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21세기에 부활한 20세기 공안 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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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핵심들 몸은 2013년을 살면서 생각은 1970년대에 갇혀… ‘공공의 안녕’ 뭉개는 공안정국 정점에 ‘여왕 같은’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공공의 안녕’을 뜻하는 공안이라는 말은, 그 본래 의미와는 달리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음습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을 준다. 왜 그럴까? 공안이라는 말에는 사찰과 감시, 체포와 투옥, 공작 등의 어두운 그림자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공안이라는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해도 우리 현대사에서 정보기관, 경찰기구 등이 공안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국가폭력은 아직 사람들의 경험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원칙ㆍ품격 있는 보수정권 기대난망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국가가 나서서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이를 통하여 정치적 반대편을 탄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정구, 송두율 사건 등 북한을 매개로 하여 검찰의 공안라인이 일대 소동을 벌이면 야당이던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이 북치고 장구치면서 정권을 공격하는 반대적인 공안공세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

10년의 세월 속에서 사람들은 나름 한국 사회에 절차적인 민주주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고들 생각했다. 이제 민주주의의 내용을 이룰 차례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여러 작태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여전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작년 대선에서 또 다시 보수정권인 박근혜 정권이 탄생하게 되었다.

인권운동사랑방, 불교인권회의, 앰네스티, 민변, 문화연대 등 인권단체 회원들이 지난 9월 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비밀정보기관이 주도하는 공안정국을 비판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 확대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인권운동사랑방, 불교인권회의, 앰네스티, 민변, 문화연대 등 인권단체 회원들이 지난 9월 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비밀정보기관이 주도하는 공안정국을 비판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 확대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보다 훨씬 더 심한 제2의 유신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 한편에 박근혜 당선인이 보여준 원칙과 품격을 근거로 박근혜 정권이 품격 있는 보수정권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지 이제 9개월여의 시간이 지났다. 적어도 원칙 있고 품격 있는 보수정권의 모습은 언감생심, 기대난망이다. 그런 소리를 한 사람들은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오히려 박근혜 정권을 규정짓는 특징적 징표는 공안통치의 전면적 부활이다.

특히 허태열 비서실장에서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로 청와대의 진용을 일신한 후에는 아예 공안통치를 노골화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표 공안통치에는 적어도 직선대통령 시대 이후에는 보기 힘들었던 몇 가지 특징들이 있는 것 같다.

첫째, 정권 핵심의 진용이 공안통 라인과 육군 4성장군 출신들로 채워졌다는 점이다. 과거 전두환 정권의 육법당을 연상시키는 대목인데, 공안검사 출신으로 검찰총장·법무부 장관까지 역임한 김기춘을 필두로 하여 대검 공안부장 출신인 홍경식 민정수석, 역시 공안검사 출신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 체제가 한 축이고, 남재준 국정원장, 김장수 안보실장, 김관진 국방장관, 박흥렬 경호처장 등 4성장군들이 또 다른 한 축인 것이다.

이들 공안검사와 4성장군 출신들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분단상황에서 국가안보에 희생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종북을 척결하는 일이라면 국정원이 국내 분야에 뛰어들어 국민들을 적으로 삼고 심리전을 펼치는 일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니, 집회·시위의 자유 따위는 사회불안을 부추기는 사회악이다. 전교조나 반정부단체들도 정신차리게 하거나 아니면 해산토록 하는 것이 국가안보에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이 정권의 핵심들은 몸은 2013년을 살아도 마음은 1970년대에 가 있는 것 같다. 내란음모니, 위헌정당 해산이니, 전교조 해산이니, 시민단체 해산이니 하는 말들을 마치 연극무대의 배우가 대사 읊듯 천연덕스럽게 뱉어낸다. 공안적 논리가 몸에 체화된 사람들이다. 

더구나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 제소도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를 골라 국무총리더러 해치우라고 하면서 대통령에게는 흙탕물 하나 튀지 않게 섬세하게 배려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보노라면 선출된 민주적 지도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왕정시대의 왕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셋째, 이들에게 민주주의의 소양이나 절차적 정의 같은 것들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최소한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통치행위가 어떻게 비칠지에 대한 염려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 비근한 예가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공작에 관하여 보여주는 박근혜 정권 사람들의 태도이다.

야당을 거리로 내몰고, 채동욱과 윤석열을 찍어내더니만 수사팀을 기어이 해체 수준으로 몰아간다. 그러는 한편, 국정원에 멀쩡하게 보관되어 자신들이 대선에 임박해 컨틴전시 플랜으로 써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폐기되었다면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을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면서도, 그 대화록을 들고 줄줄 낭독해내려간 김무성은 문재인 소환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자진해 출석한다고 쇼를 한다.

공안통치 계속 땐 국민저항 부를 것
이러한 이 정권 핵심 인사들의 문제의 꼭지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공안검사 출신들과 육군 4성장군 출신들의 문제점을 총합하면 그것이 곧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점이 될 것이다.

공안은 대개 국가의 안전을 지키자는 말일 것이다. 생각해볼 것이 있다. 국가의 안전, 즉 공안을 추구한다고 할 때 그 안전 도모의 대상이 되는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겠으나, 필자는 그 답을 헌법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헌법에 의하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인간적 존엄과 가치’를 확인하고 이를 보장하는 데 있다.

즉 헌법 제10조의 뒷부분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평등권과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 목록을 보장하고, 국가를 입법권을 가진 국회, 행정권을 가진 정부, 사법권을 가진 법원으로 나누고(권력분립) 서로 견제하도록 한 것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의 존엄과 가치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확인하고 이를 보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요컨대 국가가 나서서 ‘공공의 안녕’을 지키고자 하는 것도 결국에는 국민의 인간적 존엄과 가치를 확인하고 보장하는 국가의 소임을 다하는 일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이 정권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헌법적 소양을 기대하는 것은 이들에게서 품격 있는 보수정권을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무망한 일 같다. 이들은 공안적 논리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70년대에서나 가능했던 황당한 공안정국을 계속 선보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공안정국이 대한민국의 ‘공공의 안녕’을 심대하게 훼손한다는 것이다.

70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 헌정사는 그러나 독재정권의 이러한 ‘공공의 안녕’ 훼손을 간과하지 않았다. 공공의 안녕을 심대하게 훼손하려다 국민들의 저항에 봉착한 정권은 대개 죽거나, 쫓겨나거나, 쫓겨나지 않으려 국민들에게 투항하였다. 이 정권이 끝내 공안을 들어 ‘공공의 안녕’을 현저하게 훼손하려 드는 경우 결국은 국민적 저항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점만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이광철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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