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공공기관 부채, 경영만의 잘못인가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과잉복지’와 ‘방만경영’ 지적하면서 정부의 정책실패는 외면

“이제 (공공기관의) 파티는 끝났다고 본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기업과 공공기관 부채에 칼을 겨눴다. 11월 1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조찬간담회에서다. 

현 부총리는 “민간기업이라면 몇 차례의 감원이나 사업 구조조정이 있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 공공기관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부채 문제를 제기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정부는 금융공기업의 부채산정 문제를 포함, 내년까지 공공기관의 부채를 재평가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 장관이 금융위기 당시 유행(?)했던 ‘파티는 끝났다’는 단어까지 써가며 공공기관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언급한 것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 장관은 공공기관 부채에 대해 ‘과잉복지’와 ‘방만경영’에 포인트를 맞췄다. 현 부총리는 “공공기관에 대해 부채, 비리, 임금·성과급, 복리후생, 단체협상, 권한남용 등 A에서 Z까지 모두 살펴보고 정상화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도 했다. 

정부의 정책 실패와 이에 대한 개선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공공기관이 잘못해서 부채가 늘었다”는 얘기다. 당장 노조는 반발했다. 김주영 공공노련 위원장은 “부채의 원인은 방만경영이 아니라 공공기관에 강제로 떠넘긴 4대강 사업, 해외 자원개발, 보금자리 주택 등 정권의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조찬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조찬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 4년새 2배로
세종시 관가에서조차 이런 식의 접근으로는 실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모 부처의 고위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부채가 단순히 과잉복지나 방만경영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지 않느냐”며 “복지를 축소하고 인원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실제 개선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08년 290조원이던 공공기관의 부채는 2012년에는 493조4000억원으로 거의 두 배가량 늘어났다. 현 장관이 조찬간담회에 부른 20개 공공기관들의 부채를 보면 2013년 기준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는 147조8000억원에 달했다. 

한국전력공사(59조5000억원), 예금보험공사(48조4000억원), 한국가스공사(35조3000억원), 한국도로공사(26조3000억원) 등은 빚이 2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철도시설공단(19조5000억원), 한국석유공사(19조3000억원), 한국철도공사(17조9000억원), 한국수자원공사(14조5000억원) 등도 10조원을 돌파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부채 증가 속도다. 지난 4년간 부채증가율을 보면 수자원공사 700%, 한국전력공사 360%, 한국광물자원공사 450%, 한국수력원자력 232%,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690%, 한국철도공사 210% 등에 달했다. 이미 상당수의 기업은 이자부담이 너무 커져 공사채를 발행해 이자를 갚는 데 급급한 실정이다. 부채가 많은 10대 공공기관들이 향후 5년간 내야 하는 이자만 60조원이다.

공공기관의 부채는 역대 정부의 골칫거리였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민영화안이 나왔고, 김대중 정부 때는 상당수 민영화를 시켰다. 노무현 정부도 초기에는 민영화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다.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새로운 공공기관이 계속 만들어졌고, 인원도 늘어났다. 이명박 정부 때만 정책금융공사가 신설됐고, 한국거래소는 공공기관으로 새로 지정됐다. 공공기관 관리에 실패한 것은 노조의 반발도 있었지만, 정부 차원에서 공공기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 가장 컸다.

우리금융지주가 아직도 민영화되지 못하는 배경도 같은 이유다. 세종시 모 부처 고위 관계자는 “규제완화로 민간에 대한 구속력이 없는 상태에서 공공기관이라도 있어야 정책을 집행할 힘이 생긴다”며 “공공기관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이들 공공기관은 관료들에게 정책 집행의 힘도 됐지만 퇴임 후 갈 자리도 됐다. 노무현 정부 때 신설됐던 철도시설공단은 역대 이사장이 모두 국토부 출신들이다.

[경제]공공기관 부채, 경영만의 잘못인가

‘공공기관의 정책집행력’은 공공기관 부채로 고스란히 전이됐다. 노조의 주장처럼 공공기관 부채의 근본 원인은 정책 때문이었다.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에만 8조원 가까운 돈을 쏟아부으면서 부채위험기관으로 전락했다. 

2008년 부채 1조9000억원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4조원을 넘어섰다. 환경·에너지·지속가능경영 전문 컨설팅 기관인 ‘SR코리아’는 30대 주요 공공기관의 부채위험지수를 평가했는데, 수자원공사를 위험지수 1위로 꼽았다.

수자원공사의 한 관계자는 “4년 전만 해도 수공은 부채에 관한 한 ‘클린기업’이었는데 이제는 부채를 갚을 방법이 요원하다”며 “그렇다고 정부 정책을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세종시 사업과 임대주택 사업을, 철도시설공단은 철도 건설 부채를 떠안으면서 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도로공사는 도로 건설을, 한국전력은 낮은 전기료를 부채 급증의 이유로 꼽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나 한국광물자원공사 등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해외 개발사업에 동원되면서 부채가 늘어났다.

금융공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예금보험공사는 저축은행 처리를 도맡으면서 부채의 늪에 빠졌다. 산업은행이나 정책금융공사 역시 정책자금 지원규모가 커지면서 부채부담이 커졌다.

정부정책 집행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그대로 반영됐다. 수공은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B를 받았다. 한국전력공사, 한국도로공사도 B다. 경영평가는 공공기관이 기업 설립 목적에 맞게 경영을 하고 있느냐 등을 묻는 주요 사업 파트가 100점에서 50점을 차지한다. 부채비율을 다지는 재무건전성은 10점밖에 안 된다.

수공, 4대강사업에 8조원 쏟아부어
인력 관리도 비슷하다. 경영효율화를 위해 인력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했다가 얼마 안 있어 공공기관을 ‘일자리 창출’에 동원시켰다. 박근혜 정부도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4년간 7만명을 뽑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과다하게 늘어난 부채는 공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 부채가 워낙 크게 늘어나 자구노력을 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부채 상위 10개 공공기관이 지난해 성과급으로 지출한 금액만 6100억원이 넘는다. 

과도한 학비 지원과 교육비 지원, 고용 세습 등의 사례도 무수히 많다. 기관장 평균 연봉은 1억6000만원대고 직원 평균 임금도 6200만원으로 대기업 못지않다.

한 공공기관의 CEO는 “몇조원 수준일 때는 경비도 줄여보고, 효율도 높여보려 했지만 몇십조원 수준으로 부채가 커지니 방법이 없더라”며 “부채문제를 얘기하기 시작하면 나도, 정부도 솔직히 할 말이 없어 멀뚱멀뚱 테이블만 쳐다본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이 이처럼 망가진 데는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 역대 정부는 공공기관 경영효율화를 내세우면서도 요직마다 ‘낙하산’으로 메웠다. 공공기관장 자리를 용돈벌이를 하면서 몇 년 거쳐 가는 전리품으로 전락시켜놓고 부채관리를 제대로 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불만이 공공기관 직원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박근혜 정부라고 다르지 않다. 현 부총리가 20개 공공기관을 본보기로 불러낸 날,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전수조사를 해보니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 임명된 78명 중 45%인 34명이 대통령 측근이거나 대선 당시 선대위에 참여한 낙하산 인사”라고 밝혔다. 이 중 상당수는 전문성이 없지만 논공행상에 따라 자리를 꿰찬 것으로 파악됐다.

모 부처 관계자는 “최근 공공기관 인사를 보면 교수 출신들을 많이 기용했는데, 청와대가 부채관리에 무게를 두었다면 기용하기 힘든 인사들”이라며 “공기업 부채관리에 대해서는 모두가 위험성을 인식하지만 단번에 해결할 묘안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