포도밭 전체를 소유·생산한 모노폴(Monopole) 와인을 최고로 친다. 현재 부르고뉴 와인의 65% 이상을 네고시앙들이 생산하는데, 필자는 이들 중 대표적인 대형 네고시앙의 하나인 메종 루이 자도(Maison Louis Jadot)를 찾았다.

와인산업 꽃피운 네고시앙의 역할
본 시내에 예술적이고 현대적인 건축물로 지어진 와이너리에서는 한창 수확한 포도를 선별하고 발효탱크를 준비하고 있었다. 1859년 벨기에의 루이 앙리 드니 자도에 의해 설립되어 150년 동안 3대에 걸쳐 세계적인 와인메이커로 성장하였다. 현재 직접 소유하고 있는 105ha를 포함, 총 210ha의 포도원에서 가장 전형적인 부르고뉴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직도 중세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부르고뉴 와인산업의 중심지 본의 고색창연한 거리 풍경.

아직도 중세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부르고뉴 와인산업의 중심지 본의 고색창연한 거리 풍경.

“포도원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고, 단지 우리는 관리인일 뿐이다”(The land does not belong to us: we are merely its caretakers)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루이 자도는 테루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는데, 인간의 역할을 최소화하기 위해 1996년부터 자체 제작한 오크통을 이용하여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다.

마케팅 담당 피에릭 프레보의 안내로 수많은 오크통이 잠들어 있는 셀라에서 무려 2시간에 걸쳐 특별히 2012년산 배럴와인 테이스팅을 하였다. 코르통-샤를마뉴 그랑 크뤼 화이트 와인을 시음한 후 코트 드 본 지역에서 생산되는 레드 와인 위주로 시음하였는데, 아침 일찍 사진 촬영을 위해 찾았던 본 남쪽 볼네의 프르미에급 모노폴 와인인 클로 드 라 바흐가 인상적이었다.

메종 루이 자도의 와인셀라에서 배럴 테이스팅을 위해 와인을 뽑아내는 프레보.

메종 루이 자도의 와인셀라에서 배럴 테이스팅을 위해 와인을 뽑아내는 프레보.

볼네는 고도가 높은 경사지로 표토층이 얇지만 초크와 석회질이 많고, 하층토에 철분을 함유하고 있어 코트 드 뉘와 다른 전형적인 코트 드 본의 테루아다. 와인은 이러한 테루아를 닮아 가볍고 순수했다. 우아하고 섬세하며, 딸기와 같은 과일 향과 장미·제비꽃 향이 강하고 스파이시한 풍미가 코트 드 뉘 와인과는 확연히 구별되었다.

정말 테루아의 차이가 같은 지역에서도 이렇게 다른 스타일의 와인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오묘한 자연의 조화를 다시 한 번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코트 드 본의 테루아를 닮은 부르고뉴의 또 다른 스타일의 피노누아 와인을 시음하는 동안, 영화 <사이드웨이>에서 마야가 마일스에게 한 이야기가 와인의 잔향처럼 필자의 귓가에 길게 맴돌았다.

“난 와인의 삶을 찬미하고 싶어요. 한 생명체가 포도밭에서 익어가는 모습, 비가 내리고 따스한 햇살, 와인이 만들어지고 숙성되는 오랜 세월 동안 죽어간 사람들, 또 와인의 맛은 변화무쌍하고 수확기에 따라 그 맛이 제각각이지요. 그리고 당신이 아끼는 61년산 슈발블랑처럼, 제 맛을 한껏 뽐내고 삶을 마감하죠. 최고의 맛을 선사한 후에….”

글·사진|송점종<우리자산관리 대표·Wine MBA> j-j-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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